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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 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코너 우드먼 지음, 홍선영 옮김 / 갤리온 / 2012년 3월
평점 :
잘 나가는 애널리스트 일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나며 경제를 배운 작가가 다시 한번 세계 곳곳을 돌며, 자본주의의 베일을 벗겨내며 알게 된 것들을 기록한 책이다. 공정무역이라는 상표가 붙은 제품들이 이렇게 많은데, 과연 정말 공정한 과정으로 그 제품들이 생산돼 생산자들의 이익이 되고 있는 걸까 궁금해본 적이 있다면, 좋은 책이다. 그리고 그 답은 예상했듯 아니올시다 이다.
고급 레스토랑의 바닷가재의 공급원인 니카라과에서는 잠수 규칙을 모두 어기고 목숨을 걸고 바닷가재를 채취하다 감압병에 걸린 잠수부들이 너무 많으며, 고급 레스토랑 체인은 그물망으로 채취한 바닷가재만 팔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공급 과정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휴대폰 등 전자기기를 만들기 위해 저렴한 임금을 받고 일하다 자살하는 10대가 많은 중국의 폭스콘, 휴대폰 등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주석을 캐기 위해 죽음의 위험을 무릅쓴 콩고의 10대들에 대해 대기업들은 겉으로는 무언가를 약속하는 듯 굴지만 실상에 대해서는 모르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안다.
여기 공정무역 인증을 통해 돈을 버는 협회들, 단체들이 더해진다. 그들의 의도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브랜드 가치를 위해 그들은 낮은 가격으로 대기업과 협상하고 대기업 역시 마찬가지로 브랜드 가치를 위해 이들과 계약을 맺는다. 생산자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더해지거나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세계 경제란 무거워서 중국은 라텍스 원자재를 얻기 위해 라오스의 한 지역 모든 나무종을 없애고 고무나무를 심고 있다. 겉으로는 라오스를 돕는다고 하나 실상은 지역 주민들의 삶은 더욱 힘겨워져간다.
대부분의 공적인 목적의 금지가 그렇듯, 마약 원자재인 양귀비 채취를 금지하는 단속은 양귀비를 기르지 않으면 아무 소득을 얻을 수 없는 이들을 옥죄는 단순한 방식으로만 이루어진다.
작가는 그러나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라오스에서 만난 직접 고무나무를 기르고 파는 사업가나 양귀비를 기르던 인도에 대해 그 작물을 마취재 등을 만드는 재료로 팔도록 함으로써 불법적인 그늘을 지운 사례, 탄자니아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독일인 벤테를 통해 좋은 커피를 재배하며 그만한 가격을 받게 된 탄자니아
커피재배농가인 오레 농장 이야기(에시컬 어딕션), 좋은 차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말라위의 찻잎 재배자와 진정 품질에 맞는 거래를 한 헨리에타(레어 티 컴퍼니) 등과 코트디부아르의 농부들이 품질 좋은 면을 재배할 수 있도록 그 지역 사회에 조면기 등을 공급한 올람의 사례를 들며 이 자본주의가 이익만을 추구하는 가장 썩어빠진 시스템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현장에서 같이 지역민들을 돕고 그들과 함께 일해나간다면, 좋은 제품을 만들고 거기에 적당한 값어치를 얻으며 자긍심을 얻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며 원하든 원치 않든 세계화의 물결 속에 휩쓸려 내가 먹고 마시고 만지는 이 제품이 누구의 손을 거쳐오는지 알 수 없으나 전 세계의 어딘가로부터 왔다는 것을 안다. 이는 어쩌면 이 물건이 착취와 누군가의 죽음을 담보로 한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모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곤 하는 무수한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의 모순, 그러나 언제까지 모른 척 할 수 있을까. 세련을 장착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를 보아도 좋은 그런 제품을 찾아내고 그 이름을 밝히고 자본주의라는 명목 하에 벌어지는 세계 곳곳의 폭력적인 실상을 고발하는 책이다. 저는 공정무역 커피만 마셔요, 이딴 말을 하며 세련을 장착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보내주고 싶은 책이다. 우리가 이 자본주의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해야할 노력은 좀 더 구체적이거나 어려운 것일 수 있으므로, 쉽게 말하지 말 것, 현혹되지 말 것, 꾸준히 공부할 것, 남 일에 눈 감지 말 것, 이 편이 공정무역 커피만 마신다고 말하는 일보다는 더 나을 것이다.
2020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