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부서지기 전에 에버모어 연대기 1
에밀리 킹 지음, 윤동준 옮김 / 에이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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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이 부서지기 전에>는 우리와는 다른, 7개의 세계가 존재하는 어떤 가상의 세계에서 자기 가족을 죽인 원수를 쫓아 고군분투하는 어떤 고아 소녀의 복수극입니다. 책 뒷표지에는 분명 이렇게 적혀 있어요. '모두가 사랑하는 전설의 왕자를 죽여라!' 하지만 제가 장담하건데, 이 소설을 끝까지 다 읽은 독자라면 아무도 그 사이코패스 악마 같은 전설의 왕자를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정말 읽는 동안 몇 번이나 화가 치솟았는지 몰라요. 잠시 화를 식히기 위해 끊어 읽어야만 했답니다...ㅎ... 


 저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가상의 세계도 좋아하고, 한 가지 명확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복수극도 좋아하는 편인데, 생각보다 고구마 답답이 전개여서 책장이 시원하게 촥촥 넘어가지는 않더라고요. 이게 아무래도 시리즈물이다 보니 한 권 안에 복수가 완성되지 않아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주인공인 에벌리는 아직 자신의 능력(?)을 다 자각하지도 못했고 상황 파악도 덜 됐는데, 상대는 이미 모든 것을 다 꿰뚫어보고 일을 꾸미는 놈이라 번번히 계략에서 밀리는 부분도 있고요. 주인공 심장이 시계로 되어 있어서 물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조금만 무리해도 바로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해요.


 하지만 무엇보다 주인공이 상황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간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게 답답함의 최고 원인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질질 끌려 다니는 것 같거든요. 초반에 섬으로 끌려가는 부분도 선택이라고 하기엔 애초에 재판에 선 것부터 계산이 어긋나서 함정에 빠진 느낌이고, 나는 복수 외에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거야! 해놓고 남자 때문에 이용당하고, 가족을 죽인 사람 옆에서 그를 위해 일하고 있는 오빠를 결국에는 받아들이고.. 이런 게 전체적으로 좀 제가 원하는 주인공 상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로맨스는 차라리 그냥 없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누군가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퀸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지..?


 중간에 전설의 왕자 너무 싫어서 아 그냥 다 때려쳐 에벌리 없으면 너도 망한다는 거잖아? 내가 에벌리였으면 나 네 말 안 듣고 죽어버릴 테니까 너도 그냥 망해버려라! 나 없으면 네가 뭘 할 수 있어? 또 300년 기다릴거야 뭐야 할텐데 싶었는데ㅋㅋㅋㅋ 뭐 판타지 주인공이 그렇게 쉽게 자기 목숨을 포기하면 이야기 진행이 안 되겠죠ㅋㅋㅋ 근데 진짜 에벌리 죽어버리면 복수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버렸다는 점에서, 약간 저랑 이 소설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주인공이 싫어서가 아니라 빌런 엿먹이고 싶어서 주인공이 죽었으면 하는 독자.. 음.. 좋지 않네요..


 전설의 왕자가 너무 싫기 때문에, 그 자식 망하는 거 보려고 뒷 시리즈까지 계속 볼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자기만 너무 아프고 자기만 너무 불쌍해서 남들이야 죽든 말든, 불행하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놈을 정말 극혐하는데 딱 이런 놈이거든요. 어떻게 망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거예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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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 백천수 씨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0
손서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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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성장소설을 무척 좋아하는 편인데, 읽다보면 주인공과 함께 제 자신도 훌쩍 큰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잖아요~ㅋㅋㅋ 비록 제가 직접적으로 한 경험은 아니지만 책 속에서 주인공과 함께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던 간접 경험도 차곡차곡 제 안에 쌓여서 뭔가 아주 조금씩, 0.01mm씩이라고 변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는 그 숫자가 의미 없다고 하겠지만, 그건 살면서 두고 봐야 할 일이죠. 아무튼! 저는 그래서 청소년 소설도 무척 좋아합니다. <착한 아이 백천수 씨>를 집어든 이유도 제목과 표지에서 강하게 풍기는 그 '성장'의 느낌 때문이었어요.


 제목에서 착하다고 상정된 아이는 보통 실제로 착하다기보다 착해야 한다고 몰아붙여진 케이스가 많은 것 같은데, 백천수는 정말로 착한 아이입니다. '착하다'의 정의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남을 쉽게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면요. 백천수의 엄마인 강미숙은 착하다는 걸 그걸 욕으로 받아들일 거예요. 요즘 세상에 착하다는 말은 어리숙하고 멍청하다는 말과 동의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작가도 말했듯이, 선의는 언제나 필요합니다. 백천수 본인은 좀 고달플지 몰라도 저는 백천수가 정말로 착한 아이라서 정말 좋았어요.


 시작부터 폭탄을 터뜨리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한국의 청소년들이 케냐의 아이를 죽였다' 하고 전세계적으로 보도가 되고, 아이들이 체포되는 모습을 보여줘요.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면 백천수도, 고승아도, 전혀 그런 사고를 칠 만한 아이들이 아닌 게 보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하고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마거릿이 도대체 왜 등장하는지 몰랐는데,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인물들이 접점으로 모여들면서 사건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보이더라고요.


 <착한 아이 백천수 씨>는 굳이 따지자면 청소년 문학이겠지만, 읽다보면 이 안의 어른들도 모두 아직까지 질풍노도의 시기를 힘겹게 통과하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주인공인 백천수를 비롯해 아프리카로 함께 해외연수(?)를 떠난 고승아, 그리고 갈등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라몬 타사피는 모두 아직 10대인 미성년자들이지만 정작 이 모두를 연결시키고 사건의 중심이 되는 마거릿 부인과 그의 남편 존, 그리고 해리는 성년을 애저녁에 지나친 어른들입니다. 하지만 이 중 누구도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우왕좌왕하면서 실수하고 후회하는 걸 반복해요.


 이 작품은 누군가의 사소한 선의가 사람을 살릴 때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그 선의를 지지하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누군가를 구원할 것이라는 오만한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건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강조합니다. 비행 청소년을 구원하고 싶다는 마거릿의 열망이 사실은 얼마나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골칫거리가 되는지, 혹은 아프리카에 봉사를 오는 외국인들이 사실은 얼마나 아프리카를 망치고 있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줘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적선하는 건 정말 자기만족에 불과하다는 게 잘 보여서 좋았습니다. 받는 사람은 기가 막히게 그 시혜적인 오만함을 캐치하기 마련이거든요.



 부유한 나라 사람들은 배에 지방이 너무 꼈고 생각이 지나쳤다. 그러더니 아프리카 판타지에 시달렸다. 그들은 상상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을 가졌다고. 한데 몸은 나약하고 병들어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그들은 코흘리개 어린아이들의 콧물을 닦아 주려고 막무가내로 달려들었고, 자기들보다 날씬한 아프리카 여인들에게 버터와 과자와 온갖 정크푸드를 먹이고 싶어 안달했고,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며 흉측한 건물을 지으러 몰려들었다. 또 있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온 대학생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수학을, 영어를, 세계사를 가르치고 싶어 했다. 배움만이 살길이라고 가르쳤다. 그들 또한 그렇게 배웠으니 똑같이 따라했다. 대학 때 딱히 야망을 펼칠 일이 없어서 그러기도 했다. 외국 대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가면 현지 교사들은 뒤처진 진도 때문에 애를 먹었다. - p.89 


 이런 태도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요? 우리나라에도 흔하잖아요. 기초생활수급자 애들 밥 못 먹는 건 안쓰럽다고 하면서도, 걔네가 조금이라도 좋은 밥 먹고 좋은 거 쓰면 노발대발해서는 구청에 항의전화 넣는다는 사람들이 딱 이 짝이에요. 마거릿은 계속해서 대상만 바꿔가면서 이런 태도를 고집하는데, 그러다가 케냐에서 엄청난 사고를 저지른 후에야 비로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착한 사람이 아니었어' 하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됩니다. 솔직히 저는 여기서 마거릿이 좀 더 나아가 무슨 행동을 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마거릿은 백천수와 고승아 대신 라몬 타사피를 찾아가더라고요. 정말 끝까지 기만적이다 싶어서 혀를 찼습니다;; 


 모든 게 완전히 깔끔하게 해결되지는 않았다는 느낌이에요. 백천수는 확실히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엄청난 사건에 휘말린 데 후폭풍을 온전히 무사히 견뎌낼 수 있을까? 한국으로 돌아가면 온갖 루머와 악의적인 언론에 시달리지는 않을까? 현지에서도 오해가 그대로 유지된 채로 그냥 얼렁뚱땅 넘어갔는데 이게 정말 해피엔딩일까? 뭐 이런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주인공이 이전보다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그 모든 걸 감당하고 살아야 한다면 좀.. 많이 억울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책 자체가 얇기도 하고, 전개에 속도감이 있어서 후루룩 읽혀요. 청소년 문학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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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범죄코드를 찾아라 - 세상의 모든 범죄는 영화 한 편에 다 들어 있다
이윤호 지음, 박진숙 그림 / 도도(도서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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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범죄 코드를 찾아라>는 범죄학과 형사정책학을 연구하신 교수님께서 쓰신 책으로, 범죄영화를 보면서 그 앞에서 짚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범죄학적인 요소를 알려주고 있어요. 각 영화마다 제작진과 정보, 줄거리를 설명하고 그 뒤에 영화를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포인트를 숫자를 매겨가며 나열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총 37편이나 되는 영화를 리뷰하다보니 '유명하다'거나 '이름 좀 들어봤다' 싶은 범죄영화는 거의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확실히 같은 범죄영화를 봐도, 범죄학자가 보는 시각과 일반인인 제가 보는 시각에는 차이점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인셉션>을 보면서 '다른 사람의 꿈을 공유하는 게 어떤 죄가 되는가?' 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건 확실히 정책적으로, 입법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범죄에는 구성요건이라는 게 있는데, 현행 법으로는 아무리 뜯어봐도 남의 꿈에 들어가서 아이디어를 훔치는 건 물론이고 (이건 그래도 다퉈볼 여지라도 있죠) 아이디어를 심는 건 아무리 넓게 해석해도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워낙 여러 포인트를 전부 짚어내려고 하다 보니까 각 포인트마다 아주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게 된다는 점이 좀 아쉬웠습니다.


 제가 원했던 방향과는 좀 달랐어요. 저는 좀 더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느낌의 학술서를 원했는데, 그보다는 일반인을 위한 교양 강좌처럼 상당히 가벼운 느낌이었어요. 그렇다고 아예 쉽게 술술 읽히지는 않아서 타깃이 좀 애매합니다. 번역서도 아닌데 문장이 너무 이상한? 잘못된 번역 같은? 게 곳곳에 있어요. 저자가 오랜 유학생활을 해서, 번역체를 쓰게 되었나 싶은데.. 어쨌든 검수 과정에서 걸러져야 할 문장들이 곳곳에 보입니다. 가독성이 떨어져요ㅠ


 단기 쾌락주의를 비롯한 청소년들의 부문화가 그들의 관심의 초점이 되면서 이런 것들은 때론 중상류층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보면 그 자체가 일탈일 수도 있다는 청소년비행의 원인이라고 하는 것에 설득력이 생긴다. - p.38

 이런 식이에요. 이 문장도 [단기 쾌락주의를 비롯한 청소년들의 부문화는 청소년비행의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상류층 기성세대의 관점으로 보면 때론 그 자체가 일탈일 수도 있다] 정도로만 정리했어도 더 쉽게 읽혔을 텐데.. 처음에 읽고 나서 곧바로 이해가 안 되서 앞뒤로 몇번이나 다시 읽어봤어요. 이런 식의 잘못된 번역투가 꽤 있습니다.


 그리고 한 영화 안에서 볼 수 있는 포인트를 전부 다 서술하시는데, 범죄영화라는 게 사실 어느 정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보니 자꾸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는 느낌이에요. 예를 들어 범죄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한 이론 중 하나인 '긴장이론'에 대한 설명은, 5~6번도 넘게 계속 반복됩니다. 차라리 영화를 10개 정도로 추려내서, 그 안에서 짚을 수 있는 포인트는 더 깊게 들어가 설명하고, 한 번 말한 내용은 다른 영화를 다룰 때는 그냥 넘어갔으면 어떘을까 싶어요. 범죄발생이론에 대해서 딱 정리되서 설명된 게 없어서, 영화 설명하면서 이론 이름 나올 때마다 노트에다 적어두는 식으로 체크했거든요. '긴장이론', '일상생활이론', '사회해체이론', '갈등이론' 등 여러가지가 나오는데 처음에 한번에 쫙 설명해주셨으면 훨씬 더 이해가 빨랐을 것 같아요.


 영화를 다룬 책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겨요~ 특히 제가 이전에 봤던 영화들은, 책에서 짚어준 포인트를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보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어디를 중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영화에 대한 감상과 재미가 달라지기 마련이잖아요! 범죄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특히 슬래셔 무비) 관련 포인트 생각하면서 보면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에 나온 37편의 영화를 하나씩 찬찬히 볼 예정입니다. 영화를 보는 시야가 더 넓어진 것 같아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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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와 함께 빵을 에프 그래픽 컬렉션
톰 골드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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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동안에는 즐거웠는데, 리뷰를 하려고 보니까 막막해지는 책이었어요. 저는 주로 서사나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편인데, 카툰 형식이다 보니 특정한 주인공도 없고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줄거리도 없거든요. 한 컷 한 컷이 전부 독립적이에요. 물론 '책'이나 '독서가' 혹은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풍자와 농담이 많긴 했지만, 모든 카툰이 다 그런 건 아니라서 그 주제로 하나로 엮기도 애매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어쩔 수 없이.. 제 맘에 들었던 몇몇 컷을 가져와서 보여드리면서 왜 좋았는지 설명하는 방식을 써야 할 것 같아요. 



  아 저 해맑은, 어떻게든 (예비) 독자를 좋게 평가해주려는 책의 노력이 눈물나지 않나요?ㅠ 책에 대한 내용을 공부하고 레포트를 쓰려면 당연히 책을 읽어야 할 텐데, 인터넷과 각색된 영화&드라마라는 무기가 있으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정작 그 원작은 읽지 않는 것 같아요. 심지어 그러면서 읽은 척 하고요;;; 이건 특히 소위 '고전'이라는 작품일수록 그 정도가 심하기 마련입니다. 아마 저 책도 굉장히 유명한 고전이지 싶어요. 언젠간.. 저 독자가 저 책을 읽어줬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이 카툰을 보는 우리 모두 알고 있죠. 저 독자가 절대 저 책을 집어들지 않으리라는 것을ㅠ 어린 시절 아동용/청소년용으로 각색된 것만을 읽고 원작은 보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커서 성인용으로 다시 보면 내용이 상당히 많이 다르기 마련이니까, 한번쯤 다시 접해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경험담이에요!


 이건 꼭 책에만 한정되는 내용은 아닌 게, 모든 서사에는 갈등 구조라는 게 존재하잖아요? 영화도, 음악도, 소설도, 뮤지컬도, 연극도.. 이런 식으로 어느 순간 구조나 장면을 뜯어서 보다보면 '이야기' 그 자체에 푹 빠지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요. 예전에 인상깊게 들었던 영화 관계자 인터뷰 중 하나가, 자기는 이제 영화를 보면 카메라 어디를 어떻게 잡아서 어떻게 찍어야 하고 이 장면은 어디서 어떤 식으로 붙여서 착시효과를 줬겠다 하는 식으로 영화 바깥이 자꾸 보여서 아쉽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순수하게 즐기는 게 훨씬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이 책이 오로지 '문학'과 '독서'에 한정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컷 중 하나입니다. 은근히 사회변혁이나 혁명, 운동과 같은 주제도 꽤 나와요. 물론 굉장히 시니컬한 시선으로요. 저는 특히 이 컷 마지막에 청원서에 서명 받는 모습이 꼭 우리나라 청와대 청원 같이 느겨져서 엄청 공감됐습니다. 서명을 한 것만으로도 나는 사회 변혁에 뭔가 기여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 정작 진짜 행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런 행태를 지금 한국 사회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각자 생활이 있으니 모두가 다 혁명! 운동! 변화! 이런 물결에 동참할 수 없는 건 당연하지만, 조금 씁쓸한 부분이죠.



 이건 얼마 전에 봤던 연극 <마우스피스>가 생각나서 꼽아봤습니다. '자서전적 소설'이라는 건 도대체 어디까지 현실을 가져오고, 어디서부터 허구여야 가능할까요? 모티브가 된 인물이 읽고 그게 자신을 왜곡하거나 혹은 자신의 치부? 비밀? 같은 걸 세상에 까발린다고 생각한다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문제는, 충분히 각색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같다고 혹은 다르다고 화내는 주변인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실제 현실을 가져오는 건 그래서 언제나 문제가 되기 마련인 듯 해요. 창작의 자유와 창작의 윤리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는 게 우리 시대의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

 위의 자서전 관련 컷도 그렇지만, 이 컷도 그렇고 중간중간 검은 잉크가 번짐이 좀 있더라고요;; 아무튼 그런 외부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이 컷도 '작가'에 대한 요즘 세태를 풍자하는 컷이라 재밌었습니다. 요즘 시대에 작가는 그저 글을 쓰기만 해서는 충분하지 않고, 꼭 외부적인 다양한 활동을 해야 유명세를 얻고 돈도 벌 수 있기 마련입니다. 홍보를 위해서 발로 뛰기도 하고요.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외부활동 없이 글 쓰는 것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다면, 아마 그 길을 택하지 않을까요? 그게 훨씬 더 글의 퀄리티에도 도움이 될 거구요. 하지만 그게 안되니까 출판사에서도 자꾸 압박을 주는 거겠죠? 현대 사회에서 책을 판다는 건, 참 녹록지 않은 일 같아요..



 꽤 재미있는 컷이 많아서, 5개 정도 추린다고 애를 먹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컷이 더 많았거든요ㅋㅋㅋ 신문 만평을 보는 것 같았어요! 다른 게 있다면 주제가 정치가 아니라 '책' 관련이라는 것 정도? 아무래도 외국 문화권이다 보니 패러디나 풍자 자체가 해외 작가들이나 해외 고전을 잘 알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몰라도 크게 상관은 없는 것 같아요. 워낙 유명한 작품들 위주로 흘러가거든요. 매번 이렇게 한 페이지로 유머와 풍자를 뽑아내려면 상당히 난이도가 높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번씩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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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커버
아마릴리스 폭스 지음, 최지원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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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지가 헷갈렸어요. 분명히 장르가 '소설'로 되어 있는데, 소설인 것도 같은데, 읽다보면 소설 속 주인공과 작가 약력에 그려진 인생이 100% 일치해서 소설이 아니라 '회고록'에 가까운 느낌이었거든요. 자서전 같기도 하고..? 하지만 소설이라는 장르를 선택하고 글을 썼으니 아무래도 완전히 현실은 아니겠죠. 상당 부분 각색을 거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CIA에서 출간을 막았을 것 같아요. 예민한 정보 같은 건 있으면 안 되잖아요~


 전체적으로 '나'의 인생을 술회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CIA에 들어가기 전의 기간도 길어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훨씬 더 자서전이나 회고록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그런데 대학에 가기 전, 본격적으로 첩보 생활에 뛰어들기 전의 이야기는.. 솔직히 좀 재미가 없었습니다. 작가가 정말 대단히 선하고 용감하고 똑똑하고 남다른 사람인 건 알겠는데, 그걸 자기 입으로 묘사하려는 걸 듣고 있자니 약간 민망하기도 하고요. 뭐, 아주아주 겸손하게 실제보다 축소시켜서 말한 거일지도 모르지만요ㅋㅋㅋ


 처음에 CIA 들어갔을 때, 9.11이 터지면서 단숨에 극우화된 CIA 내부 분위기가 좀 소름이 끼쳤어요. 미국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타국 국민은 죽든지 말든지 알 게 뭐야 하는 태도? 예를 들어 우리나라로 치면 거의 '김 사장님' 정도 되는 흔한 호칭을 근거로 이집트 사람 하나를 납치해 끌고가 고문한 다음, 4개월이 지난 뒤에 '어 테러리스트가 아니었네 야 우리가 풀어줄건데 우리가 했다고 말하지 마라' 하면서 길에 떨궈놓고 가버립니다;;; 그 사람은 평생 고문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영구적인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제대로 된 사과도 보상도 없어요. 자국민도 아닌 외국인에게 이런 만행을 막 저지른다니까요;;; 주인공이 거기에 대해서 항의를 하니까 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우리는 무고한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납치하고…."

 팀장이 내 말을 가로막았다. "의회에서 추궁당하고 싶어? 나는 또 다시 9.11이 일어난 다음에 망할 놈의 테러범 한 명을 풀어줬다고 고백하느니, 차라리 무고한 개새끼들을 백 명씩 체포하겠어."

 "거꾸로 된 것 같은데요." 내가 중얼거렸다.

 "뭐라고?" 

 "벤저민 프랭클린의 명언을 인용하신 거잖아요. '무고한 사람 한 명을 고통받게 하느니 죄인 백 명을 놓아주는 게 낫다.'"

 팀장은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그건 미국 시민에 한해서지." - p.148


 정말 소름끼칠 정도로 미국 중심적인 가치관 아닙니까? 미국인이 아니면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말처럼 들리잖아요;;; 주인공=화자=작가의 이상주의&인도주의적인 면을 드러내려고 일부러 더 극우적인 면을 부각시킨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묘사된 부분만 보면 굉장히 뜨악스럽죠;;; 이것 외에도 회색지대에 있는 사람들, 즉 우리 편도 상대 편도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도 '한 번 쓰레기는 영원한 쓰레기'라는 식으로 대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 작전으로 인해서 그 사람들이 죽어도 상관없다 이런? 주인공은 회색지대 인간들을 우리 쪽으로 편입하는 게 장기적으로 훨씬 이득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덕에 약간 비웃음 당하기도 하고, 갈등을 빚기도 해요.


 이 책은 CIA의 교육 과정이나 요원 모집 과정 같은 걸 그리기는 하는데, 아주 예민한 부분까지 까발렸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활약(?)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CIA 쪽으로 돌아선 무기상이나 극단적인 종교 테러를 막은 이슬람 쪽 조직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게 좀 신경쓰였어요. 만약 책 속에 쓰인 내용이 전부 사실이라면, 이 정보원이나 협상 파트너들은 이 책으로 인해 위험해지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앞서 말했다시피 CIA는 미국 국민이 아닌 사람의 안위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느낌이라, 이 책으로 인해 무기상이나 이슬람 조직원이 위험해진다고 해도 별 상관 안 할 것 같거든요. 뭐, 주인공은 그렇지 않은 걸로 묘사되니까 그걸 믿는다면 아마 책을 읽는다 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정보원 각색을 많이 했겠죠?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요.

 

 소설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감옥에 투옥되거나 자신을 숨기고 외국에서 첩보활동을 하거나 테러를 막는 대목이 아닙니다. 오히려 CIA에서 일하게 되면서 주변 그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과 일상이 단절되는 삶이라든지, 말할 수 있는 게 적기 때문에 서로에게 어느 정도까지만 허용하게 되는 CIA 내 인간관계라든지, 평생 자기가 아닌 타인으로 꾸미고 살아야 하는 거짓된 삶 속에서 자기를 잃어버리게 되는 정체성 문제라든지 하는 부분이었어요. 오히려 그런 자잘한 고민이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오더라고요. 특히 주인공이 CIA를 떠나게 되는 계기 완전 납득 가능!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작전을 해야 하는데, 작전을 망칠까봐 이런 게 아니라 아이한테 평생 다른 이름에 반응하는 법을 가르치고 거짓에 익숙해지는 법을 가르치고 이런 게 참 못할 짓이다 생각해서 그만두는 그 과정이 구구절절 이해됐어요.


 소설로 보려고 해도 자꾸 회고록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인데 홍보도 약간 그쪽 방향으로 잡은 것 같아서.. 독자로서 좀 혼란스럽네요. 이런 부분까지도 마켓팅인 건지 모르겠지만요ㅋㅋㅋ 작가 이력이 가려진 상태였으면 첩보 소설이라기엔 좀 장르성이 부족하지 않나 했을 텐데, 아예 작가가 CIA 최연소 여성요원 출신이라고 다 깐 상태라서 리얼리티가 보장된, 에세이나 자서전에 가까운 소설이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머리싸움이나 심리전 같은 본격 첩보 서사는 아니지만, 첩보원의 소소한 일상이나 고민을 엿보기에는 좋은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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