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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평점 :
단편소설 작가라면 레아몬드 커버 같은 작가가 되고 싶었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같은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심부를 찌르는데 그게 한 마디로 하려면 잘 되지 않는, 무언가가 늘 남는. 말로는 되지 않는데 계속 말로 해보려 노력하는. 결국 문자 언어는 말로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김금희는 차츰 그런 소설을 쓰고 있다. 그것은 한 사람 내부에 있는 것도 같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생기는 일도 같고, 사람과 사회가 만나 생기는 에너지 같은, 부조화이나 감당할 수밖에 없는, 어떤 부조화를 맞닥뜨린,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잘 말이 안 되는 마음들.
어쩌다보니 거기 가있고 그러려고 한 것 같지는 않은데 또 꼭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는, 희한한 마음과 상황, 상황과 마음 사이, 순간적으로 지나는 것들.
지금 듣는 라디오헤드의 음악 같은.
누구 하나 안 불쌍한 사람이 없고 누구 하나 사연 없는 사람이 없고 그럼에도 살아가는 동안은 살아가는.
권력과 힘의 작동보다는 삶과 순간이 빚어내는
희한한 음률 같은.
누구의 인생이나 있는 일.
잘 보지 않으면 안 보이는 것도 같지만
실은 인지하지 못할 뿐, 목소리나 표정, 눈빛에는 묻어나는 것.
작년에 읽다가 어제 다 읽었다.
대부분 현대적인 어떤 지점 속에 놓인(카페 주인, 출판사 사장, 출판사 직원, 가족 관계, 그저그런듯하나 놓지는 못하는 연인, 잊지 못하는 첫사랑 그렇다고 잡지는 못하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자본주의에 메여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을 아주 후회한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 선택의 뒷면 어딘가를 놓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아마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순간, 자기도 자기를 이해 못하고 누가 날 이해할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 순간 속에 놓여진 사람들.
그래서 레이몬드 커버가 떠올랐다. 이 지점을 포착해내 이야기로 인물들의 조합과 사건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노력과 재능이 빚어낸 일일 텐데, 좋다. 부럽다.
사람은 누군가 자기를 이해해주기를 바라나 스스로조차도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에 대해서 나 역시 내 세계 속에서 겨우 동경하거나 이해를 위해 촉수를 뻗치거나 희망하거나 그마저도 아닌 타인들과의 관계는 더욱 많은 채, 그래도 이 삶이라는 것 속에서 고독해지지 않으려 누군가를 원하고 누군가에게 향하고 만나고 생각하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오욕칠정 속을 헤매기도 하며 그 안에서 자기를 타인을 그 사이를 찾으려 노력하기에… 그것은 가족이라는 형태에서마저도 해결되지 않은 미제로 남아 어떤 결정은 했으나 어디 다다르지 못한 채 그러나 세상은 이미 어디 다다랐다하기에 때로 위안이기도 하나 또 걸음은 더욱 무거워져…
다른 말로 하면 이 나라는 무수한 시간이 겹쳐진 타인이, 한없이 지겨운데 한없이 낯설다는 것이다.
2020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