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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 2 상·하 세트 - 전2권 - 오상호 극본
오상호 지음 / 너와숲 / 2023년 4월
평점 :
어느 순간부터 검찰이나 공권력이 정의로운 드라마를 못 보게 됐습니다. 매일 제가 확인하는 현실과 완전히 다르잖아요. 게다가 사회에는 왜 이렇게 나쁜 놈들이 많은지, 또 그런 놈들일수록 어쩜 그렇게 부지런하기까지 한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선한 사람들이 피해입지 않고 살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어요. 그 와중에 만난 <모범택시>는 우리 사회의 그런 어둠을 싱크로율 99%로 그려내면서도,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통쾌한 사이다를 선사해줘서 좋았습니다.
전 <모범택시>가 히어로 장르라고 생각해요. 쫄쫄이를 입지 않고 초능력도 없지만, 누가 봐도 김도기는 영웅 그 자체잖아요. 현실 속에서는 김도기 기사만큼 온갖 곳에 다 잠입할 수 있고, 모든 적을 혼자의 몸으로 물리칠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도 '살아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게다가 계획이라는 건 늘 틀어지기 마련이니까, 드라마처럼 모든 일이 착착 맞아떨어지지도 않을 거고요. 사실 무지개운수 팀원의 얼굴을 아는 악인들이 많은데 지금껏 멀쩡하다는 것도 드라마적 허용이지 싶어요. 예를 들어 5-6화의 부동산 일타 강사(?) 그런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있으면, 당연히 문제가 되지 않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모범택시>야말로 그 어떤 히어로 영화보다도 더 판타지지만, 뭐 어때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을 맛보라고 판타지가 있는 거 아닌가요?
제가 드라마를 띄엄띄엄 보는 편이라, 어떤 회차는 드라마를 이미 본 상태에서 보고 어떤 회차는 드라마보다 대본을 먼저 보는 식으로 대본집을 읽었습니다. 같은 텍스트인데도 상당히 다른 느낌이라 재밌었어요. 개인적으로 확실히 대본을 먼저 보고 드라마를 보니까, 제 상상이랑 같거나 혹은 다른 부분들이 눈에 띄여서 재밌었어요. 특히 1호 기사 장면!! 제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멋지게 뽑혔더라고요. 텍스트로는 살짝 담백한 느낌이었는데, 영상으로 보니 워낙 존재감 있는 배우분이 아주 그냥 화면을 다 장악하시면서 카메오 역을 톡톡히 해 주셔서 감탄 또 감탄했습니다.
시즌3이 확정되어서 무지개 운수 식구들을 만날 날이 늘어나서 좋네요. 다만 모범택시 소재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한국 사회가 병들어 있다는 건 좀 씁쓸하기도 해요. 드라마 속 모든 사건들이 몇번씩이나 기사로 접했던 사건들이라ㅠ 이번엔 또 어떤 사연을 가지고 돌아올지 모르겠네요. 52983이 운행을 다시 시작하는 그날까지, 시즌2 대본집을 읽으며 찬찬히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