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점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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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베 미유키처럼 작품이 끊이지 않는 작가를 좋아하는 건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게다가 미미여사는 연작시리즈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작가잖아요! 주인공에게 정이 담뿍 들어버려 '아 조금 더 만나고 싶은데' 하고 아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독자들과 함께 나이를 먹고 인생의 굴곡을 거치며 사건을 맴도는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미야베 월드 제2막이라고 불리는 '에도 시대 배경'의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자와 청자가 1:1로 마주보고 괴담을 말하고 듣는, 조금은 별나고 이상한 자리로 유명한 미시마야 주머니 가게. <흑백>과 <안주>, <피리술사>와 <삼귀>에 이어 <눈물점>에서도 여전히 미시마야의 괴담 자리는 호황입니다. 다만 이번에는 놀랍게도 주인공이 바뀌었어요! 물론 그 전 시리즈에서부터 조금씩 조짐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동안 함께 괴담을 들으면서 든든한 동지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오치카가 없으니 조금은 쓸쓸하더라고요. 하지만 편집자 후기에서도 보이듯, 작가가 오치카에게도 사연에서 벗어나 행복을 거머쥘 기회를 주고 싶어했다니.. 오치카를 애정하는 팬으로서 기쁘게 보내줘야겠죠. 오치카 대신 청자로 앉게 된 이는 미시마야의 두번째 도련님 도미지로입니다. 집안을 이을 필요가 없어 유유자적하는 한량 둘째인데, 아무래도 괴담 자리에는 적당히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집안 살림에서는 적당히 거리가 있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낙점된 것 같아요.


 총 4개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습니다. 확실히 에피소드의 성격이 좀 바뀌었어요. 만약 들어주는 상대방이 여자, 그것도 시집가지 않은 처녀였다면 상대가 차마 꺼내지 못했을 민망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자다운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나름 거칠게 살아온 남자가 여자에게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도 있고요. 오치카가 '여자였기 때문에' 털어놓을 수 있었던 화자가 있었다면 반대로 도미지로가 '남자이기 때문에' 혹은 '한량이기 때문에' 털어놓을 수 있는 화자도 있다는 거죠. 괴담이 더 풍성해진 것 같아 좋기는 한데, 반대로 앞으로는 오치카에게만 말할 수 있었던 화자들은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다는 게 아닐까 싶어서 쓸데없는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눈물점]이나 [시어머니의 무덤]은 조금 부조리하긴 하지만, 그래도 뒷맛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어쩄거나 듣고 버릴 수 있는 게 확실했거든요. [동행이인]은 상대적으로 무섭다기보다는 따뜻하고 다정한 괴담이었고요. 하지만 [구로타케 어신화 저택]은 여러모로 뒷맛도 개운치 않고 일본 내에서 종교를 다루는 태도 역시 신경이 쓰여서 계속 기억에 남아요. 여운이라기보다는 계속 곱씹어 생각하게 되는 맛이 있네요. 저도 특정 유일신 종교를 믿는 건 아니지만, 작품 속에서 일본인들이 그게 기복 신앙이라고 비난하는 태도는 좀 우습지 않나 싶었거든요. 일본인들이야말로 사방팔방 모든 신에 기복을 비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모든 곳에 다 기도를 올리고 참배를 드리잖아요;; 그리고 [구로타케 어신화 저택]의 화자는 시종일관 과거 회상 속에서 좀 밉살맞게 그려지고 있어서 읽으면서 저절로 한심한 마음이 들더라고요ㅋㅋㅋ 뭐, 반성하고 새사람이 됐다니 이제 된 건가 싶기도 하지만요.


 온갖 요괴와 귀신과 신이 나타나는 나라여서 여기저기서 괴담을 짜깁기하는 게 더 쉬울 텐데, 모든 에피소드가 창작이라는 게 정말 놀라워요bb 다채롭고 부조리하면서도 또 나름대로 그 안에서는 논리와 체계를 가진 괴담이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역시 현상보다는 해석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석을 어떤 각도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같은 괴담이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나타나기도 하니까요. [동행이인]의 눈코입 없는 남자의 얼굴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처럼요. 그런 의미에서 미야베 미유키는 정말 탁월한 해석자죠! 괴담에서 이만큼 현실 세계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그동안 미시마야 주머니 가게를 사랑하셨던 독자라면, 좀 더 색다른 느낌의 에피소드를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미시마야 시리즈를 모르신다면, 반대로 <눈물점>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거슬러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괴담을 사랑하신다면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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