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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스테인 1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제목이 좋다. 인간의 녹(오점).
내가 조금 더 어렸다면, 나는 이 소설을 보고 전적으로 네이선의 입장을 선호했을 것이다. 이런 말이 가능하다. 인간들 사이를 떠도는 악취 같은 소문과 진실 사이는 얼마나 머나먼가. 한 발 더 나가자면, 말의 무의미성. 어떤 71살 먹은 학장까지 지내고 사퇴한 교수와 34살 먹은 그 학교 청소부의 로맨스를 둘러싼 무궁무진한 소문들, 뒷간 같은 소문들(콜먼은 포니아를 자신의 분노의 노리개로 삼았다는)에도 불구하고 실은 교수인 콜먼은 흑인이란 자신의 신분을 감추었다가 인종차별 발언을 했단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 포니아를 만나 서로를 애무하게 된다. 완전히 발가벗은 상태에서.
그러나 소설은 결국 네이선이란 소설가를 등장시켜 관찰자 입장을 취함으로써 정말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떻게 그들이 죽게 되었는가는 의문부호로 남겨둔다. 네이선의 추리대로 포니아의 남편 레스터가 살인을 저지른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실은 아무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 이것이 네이선이란 소설가의 소설임을 밝히는 형식을 취하므로, 미궁은 미궁인 채로 남는다. 소설 자체가 강력한 추측을 제기한 셈으로.
소설에는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앞에서 말한 콜먼과 포니아, 그리고 포니아의 전남편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레스터 팔리, 아테나학교의 젊은 학과장이자 포니아의 반대편에 서있는 듯한 여자 델핀 루(프랑스인으로 예일대를 나와 30이 되기 전 학과장이 된다. 지독한 자기 환상 속에 산다. 이에 비해 포니아는 환상을 제거해나가는 데 힘을 쓴다. 그녀가 지닌 환상은 까마귀에 대한 정도이다.)
소설은 읽기 힘들었다. 3주 동안 읽었는데, 사실 2권은 하루만에 다 읽었고(기획해서) 1권을 3주간 잡고 있었던 셈이다. 번역이 안 좋은 건지, 필립 로스의 문체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읽기 힘들었다.
영화를 먼저 봐서 내용을 다 알아서인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니콜 키드만이 포니아 역을 맡는다. 델핀 루란 캐릭터는 사라진다.
소설은 레스터의 심리 같은 것을 훑을 때 훨씬 내밀하다. 네 인물 사이의 대조가 소설에서 꽤 중요한데 영화는 이를 그리지는 않는다. 대신 멜로드라마로 공백을 메운다.
소설을 보고, 숨기고 있는 게 그 사람의 진실에 가장 근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내 숨기고 있는 것.
2011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