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편지로 보는 은밀한 세계사 - 흥미로운 역사가 담긴 16통의 가장 사적인 기록, 편지 세계사
송영심 지음 / 팜파스 / 2023년 5월
평점 :
역사는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그냥 우리가 수업 시간에 배웠던 몇 줄에 존재하던 사람들이 알고보니 나와 같이 피와 살이 있었고, 생각이나 신념을 가졌던 사람이라는 게 재밌잖아요.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텐데, 지금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현대의 시선에서 보면 너무 명백한 것들이 그때 당시에는 전혀 안 보이기도 했다는 게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신기하기도 합니다. 기록이 많을수록 더 자세히 알 수 있으니 더 흥미로워요.
<편지로 보는 은밀한 세계사>는 제목부터가 정말 맘에 들었습니다. 특히 제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책 소개글에 있던 문구였습니다. '겉으로는 칼을 겨눈 정적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신뢰하던 군신이 나눈 비밀 편지'. 이거 정조랑 심환지잖아? 와, 둘이 나눈 편지도 있는 거야?!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정조가 정적(심환지)에게 독살당했다는 설이 거의 정설이었고, 거의 대다수의 창작물이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었거든요. 그러다 2009년에 아니라는 게 밝혀지고 나서 얼마나 황당하던지.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차에 잘 됐다 싶어서 얼른 읽고 싶어졌지 뭐예요ㅎㅎ
제가 예상한 구성은 인물들의 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 소개해주는 형식이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짧게 몇 문장씩 발췌를 하는 형식이에요. 아무래도 편지가 총 16편으로 많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인물만 있는 것도 아니어서 편지를 발췌하기 전에 앞에서 배경이나 인물 설명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어서 그랬나봐요. 그래서 생각보다 여러 날에 걸친 여러 장의 편지 속 문장이 소개됩니다. 제목처럼 은밀한 것들도 있지만, 에밀 졸라의 경우처럼 아예 대놓고 '나는 고발한다!' 하는 식으로 전국민 앞에 드러낸 것들도 있어요. 제가 몰랐던 인물이나 사건도 있어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정조-심환지 부분에서 의외였던 건 심환지보다는 정조가 더 진심같았던 것?ㅋㅋㅋ하루에 막 3통, 4통을 보내기도 하고, 심환지가 답장 안 해준다고 재촉하기도 했다는데 그 문장이 너무 절절해서 깜짝 놀랐어요. '경은 그동안 자고 있었는가? 술에 취해 있었는가? 아니면 어디를 갔었기에 나를 까맣게 잊어버렸는가?'라니, 무슨 러브레터 같지 않나요? 게다가 이 둘의 관계가 후대에 밝혀진 것이 편지를 다 태워버리라는 정조의 신신당부를 저버리고 심환지가 편지를 어딘가에 남겨뒀기 때문이잖아요. 결국 정조가 더 심환지를 의지했던 게 아닌가 싶어지는 대목입니다.
개인적으로 옹정제의 밀서도 재밌었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에 툭하면 숙종이나 영정조 시대가 나오듯, 중국드라마에서도 툭하면 옹정제 시대가 등장해서 익숙한 인물이었거든요. 특히 선대 황제의 유서를 조작해 황제가 되었다 하는 음모론은 꼭 빠지지 않고 나왔던 단골 소재인데, 알고 보니 황제의 유서는 3개 국어로 씌여져서 한자를 덧붙여 고쳐쓰는 걸로는 조작이 안 된다고 합니다. 생전에 무척 억울했을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 신하에게는 차갑고 백성에게는 따뜻했던 너란 임금, 멋져...☆
필리핀의 호세 리살이나, 청의 임칙서처럼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편지를 소개하고 있어서 그것도 좋았어요! 역사 좋아하시는 분들은 적당히 재밌고 유익하게 읽으실 수 있을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