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공을 갖고 논다. 공은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달아나고 아이들은 그것을 따라잡느라 숨이 가쁘다. 여기서공의 역할은 아이들의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공은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규칙한 움직임으로 아이들을 갖고논다. 무수한 실패와 탄식의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공의경로를 파악하고 제어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므로 그들의공놀이는 공처럼 굴러가는 세상을 살아내는 연습이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세상일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 세상은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제멋대로 굴러가고 그것이 방향을바꿀 때에는 아무런 예고도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불규칙함 속에서 규칙을 발견하고 공보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게임에서 영원히 이길 수 없다는 것, 세상에서 낭패를 덜 보려면 공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

공은 자기 밖의 세상에 관심이 없다. 우리가 구기 경기에 열광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고 완벽하게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완결되어 있고 부족함이 없는 이 형태는 자기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굴리면 굴리는 대로 구르고 어디든 머무는 곳에 머문다.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할지 위치를 선택하지 않으며 선택하려는 의지 자체가 없다. 지형과 중력이,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우연이 정해주는 대로 구르거나 멈출 뿐이다. 요즘 나는 때때로 공처럼 되고 싶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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