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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 편 - 지혜를 찾아 138억 년을 달리는 시간 여행서 ㅣ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9년 12월
평점 :
노자에 대한 챕터를 읽고 있다. (20210114) 인도의 우파니샤드에 이어 사고 싶은 책이 생겨 노자의 ‘도덕경’을 장바구니에 넣어뒀다. 언젠가 굿즈에 대한 물욕이 극심해지거나 신용카드 금액을 채워야 할 때를 대비해 사야 할 책을 장바구니에 넣어둔다.
그리고 하나 깨달은 것은, 내가 노자냐 공자냐, 다른 말로 탈속이냐 세속이냐 둘 중 하나의 노선을 택한 것이라면, 아마 나는 노자의 노선을 걷는 사람일 것이라는 거다. 그래서 ‘도덕경’이 아 도덕책 같은 도덕 강조 충실본이 아니고 도와 덕에 대한 넓은 견해를 제시하고 있음을 알자마자 이 책은 소장해야겠군 싶어 장바구니에 넣었다.
지금 읽고 있는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는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두 군데 도서관에서 빌려온 10권의 책 서문이나 목차를 살펴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라 먼저 접어들어 읽고 있다. 샀어도 좋을 책이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역사’ 같은 구석도 있는. 이 먼지 같은 존재인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우주의 광대무변함을 최신 과학과 함께 이야기하고 우주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리고 2500년 전 등장한 사상가들을 소개하고 있는 대목이다. 인도에 이어 중국 문명을 설명하는데, 그동안 복희씨 어쩌고 요순시대 어쩌고 했던 구절이 무슨 뜻인지 아주 깔끔하게 설명해줘서 너무 요긴했다. 우주나 지구의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물어본다면 사서 봐도 좋다고 얘기할 거다.
나는 요새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있다. 오늘은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어제도 책 보며 술 마시며 음악 듣다 늦게 자) 요가하고 씻고 청소하고 밥 먹고 설거지하고 쓰레기 좀 버리니 3시 반이 넘어 있었다. 잠깐 쉬다가 다시 유통기한 조금 지난 짜장라면을 이연복 레시피에 따라 끓여 맛있게 먹고 1천원 짜리 두부도 살 겸 걸을 겸 나가 1만1천보를 걷고 돌아와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역시 맥주와 음악과 함께.
누군가는 몇 년 공부해 들어간다는 그 직장을 들어갔다가 1년 8개월이 지나 나왔다. 사직서를 낸 건 1년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더할지 말지 매일 고민했고, 어느날 조금은 충동적으로 사직서를 냈다. 이유는 많지만 결국 그 구조와 향후 내가 거기 더 있으면 행복할까 등등 생각으로 사직서를 냈다. 더불어 월급도 날아갔다. 이제 곧 미래 걱정이 펼쳐질 시점인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돈 걱정.
그냥 거기 있기만 하면, 조금씩 공부도 다 끝내 앞으로 일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구조에 대해 혼자 공부했고, 내가 있는 데 시스템을 알고 각각의 조직에 무슨 과가 있고 거기서 어떤 사업을 주로 하고 있는지도 거의 다 공부해서, 아마 내가 나올 때쯤 나만큼 그 곳 사업을 아는 사람은 몇 안되었을 거다. 이제 좀 편하게 살 수 있는 시점이기도 했다. 디테일하게 수치를 외우고 있었고 어떤 사업이 중점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어디를 뒤지면 답이 나오는지도 알았고, 홍보가 중요해지며 각 과의 홍보비용도 문서로 만들어져 나온, 이제 돈이 필요하면 어느 과를 가서 얘기하면 될지도 알게된(이전에는 도통 알 수 없어) 답답하던 것들이 다 해결된 시점이었다. 바로 그 시점 사직서를 냈고 이틀 뒤 코로나가 회사에 터져, 12일 동안 자가격리하며(물론 일은 했다) 이후 재택근무를 번갈아 하다 나왔다.(내 이후 사람은 아마 계속 재택근무를 번갈아 하는 체제 속에 살았을 거다.) 그리고 그 수치도 사업도 다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 그런 사업이 뉴스에 나오면 그래 그렇군 여전하군 저게 저거였니 한다.
물론,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모두 끝났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모두 끝나면, 그제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이제 조금 그렇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지, 그 답은 내가 탈속주의자라는 데 있었다. 나는 세속 안에서 그 구조를 바꾸기 위해 싸우는 인간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도를 쫓는 타입을 더 선호한다. 그래도 돈 걱정도 하고 신용카드 금액과 굿즈에도 마음을 준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고 온갖 물욕충족용 물건이 있으며 자본주의는 고도화되고 있으니 이 틈새 안에서 살아가면서 세속의 온갖 것들과 더불어 있지만 결국 나는 어떤 선택의 순간에 ‘탈속’주의적인 선택을 하곤 하는 것이다. 이것은 MBTI가 INFP로 나와서인지 내 기본 성향, 내 영혼의 어떤 무언가 때문인지,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주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그래왔다는 거다.
책을 다 읽으면 어떤 결론을 얻을지 모르겠으나, 책을 다 읽든 안 읽든 계속 살아갈 텐데,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세계의 인간은 탈속 혹은 세속으로 나뉠 수 있다는 것, 내가 잘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속에 더 지향점을 둔 사람들일 수 있다는 것.(이것은 긍정부정의 뉘앙스를 뺀 것이다) 그저 그런 것이다.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누가 낫고 못하고가 아니라 그렇다는 것. 이것은 내게 좋은 깨달음이다. 나는 이제 좀 하나 더 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동안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으나 잘 몰랐던 것을 확실히 알게 된 기분이다.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니 좋은 책이다. 예전에 가끔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앞으로 이 사람 책을 좀 더 사봐야겠다. 유튜브도 구독은 해둬야지. (사실 요새 유튜브로 뭘 듣거나 하지는 거의 않지만…)
그러나 책을 마지막까지 읽고 보니 뒷쪽 서양철학이나 사상 부분은 약간 압축적이며 너무 너른 대지를 다 본 게 아니라는 느낌이다. 플라톤의 이원론과 기독교의 이원론이 어떻게 현대 철학에 이르러 칸트 등 관념론에 의해 일원론적으로 극복(?)되는지, 기독교는 에크하르트 등으로 인해 일원론적인 연구가 아예 없지는 않음을 설명하지만, 드넓은 서양철학의 대륙을 일원론 세계관이라는 결론으로 끌고가는 데만 들여다본 기분이다. 다른 많은 대륙이 배제되어 전체를 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작가 채사장이 이 책을 쓴 이유는 막판에 설명한 듯한데, 언젠가 자기 내면을 고요히 들여다보고 그 안에 우주를 느끼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라고 나오는 그 구절을 실행한 것 같다.
동양철학 부분에서는 힌두교나 도교, 유교, 불교 등에 대해 설명해주는 부분이 재미있다. 짧고 간단하게 핵심을 설명하면서, 더불어 신화와 역사를 설명하고 실제 인물의 삶을 더해, 이 모든 개념이 훨씬 생생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일원론과 이원론이라는 두 가지 세계관에 대한 책이다. 일원론에 대한 책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과 우주가 하나인가? 언젠가 그런 도에 이르를 수 있을까?
우리 우주는 그저 수많은 가능성 중 다만 한 가지 형태를 가진 우주일 뿐이다. 지금과 같은 물리량을 가진 까닭에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과 생명이 탄생했고, 지능을 가진 존재가 태어나 자기 우주에 대해 질문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설명 방식을 인간 중심 원리라고 한다. - P80
다중 우주의 개념에 따라 수많은 다중 우주가 완벽하게 독립되어 있다면, 우리는 우리 우주와 어떠한 정보도 주고받지 않고 그 안에서 생명을 탄생시키지 못하는 우주를 과연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누군가 그렇다고 말한다면 그 대답을 할 수 있는 존재는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는 엄밀하게 말해야 한다. 외부와 완벽히 독립되고, 그 안에 생명을 포함하지 않는 우주를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러한 결론으로부터 강한 인간 원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주는 어느 단계에서 그 안에 관찰자의 탄생을 허용해야 한다.’ - P85
우리는 앞서 이렇게 질문했다. ‘우리는 왜 우주를 이해하려 하는가?’ 그에 대한 심오한 답은 이것이었다. 그것은 우주의 자기반성 과정이다." 어쩌면 우리 우주는 우리가 이곳에서 눈떴기에 비로소 존재론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 P89
우주와 나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존재가 빅뱅 뒤에 숨은 초월적 신일 수는 없다. 차라리 그것은 ‘나’라는 존재, 그 자신이어야 한다. 나의 세계와 나의 우주가 나의 의식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면, 당신의 세계와 당신의 우주가 당신의 의식에 의해 발현된 것이라면, 우리는 세계 창조의 모든 이유와 목적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합리적으로 선언할 수 있다. 이것은 강한 인간 원리나, 앞으로 살펴볼 동서양의 거대 사상을 차치하고도 모든 의식적 존재에게도 참일 수밖에 없는 결론이다. 정신의학 분야의 개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이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쩌면 우리 대부분은 세상을 자신의 마음이 창조했다고 보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관점의 대전환 필요하며, 여기에는 많은 희생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 인간이 가진 동물적 본능은 환경의 창조자로서 자신을 보기를 거부하게 만든다." - P113
그것은 인류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우주의 역사를 상상함으로써 우주는 138억년이라는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비로소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가 처음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 것은 오직 인간의 의식과 사유 때문이었다. 기억해야 한다. 텅 빈 우주를 지켜보고 가치를 부여하는 존재는 외부의 무엇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다. 그렇게 우주에 가치를 부여하는 인간이라는 종이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먼지 같은 지구 위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 P114
그러던 어느 날,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어느 날에, 단 한 번의 거대한 도약이 있었다. 자신의 정보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최초의 생명이 나타난 것이다. 이 최초의 생명은 ‘자신의 정보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한다’라는 정보까지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놀라운 존재였다. 그렇게 이 최초의 정보 전달자는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이 되었다. - P122
하지만 생명의 탄생은 지구뿐 아니라 이 우주에서도 매우 중요한 이벤트였다. 비로소 우주는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한 것이다. 물질뿐이던 우주의 한 지점에서 처음으로 물질로 완벽히 환원할 수 없는 매우 특이한 무언가가 탄생했다. 그리고 이 특이한 무언가가 진화해, 우주의 역사는 우주를 인식하는 생명으로 관점으로 다시 쓰이게 되었다. - P129
인공선택과 자연선택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목적의 유무다. 인간은 이익에 대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생물의 번식에 개입하지만, 자연선택의 주체로서의 자연은 어떠한 목적도 갖지 않는다. 자연은 그 자체로 펼쳐진 환경을 뿐이다. 진화는 목적 없이 이루어진다. - P141
단세포 생물과 곰팡이와 어류와 파충류와 유인원은 지금도 번성하며 자신들만의 진화 과정을 밟고 있다. 인류도 그 중 하나의 가지로 분화해 나름의 방향으로 진화 과정을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아메바나 대장균은 원시적인 종이고 인류는 진화의 끝에 도달한 가장 완성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화에 대한 오해다.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일도 사람이 원숭이가 되는 일도 없다. 각각의 종은 가지를 뻗어나가는 각자의 진화 과정을 밟을 것이다. 그리고 진화한 원숭이도, 진화한 인간도 모두 지구에서 사라지는 먼 미래가 되면, 그때도 진화한 단세포 생물들이 여전히 지구를 점령하고 있을 것이다. - P144
누구나 신을 말할 때, 그 신은 발화자의 내면을 반영한다. 신은 각자의 마음 안에 산다. - P191
스스로는 특정한 상을 가지 않지만 모든 상을 일으켜 세우는 순수한 가능성의 상태, 이것이 자아의 순수한 본질적 상태다. 고대 인도인은 자기 내면의 이 투명한 의식을 아트만이라 부른 것이다. - P205
즉, 자아는 하나의 등불이며 세계란 그저 그 등불이 비추는 범위임을 알게 된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사유의 전환을 가져온다. 이제 고정되어 있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자아다. 등불이 고정된 세계 위를 걸어 다니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등불의 범위 안에 세계가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 P206
수정구슬은 나의 마음 혹은 의식으로, 유일한 실재가 세계라는 그 수정구슬 안에 왜곡되어 비치는 이미지다. 그러하다고 할 때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는 무엇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하나의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세계를 본다는 것은 언제나 내 마음이 그려낸 이미지로서의 세계를 보는 것이다. 내 마음은 그저 내 마음을 본다. … 그래서 인도인은 이 세계를 환영이라는 의미의 ‘마야’라고 불렀다. - P208
하나의 사상이 별다른 변화 없이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이어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는 극단적인 간결합니다. 더 이상 무엇인가를 더할 수도 빼낼 수도 없는 내용이어야만 한다. 다른 하나는 보편성이다. 그 간결한 사상이 기나긴 역사 속에서 탄생한 수많은 사람의 진리에 대한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야만 한다. - P214
세상이 너에게 쥐어준 의무를 행하라. 그리고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말라. 그럴 때 행위는 업을 만들지 않을 것이고, 너를 신에게 향하는 길로 인도할 것이다. - P231
힌두교는 <<베다>>의 전통 안에 있고, 범아일여의 진리를 받아들였다. 그것은 우주와 자아의 합일, 세계와 개인의 합일, 브라흐만과 아트만의 합일, 그리고 카르마와 카르멘의 일치를 말하는 것이다. 힌두교는 말한다. 나의 의지와 나의 행위가 곧 우주의 의지이다 질서가 될 때,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고, 깨달음 안에서 행위하고 될 것이고, 비로소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에 이르게 될 것이다. - P241
역사가 깨어있는 것이라면 신화는 꿈을 꾸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중간 어디쯤이다. - P249
노자에 따르면 도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고,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은밀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이 말의 의미를 설명해보면, 그것은 우주의 질서라고 할 수 있겠다. - P261
도가 우주의 법칙과 질서라고 한다면, 덕은 그러한 도의 본질이 반영된 인간의 마음이다. - P262
노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덕이 없는 사회에서는 인이 강조되고, 인이 없는 사회에서는 의가 강조되면, 의마저도 없는 사회에서는 예만 강조된다. 쉽게 말하면, 자기 내면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인정함이 중요시되고, 인정함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의리가 중요해지며, 의리가 사라진 사회에는 예절이 강요된다는 것이다. - P274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상황에 집중한 개념이다. 실제로 인을 한 자로 풀어보면 사람 인(인)과 둘 이(이)가 결합한 모양이다. 인은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초월적 개념이 아니라 피부와 피부가 맞닿은 거리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인간 사이의 실천 덕목인 것이다. - P295
‘좋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라.’ 공자는 인을 지향하고 예를 따르는 사람은 성인, 군자라고 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소인이라고 보았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군자와 소인의 개념은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돌아보게 하는 기준이지, 남을 비난하는 데 사용하는 기준이 아니다. - P296
공자의 말씀은 너무나 상식적이고 심지어 상투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공자와 유가 사상은 말 그대로 국가와 사회가 장려하는 하나의 사회 윤리, 정치 이념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그저 당연한 말의 나열일뿐, 거시적 세계관 제기에는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거시적 전망이 부재한 사회 윤리는 그 사회의 유지와 관리에는 유용할 수 있으나, 어떠한 변혁과 혁신도 꾀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300
공자와 노자의 차이는 그들이 다루고 있는 사상의 범위를 기준으로 나눠볼 수 있다. 노자가 도와 덕에 대해 다루고 있다면 공자는 덕에 집중한다. 노자는 우주 전체의 근본 원리와 그것의 반영으로서의 인간의 행위를 다루는 데 비해 공자는 사회, 정치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의 인간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 P301
그것은 두 사상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탈속과 세속.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욕구가 도가와 유가를 통해 각각 반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 P303
여기서 사성제는 고, 집, 멸, 도의 네 가지 진리를 말한다. 첫 번째 고성군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세계를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불완전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모든 존재는 괴로움에 빠져 있다. 이것이 불교가 바라보는 세계의 기본 상태다. - P334
즉,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붓다는 이렇게 답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다섯 가지 요소가 임시로 쌓여있는 무더기일 뿐이다.-p.337 (색-육체, 수-감각, 상-심상, 행-의지, 식-의식) - P335
당신 앞에 놓인 책도, 컵도, 당신이 앉은 의자와 당신 자체도 모두 얽히고 설킨 연기의 그물 속에서 잠시 모여있는 것이다. … 이에 따르면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불을 본다. 여기서의 법은 우주의 법칙, 즉 진리를 말하고 불은 부처, 즉 깨달은 자를 말한다. 다시 말해, 우주의 실체가 연기임을 꿰뚫어보는 자는 진리를 보게 되고, 그것이 곧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 P344
그것은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로 여김으로써 발생한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실천적 가르침이다. - P349
붓다는 생전에 제자들에게 두 가지 의지처럼 제시했다. 하나는 자기 자신, 다른 하나는 가르침이었다. - P352
무는 말 그대로 없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공은 단순히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작용은 있으나 실체가 없음을 의미한다. 마치 꿈처럼 말이다. 이렇듯 세상은 사실 공인데 묘하고도 실존하는 것처럼 나타난다는 의미에서 불교에서는 이를 ‘진공묘유(진공묘묘유)라 표현하기도 한다. - P371
내가 바른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그것을 심판하는 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나의 마음이어서다. - P378
우리가 자신의 세계관을 들여다 보아야 하는 것은 나의 세계관이 내가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대지를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나의 한계이자 울타리가 되기 때문이다.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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