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읽은 질문하게 만들라

대학시절 배워 이제까지 내게 남아있는 가장 깊은 가르침이다. 누군가를 질문하게 만드는 글을 쓰라고 나는 배웠다.


서사는 결국 길을 내서 질문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면에서 버닝은 훌륭하다. 물론 베테랑 감독은 나보다 훨씬 서사의 법칙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므로 요소마다 적절하게 장치를 만들어 질문을 새긴다.

처음 만난 해미가 마임을 배우며 귤이 있지 않은 아니라 귤이 없는 것을 잊으라는 오묘한 대사부터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는 벤과 아무리 봐도 타지 않은 비닐하우스, 해미가 빠졌다는 우물은 정말 있었던 걸까 라는 몇몇 메타포를 

'버닝' 감아 돌며 이야기를 질문을 짜낸다.


정말 벤은 해미를 죽였을까

여자들을 죽였을까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는 비유는 정말 사람을 죽인다는 이야기였을까

해미가 빠진 우물은 정말 있었을까

종수는 정의를 실현할 걸까 죄를 지은 걸까


하다 보면 문득 '죄와 '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쓸모없다 생각한 노파를 죽인 청년 라스꼴리니프는 죄를 지은 걸까 라는 그 질문과도 같이

그렇다면 사라지고 싶어한 여자들을 죽인 벤은 죄를 지은 걸까

대해서는 왠지 명확하게 그렇다 라는 생각이 들고 말지만(정말 그가 그렇게 했다면)

실제로는 욕망을 실현시켜준 것인데, 그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었고 감출 만한 능력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그는 죄를 지은 걸까 그는 벌을 받아야 하나 그를 사회 시스템이 없으므로 종수가 벌을 주는 맞나

 

여기 사회라는 시스템이 끼어든다. 대한민국의 파주에서 대남방송을 매일 들으며 사는 종수의 현실과 대비되는 반포에 사는 . 드넓은 깔끔한 빌라에서 파스타를 만들어주는 남자, 종수가 먹는 된장찌개와 대비되는. 이런 대비는 벤의 포르쉐와 종수의 낡은 트럭 여러 차례 진하게 대조를 이루며 둘의 계급격차가 얼마나 심한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종수가 시스템에 반발하기 시작한 지점은 그가 마트에서 일하려다 뛰쳐나온 순간 정확히 드러난다. 노예처럼 일하며 있는 돈이 얼마나 적은지 벤의 인생을 들여다본 순간 회의감은 종수를 사회로부터 뛰쳐나오게 만든다. 그리고 종수의 아버지가 공무원의 엄지 손가락에 상해를 입혀 1 6개월 형을 받은 장면이 나온다. 종수가 짐작하기로, 훨씬 더한 범죄를 2개월에 한번씩 저지르는 남자가 어떤 벌도 받지 않고 유유히 살아가는 것을 결코 납득할 수 없도록…

 

찾아보니 버닝에 대해 이창동 감독인지 유아인 배우인지는 버닝할 없는 청춘, 이미 소진돼버린 청춘에 대해 이야기한듯 한데, 나는 서로가 서로를 버닝시킨다는 , 어떤 의미에서 서로가 가진 욕망을 직시하게 만들어준 존재들, 욕망이 아니라면 감추어진 무언가를 서로를 불태우게 만드는, 그런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라지고 싶던 여자를 사라지게 만들어주는 남자, 남자가 너무 진지하다며 심장에 페이스를 느끼며 살라고 말하면서도 자기 인생에 처음으로 질투를 느꼈다는 순박한 청년, 그리고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아버지의 아들인 종수까지, 서로가 가지고자 혹은 가질 없는 어떤 것들을 드러내게 하는 만남이 아니었을까. (때로 점점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내가 보지 못한 욕망을 사람이 현시해주거나 내가 전혀 납득할 수도 없는 어떤 욕망을 가진 이들을 보기도 한다. 저것을 욕망하는지 없으나 욕망하고 안에서 살아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안에는 누구나 그런 욕망이 잠재하고 있으므로 그잠자던 불씨를 일깨워내 불타게 하는). 그리고 정말 영화는 주인공 종수가 벌거벗은 불을 내고 끝난다. 불이 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고 재만 남고 말지만, ...

 

그리고 다시 질문한다.

정말 벤은 혜미를 죽였을까

벤이 혜미를 죽였다면 종수는 죄를 지은 아닐까 그래도 죄를 지은 걸까 (그렇지 않았다면 턱없이 부조리한 사회에서 그렇다면 종수는 뭘할 있지)

정말 살아있는 것은 벤일까 종수일까

 

칸에서 극찬을 받은 이유는 나에게는 너무도 낯익은 시골 풍경이며 서울의 풍경이 외국 사람들의 시선에는 훨씬 다르게 보일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다. 폐허가 비닐하우스나 시골길, 빽빽한 옥상밖에 보이지 않는 아주 좁은 방이 훨씬 이국적으로 보일 있다는 . 그래, 결국 여기도 어느 작은 나라, 누군가에게는 모든 내게는 뻔한 시스템조차도 이국의 것이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