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 1726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류경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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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리버 여행기> 하면 대개 걸리버가 누워있고 소인국 사람들이 그를 묶어놓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아주 많은 국가에서 이 소설은 정치적인 내용이 댕겅 잘려나가고 환상적인 면만을 크게 부각한 동화로 각색되어 유통되었다고 하네요. 특히 정치적으로 독재에 가까운 나라가 더 그렇대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정치소설보다는 동화로 더 유명하죠. 저 역시 어릴 적에 동화로 처음 접했었던 이야기입니다. 너무 오래 전에 읽었던지라 동화 결말이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걸리버가 무사히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하는 식으로 끝났을 거예요. 원작과는 다르게 말이죠.


 실제 <걸리버 여행기>의 걸리버는 그렇게 행복한 결말을 약속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여러 국가를 여행하면서 얻은 인간 혐오증 덕분에 사실상 미쳐버리고 은둔 생활을 하면서 끝이 나요.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끝맺음하면 안 되지만, 이건 정말 한 구절 한 구절 대놓고 당시 영국 정치를 빗대어 풍자하고 비꼬는 소설이라 결국 인간 환멸로 끝이 나도 그러려니 싶어요. 1장 소인국(릴리펏)은 그나마 괜찮은데 2장 거인국(브롭딩낵)부터 4장 휘넘국까지는 '혹시 이거..?' 하고 의심할 필요로 없이 그냥 대놓고 정치 비판밖에 안 하거든요ㅋㅋㅋ


 3장 천공의 섬 라퓨타에 대한 이야기 중간에 출간 당시에는 너무 노골적으로 영국 국왕의 심기를 거스르는 내용이라 편집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삭제되었다 뒤늦게 추가된 내용이 있는데, 읽어보니 그럴 만하다 싶더라고요. 누가 봐도 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착취를 고발하고, 아일랜드가 혁명으로 그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식으로 읽히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어요. 만약 당시 영국 국왕이나 귀족들이 이 내용을 봤다면, 반역죄로 작가를 사형시켰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소설 속 그 혁명은 성공하기까지 하니까요;; 


 작가인 스위프트가 영국 종교-정치를 겪으며 넌더리를 냈던 경험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스위프트=걸리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화자인 걸리버가 엉뚱한 말을 하거나 잘못된 생각을 한다는 암시를 곳곳에 심어두는 방식으로, 스위프트는 걸리버마저도 하나의 풍자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고 있거든요. 걸리버는 '언어 습득에 뛰어나다'는 걸 자랑으로 삼고 그 덕에 어디에 떨어지든 놀라운 적응력으로 현지인들과 소통하는 걸 보여주는데, 정작 라틴어와 같이 독자가 알 수 있는 언어의 어원은 틀린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거인국이나 휘넘국에 다녀온 뒤에, 걸리버가 (본인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면서) 자기가 거인이나 휘넘이 되기라도 한 듯 착각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멸시하는 모습도 아주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고요. 


 그런데 스위프트와 걸리버가 분리되는 한편으로, 걸리버나 그가 묘사하는 신기한 나라의 사람들의 입을 통해 스위프트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장면도 꽤 있거든요. 그래서 스위프트가 진짜로 믿고 있는 것과 사실은 믿지 않으면서 능청을 떠는 것을 구분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예를 들어 라퓨타에서 만난, 수학과 음악을 숭상하고 나머지 학문들을 다 하찮게 여기는 지배 계급이나 허황되고 가능성 없는 연구에 평생을 바치는 과학자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건 분명 걸리버를 앞세운 스위프트의 시각입니다. 하지만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다르게 영국은 식민지의 종교와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해 아낌없는 은혜를 베푼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하는 건, 작가 본인의 진짜 사상인지 아닌지 좀 헷갈려요. 검열과 비판을 피하기 위한 작가의 방패막이일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이렇게 주구장창 영국 사회 욕을 잔뜩 해댄 작품을 내면서 그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칭찬을 했을 리가 없다 싶기도 합니다. 그런 보여주기식 찬양 해봤자 이미 기분 나빠진 영국인들은 아무도 안 속을 것 같거든요ㅋㅋㅋ 


 여성을 보는 관점도 좀 오락가락하는 게, 교육에 있어서 성차별은 멍청한 짓이고 남녀 차별없이 가르치는 걸 엄청 높이 평가하는데 (거인국/휘넘국) 정작 그 와중에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은 또 끊임없이 하고 있어서.. 


 결제, 근면, 운동, 청결은 남녀 자녀 모두에게 독같이 부과되는 교훈들이었다. 내 주인은 여자 아이들에게, 우리가 가사 노동과 관련된 몇 가지 일들을 제외하고는, 차별 교육을 시킨다는 것을 기이하게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하면, 그가 보기에는 솔직히, 우리 인구의 절반이 그저 아이들을 출산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쓸모없는 사람들에게 아이들의 양육을 맡긴다면 그건 한층 더 야만적인 일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 p.474

 이런 묘사를 보면 당대로서는 나름 깨어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의 시각으로는 그냥 성차별주의자죠. 가사 노동이나 아이들의 양육이 온전히 여성한테 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모든 얘기가 진행되고 있잖아요. 그리고 여자의 본성 속에는 음탕과 호색, 추문의 기질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둥 하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거든요. 시대가 시대인만큼, 작가의 그런 태도를 '어쩔 수 없이' 감안하고 봐야 한다는 게 현대 여성 독자의 비극이죠. 우리는 어느 고전을 읽어도 이런 식으로 '너는 열등한 존재고 나는 너를 깔아보고 있어' 하는 작가의 속내를 참고 견뎌야 하니까요ㅠ


 여성에 대한 시각 외에도, 현대에서 보면 동의할 수 없는 지점들도 꽤 보입니다. 수학이나 과학을 실용성이 없는 학문이라고 엄청나게 멸시하는데, 사실 시(詩)보다야 수학이나 과학이 엄청나게 실용성이 높잖아요? 그 시대에는 쓸모없고 무익해 보였지만, 그런 한심하고 멍청한(ㅋㅋ) 연구를 끊임없이 한 덕에 지금 이렇게 발전한 기술 덕을 보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기분이 묘했어요. 스위프트가 현대에 와서 과학이 이루어낸 성과를 보면 도대체 뭐라고 할까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나름 재밌긴 하고 여러 가지 신비한 존재들이 잔뜩 등장하는 판타지도 맞는데, 절대 아동용 동화는 아닙니다. 그러기엔 인간에 대한 환멸과 절망, 체념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요. 정치에 참여도 해보고 실망도 해보고 인간관계 다 때려치고 산이나 들어가서 살고 싶다는 충동도 느껴본.. 그런 성인 분들이야말로 오히려 어릴 때보다 더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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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1 -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 1900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손인혜 옮김, 윌리엄 월리스 덴슬로우 그림 / 더스토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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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즈의 마법사>는 아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함께 현대 환상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명작일 겁니다. 평범한 소녀가 낯선 세계로 떨어져 모험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단순하면서도 이입하기 쉬운 구도로 되어 있어요. 출판 당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영화로, 애니로, 뮤지컬로, 드라마로 다양하게 만들어지면서 대중문화에 어마어마한 족적을 남겼죠! 지금도 '도로시'나 '토토'라는 이름뿐만 아니라 '하늘로 떠오르는 집'이나 '은 구두', '노란 벽돌 길' 같은 요소가 영미 작품에 나온다면 거의 100%의 확률로 <오즈의 마법사>에 대한 오마쥬라고 보시면 돼요.


 <오즈의 마법사>는 14권이나 될 정도로 긴 시리즈인데, 우리가 대부분 알고 있는 '도로시가 토네이도에 휘말려 오즈의 나라에 떨어지고, 집으로 가기 위해 허수아비-양철 나무꾼-겁쟁이 사자와 함께 오즈의 마법사를 만난다' 하는 줄거리는 1권 내용입니다. 사실 작가는 처음에 장편 시리즈로 만들 계획이 아니었던지라 뒤로 갈수록 설정에 모순되는 점이 보인다고 해요. 당연하게도 1권만 놓고 보면 그런 설정충돌 없이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지만요. 짧은 내용인데도 도로시가 몇 번이나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 정말 좋아요. 그냥 단순히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기만 하면 모든 게 다 잘 되는 식이 아니잖아요.


 <오즈의 마법사>가 1900년에 출간되었는데, 그 후 한참이 지나도록 여기에 담긴 상징이나 은유를 시대와 연관지어 생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용기를 원하는 겁쟁이 사자는 그저 용기가 필요한 우리네 보통 사람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여진 거죠. 그러다 1964년 고등학교 선생님이던 헨리 리틀필드라는 사람이 1900년대 당시 시대와 엮여서 <오즈의 마법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노란 벽돌 길은 '금본위제도', 은 구두는 '은본위제도', 에메랄드 시티는 '워싱턴 D.C.', 허수아비는 '농민', 양철 나무꾼은 '공장 노동자', 겁쟁이 사자는 '민주당', 도로시는 '평범한 미국의 중산층 서민' 이런 식으로 바꿔서 보면 딱 맞아떨어진다는 거죠. 작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지만 워낙에 딱 맞아떨어지는 비유라 지금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해요. 


 물론 저 해석을 지지하지 않으셔도 OK입니다. 환상문학의 매력이 뭐겠어요? 시대적 배경을 읽어내도 재밌지만 그냥 이야기 그 자체로 봐도 재밌다는 거 아니겠어요? 모든 훌륭한 작품이 그렇듯, 그냥 인간 본성에 대한 우화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예를 들어 각각 뇌-심장-용기가 없어서 불행하던 허수아비-양철 나무꾼-겁쟁이 사자에게 오즈가 약간의 사기를 쳐서(?) 각자 원하던 것을 가졌다고 믿게 하는 장면을 볼까요. 각자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스스로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사실은 네 속에 이미 네가 원하는 미덕이 있다고, 너는 충분히 멋진 존재고 네가 그걸 믿기만 하면 된다고 일러주는 내용으로 볼 수도 있잖아요. 주인공 4인방이 모두 알고보니 자기가 이미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서 정말 멋진 메세지 아닙니까?!ㅎㅎ


 <오즈의 마법사> 같은 유명한 작품은 읽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다른 장르로 접했을 뿐 정작 원본 책을 읽어본 사람은 의외로 적다고 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환상문학을 너무너무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환상문학을 좀 더 많이 읽고 좀 더 많이 이야기하고 좀 더 많이 만들어내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환상의 세계를 구경하는 것도, 그리고 거기서 은유나 상징을 읽어내는 것도, 그리고 지금 현재의 모습을 겹쳐보는 것도 무척 재밌고 근사한 경험이니까요. 혹시 아직까지 <오즈의 마법사>를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오늘이 바로 기회입니다. 저랑 같이 오즈의 세계로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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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빨강머리 앤 (티파니 민트 에디션) - 1908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루시 모드 몽고메리 저자, 박혜원 역자 / 더스토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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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강 머리 앤>은 ANNE 시리즈의 첫 번째 책입니다. 워낙에 인기가 많은 작품이라 단편까지 포함하면 11권이나 되는 시리즈인데, 대부분의 독자들이 익숙한 내용은 1권인 <빨강 머리 앤> 정도인 것 같아요. 앤이라는 고아 소녀가 마릴라와 매슈에게 실수로(!) 입양되고, 옆집의 다이애나와 천년의 우정(ㅋㅋ)을 나누고, 길버트와 서로 1등하겠다고 경쟁하면서 눈에 불을 켜고, 좌충우돌 사고를 쳐가면서 마을에 녹아드는.. 그 모든 과정이 1권에 다 담겨 있답니다. 2권부터는 이제 앤이 대학생이 되고, 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점점 나이들어 결국에는 세상을 떠나는 장면까지 천천히 나온다고 해요. 어릴 때 이 작품을 만나 커가면서 한 권씩 차례로 읽다보면, 말 그대로 앤과 함께 같이 늙어가는 기분일 것 같아요!


 일본 애니메이션 덕분에 활자 속에서 살아숨쉬는 앤과 다이애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애니메이션을 직접 본 세대가 아닌데도, 워낙에 인터넷으로 그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많이 접해서 자꾸 떠오르더라고요. 그 밖의 인물들은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캐나다 드라마와 창작뮤지컬 <앤ANNE>에서 등장했던 배우들로 상상했어요. 3D로 이미 접해서 상상의 폭이 줄어드는 건 조금 아쉽지만, 대신 훨씬 더 생생하게 그릴 수 있는 건 좋았습니다. 특히 목소리나 말투가 귀에 들리니까 대화 장면이 더 술술 읽히더라고요~ 하지만 역시 가장 좋은 순서는 책-영상-책인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모습과 비교하는 재미도 있잖아요.


 사실 지금 시대도 마찬가지겠지만, 소설 곳곳에서 '고아'에 대한 인식이 형편없다는 게 드러나서 씁씁했습니다. 처음에 마릴라와 매슈가 일꾼 남자아이를 하나 입양할 거라는 얘길 했을 때 린드 부인이 자꾸 어디에서는 고아가 집을 태웠다더라, 어디에서는 고아가 우물에 독을 풀었다더라 하는 얘기를 하면서 겁을 잔뜩 주죠. 이후에 앤이 과격한 행동을 보이거나 잘못을 저질렀(다고 오해했)을 때 마릴라가 믿을 수 없는 애를 집에 들였다고 내심 생각한다거나, 앤의 좋은 친구인 조세핀 할머니가 고아원에서 여자아이를 입양하다니 멍청하다고 생각했다는 묘사를 봐도 그래요.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 보호자 없이 일정 기간 동안 자랐다는 것이 이렇게 큰 낙인이 찍히는 사회라니! 앤이 초록 지붕 집에 처음 왔을 때 마릴라와 한 대화를 보면 이 쪼끄만 소녀가 그동안 얼마나 형편없는 환경에서 지냈는지 보여서 눈물이 난다니까요.


 "그 사람들, 그러니까 토머스 아주머니나 해먼드 아주머니는 잘해 주셨니?"

 "아, 네......."

 앤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정을 고스라니 드러낸 작은 얼굴이 갑자기 빨개지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 두 분 다 잘해 주려고 하셨어요. 될 수 있는 한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 주려고 하셨을 거예요. 잘해 주려고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 그 사람이 항상 잘해 주지 못해도 괜찮잖아요. 두 분은 나 말고도 걱정거리가 많았으니까요. 술주정뱅이 남편을 둔 것도 정말 괴로운 일인데, 세 번이나 연달아 쌍둥이를 낳았으니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아주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래도 두 분은 제게 잘해 주려 하셨던 게 확실해요." - p.72

  워낙 어릴 때 읽었던 책이라 그런지 다시 읽으니 새로운 부분이 많이 보였습니다. 이렇게 짧은 대화를 들으며 책에는 나오지 않는 고아 소녀의 전사(前史)를 추측하고, 어떻게든 자기를 키워줬던 어른을 나쁘게 말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이의 심정을 비통해하며 눈물 흘리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아마 제가 이제는 앤에게 이입하기보다는 앤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마릴라에 심정적으로 더 가까워져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는 마냥 신나는 모험 같기만 했는데, 어른이 된 지금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걱정도 되서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마릴라의 훈육 방식에 동의했다가 동의하지 못했다가, 제가 앤을 키우는 것도 아닌데 책을 읽으면서 혼자 막 심각했답니다. 제 기억보다 앤이.. 정말 과격하더라고요..ㅎ


 특히 길버트가 홍당무라고 놀렸다고 바로 석판을 들어 머리를 내려쳤던 사건! 만약 제 동생이나 조카가 그랬다면 기겁하고 상담을 알아봤을 거예요. 그 또래 애들이 서로 별명 만들어 부르고 놀리고 하는 건 흔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놀림받았을 때 앤의 대처가 너무 잘못됐어요. 제 기억 속에서는 길버트가 앤을 많이 괴롭혔던 것 같은데, 정작 소설 속에서 길버트가 한 일이라고는 처음 만난 빨강 머리 여자애한테 "홍당무" 하고 딱 한 번 놀린 게 다라서 앤의 대응이 너무 과격하고 일방적이었다 싶더라고요. 이 부분만큼은 정말 마릴라가 심각하게 걱정할 만 했다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앤의 일방적인 잘못이 아니었던 '딸기주스 사건'이나 '보트 침몰 사건'에 비해 어른들이 가볍게 넘어가서 좀 놀랐어요. 1900년대의 캐나다와 2020년의 한국의 인식은 정말이지 큰 차이가 있나봐요;; 하지만 저 석판 사건만 빼면, 대체로 앤은 이렇다 할 문제 없이 그저 일상 속에서 소소하게 좌충우돌하면서 무럭무럭 잘 자랍니다.


 앤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다이애나죠! 제가 봤을 때 <빨강 머리 앤>이 가지는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여자아이들의 사랑과 우정을 제대로 그려냈다는 점인 것 같아요. 보통 소녀의 성장담을 그리는 작품들을 보면 로맨스의 비중이 지나치게 크단 말이죠. 마치 여자아이의 모든 관심과 로망은 연애와 결혼에 있는 것처럼 그려지잖아요. 하지만 <빨강 머리 앤> 같은 경우, 앤의 옆에 설 수 있는 딱 한 사람을 꼽는다면 쥐똥만큼의 로맨스를 보여주는 길버트가 아니라 서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에이버리에서의 모든 인생과 추억을 함께한 다이애나가 될 거예요. 서로 만남도, 우정도, 비밀도, 약속도, 심지어 절연과 재회까지도 너무너무 운명적이고 드라마틱하지 않나요? 어린 시절 친구랑 교환 다이어리 쓰고 "우리는 평생 베프야" 같은 맹세를 해본 소녀들이라면 앤과 다이애나의 우정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니까요ㅋㅋㅋ 어른들은 조금 우스워하지만 본인들은 엄숙하고 진지하다는 점이 너무 너무에요ㅋㅋㅋ


 성장소설을 읽다 보면 왠지 저 자신도 주인공과 함께 그 시절을 살고, 주인공과 함께 한 단계 뛰어넘은 것 같은 아련한 기분이 들곤 하는데 <빨강 머리 앤>도 마찬가지입니다. 후반부 보면 제가 키운 것도 아닌데 막 마릴라-매슈에 이입해서 앤이 1등으로 시험 통과하고, 심지어 퀸스에서도 딱 한 명만 주는 장학금을 받고, 도시 전체가 모인 앞에서 시 낭송을 하는 게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어요. 아이고 내 새끼 모드에요. 가슴으로 낳은 내 딸이라니까요 하 진짜.. 한 번 읽기 시작하니까 다음 시리즈도 계속 읽고 싶어요. 앤처럼 똑똑하고 매력적인 아이가 어떻게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지 보고 싶으니까요. 에이버리로 돌아온 후의 이야기는 거의 몰라서, 아예 새로운 기분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더스토리에서 민트 에디션으로 시리즈 전체 쭉 내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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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 - 1912년 오리지널 초판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진 웹스터 지음, 허윤정 옮김 / 더스토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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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읽은 서간체 문학이 바로 <키다리 아저씨>였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그전까지는 한번도 이런 식으로 온통 편지글로 쓰여진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었던지라 정말 신기했죠.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에게 퍼붓는 이야기인데도 흐름이 있고 서사가 있고 스토리가 이어진다는 게 정말 재밌었어요. 물론 엄청난 부잣집 후원자가 가난한 고아 소녀에게 아낌없는 후원을 해준다는 설정 자체도 뭔가 꿈 같아서 좋았답니다~ 어른이 된 지금 다시 만나본 <키다리 아저씨>가 그때만큼이나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역시 잘 쓴 작품은 언제 읽어도 재밌는 법인가봐요. 


 <키다리 아저씨>는 역시 주인공인 제루샤 애벗, 애칭 주디의 사랑스러움과 생기발랄함에 엄청나게 기대고 있는 작품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디의 시선으로, 주디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읽으면 읽을수록 이 고아 소녀가 글쓰기에 얼마나 재능있는지 또 얼마나 똑똑하고 독립적인지 느끼게 돼요. '키다리 아저씨'라는 애칭만 해도 그렇죠. 누가 자기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얼굴 모를 후원자에 대고 간 크게 거미 이름을 애칭이랍시고 붙인답니까? 한국어로 초월번역 되어서 그 당돌함이 묻힌 감이 있는데, 영어 원문을 보면 Daddy-long-legs 라는 거미 이름이잖아요. 만약 존 스미스 씨가 조금이라도 옹졸해서 그 호칭 맘에 안 든다고 기분 나빠했으면 대학 생활 시작해보기도 전에 끝날 수도 있었다구요;;; 그때는 첫 편지라 키다리 아저씨가 그 정도는 받아주겠거니 하는 계산도 없었을 때잖아요. 정말.. 대담한 아가씨입니다..


↑ 이런 귀여운 그림으로 자기 반성을 어필하는 소녀에게 어떻게 계속 화를 내겠어요?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올라온 적이 있는데, 소설과 뮤지컬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저비스'가 직접 등장해서 자기 이야기를 가지느냐 아니면 끝까지 어둠 속에 묻혀 드러나지 않느냐 하는 부분일 겁니다. 사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어린아이였을 때도, 소설 속 저비스 씨가 무척 음흉하게 느껴져서 둘이 이어지는 게 좀 싫었어요ㅋㅋㅋ 특히나 키다리 아저씨가 방학 동안 샐리네 집에 가지 말고 농장으로 가라고 일방적으로 지시한 후에, 갑자기 농장에 저비스 씨가 '우연히' 뿅 하고 나타나서 꽁냥대는 부분에서 어린 나이에도 '키다리 아저씨가 저비스구나!' 하는 느낌이 팍 들더라고요. 저비스 씨가 뒤에서 교묘하게 다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별로였어요. 어른이 치사하게 이래도 되나 싶은 느낌? 주디가 편지에 지미에 대해 쓰기만 하면 득달같이 달려와서 자기를 어필하는데, 이건 반칙이잖아요! 이번에 읽을 때도 마찬가지 인상이었습니다. 저비스가 주디의 선택권을 다 빼앗고 자기랑 사랑에 빠지게 조종한 거나 마찬가지에요. 이게 평범한 남녀관계였다면 이런 계략(?)이 용인될 수도 있겠지만, 둘은 후원하고 후원받는 관계잖아요. 불공평할 수밖에 없죠.


 뮤지컬에서는 편지를 읽는 게 자기라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있고, 후회도 하고, 고백할까 몇번이나 망설이는 장면들이 있어서 그나마 좀 상쇄가 되는데 소설에서는 그런 거 하나도 없이 오직 주디 시점만 나오니까, 후원자 권력을 남용하는 것 같고 그래요. 아무래도 현대의 독자들은 관계에 있어서도 '권력'이 작용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거겠죠. 게다가 뮤지컬에서 비슷한 나이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과 달리, 소설에서는 14살 차이라고 딱 명시를 해버리니까 '자신이 후원하는, 14살이나 어린, 조카의 친구를, 자기 외에 다른 남자는 못 만나게 교묘히 조종하는' 얼굴 없는 남자로 느껴져서 거부감이 들더라고요. 주디가 사랑에 빠져버렸고, 주디가 행복하면 다 된 거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쨘! 내가 후원자였어! 이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어~! 하고 외치는 저비스 씨가 너무너무너무 못마땅합니다. 주디는 더 괜찮은 남자를 만났어야 해요 흑흑..


 <키다리 아저씨>가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여러 가지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얘기 너무 좋아해요! 이 작품으로 고아원 출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없어지고, 고아원에 대한 후원도 많이 들었대요. 결정적으로 여성에게 투표권이 생기는 데에도 엄청나게 공헌했다는 거예요! 잘 쓴 소설 하나, 열 정치인 안 부러운 상황.. 한편으로는 조금 웃기기도 합니다. 그전에도 그후에도 여성의 지적 능력이나 판단력은 똑같았을 텐데, 소설을 읽고 나서야 '아 여자도 생각이란 걸 할 수 있구나' 하고 바뀌었다는 거잖아요. 가끔 보면 정말 사람들의 편견이 무섭다 싶어요.


 원낙 일상을 재미있게 조잘대는지라,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게 되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읽고 어릴 때 친구랑 서로 애칭 만들어서 비밀 편지 쓰기 시도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다시 읽어보면 다른 독자분들도 저처럼 주디에게는 더 큰 애정을, 저비스 씨에게는 조금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시지 않을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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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오만과 편견 - 189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제인 오스틴 지음, 김유미 옮김 / 더스토리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무뚝뚝하지만 알고 보면 다정한, 소위 '츤데레'한 매력을 가진 남자 주인공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그냥 대놓고 잘해주면 되지 왜 상대방이 상처받게 겉으로 무뚝뚝(을 빙자해 무례)하게 구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거든요. 그렇지 않나요? 대부분 앞에서 잘 못하는 사람은 뒤에서도 잘 못 하더라고요ㅋㅋㅋ 하지만 그런 저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츤데레 로맨스 조합이 바로 <오만과 편견>의 리지-다아시입니다. 거의 모든 현대판 로맨스의 원형을 담고 있는 이 명작, 지금 다시 읽어도 재밌더라고요!


 작년에 연극으로 올라온 <오만과 편견>을 봤더니 소설을 읽는 내내 배우들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재생되서 혼자 킬킬거리면서 읽었답니다. 특히 속물근성에 늘 수선을 피우는 베넷 부인이나 깐족거리면서 방정맞게 잘난 체 하는 콜린스 목사 같은 경우 본인은 그런 줄 모르는데 우스꽝스러운 게 핵심이잖아요. 연극 덕분에 한국어로 쉽게 상상이 되니까 좋았습니다. 다른 장르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작품을 읽으면 이런 점에서 참 좋아요. 리지는 누구, 다아시는 누구, 리디아는 누구.. 이런 식으로 자기 맘에 드는 이미지를 골라 상상할 수 있잖아요. 참고로 다아시는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 남자, 콜린 퍼스 버전으로 상상했답니다. 다들 그러지 않으시려나요?!


 대부분 독자들이 영국 계급제를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해서, 신데렐라 로맨스로 오해하기가 굉장히 쉬운 것 같아요. 하지만 찾아봤더니 리지네 집안 자체는 계급이 낮지 않다고 해요. 베넷 씨가 젠트리 계급이니, 우리로 따지면 양반에 속해있다고 하더라고요. 다만 베넷 부인이 상인 계급 출신이라, 외가 쪽이 약한 편이래요. 리지가 "저는 신사의 딸"이라고 했을 때, 캐서린 백작부인이 그건 인정하면서도 외가 쪽을 걸고 넘어진 걸 보면 확실히 친가 쪽 계급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가문만 따지면 빙리보다도 더 단계가 높다는 말이 있어서 놀랐어요. 이쪽은 돈이 많은 신흥 부르주아라 그렇지, 계급 자체는 상인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베넷 부인이 자기네 집은 하인과 가정부와 요리사가 있어서 딸들에게 요리를 시키지 않는다고 불쾌해하는 부분도 있고, 하인들 앞에선 베넷 부인이 말실수하지 못하게 가정부에게 하소연하도록 내버려둔다는 묘사도 있고, 베넷 씨의 1년 수입이 2천 파운드라는 말도 나오는 걸 보면 여유있는 집안이긴 한 것 같아요. 부자 독신남이라는 빙리가 연간 4천 파운드의 수입을 얻으니, 2천 파운드면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니죠. 다만 지참금을 챙겨줘야 하는 딸이 5명이나 있는데다, 남자 형제가 없어서 베넷 씨가 사망하는 그 순간 모든 재산이 전부 남의 손에 넘어간다는 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이 로맨스의 멋진 점 중 하나는, 리지도 다아시도 둘 다 성장하고 변화해서 서로에게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첫번째 청혼 때의 다아시는 정말 별로거든요. "당신 집안은 열등하고, 그 때문에 나는 자존심이 상하고, 당신 같은 여자를 좋아하는 일이 내 계급에 어울리는 일도 아니라서, 나는 정말 괴롭지만 그래도 말하겠다" 이런 발언을 청혼이랍시고 하는 남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나중에 다아시 본인이 고백하는 바에 따르면, 세상에나, 이런 망한 플러팅을 하면서 정작 상대가 거절할 거라는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었잖아요. 정말, 리지를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하지만 첫번째 청혼에서 리지에게 호되게 비난을 받은 후에, 다아시는 리지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고 부끄러워하고 반성합니다.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요. 이건 리지도 마찬가지라서, 다아시의 편지를 받고 나서 '남을 꿰뚫어볼 줄 아는 눈'을 가졌다고 착각하며 함부로 다아시에게 또 위컴에게 가졌던 편견을 반성합니다. 그래서 두번째 청혼 즈음에는, 둘 다 이전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되어있어요. 누구 한 사람이 맞추는 게 아니라 둘 다 서로에게 맞춰 조금씩 변화하는 거죠. 정말 멋져요!  


 <오만과 편견>에서 엄마인 베넷 부인과 리디아가 악역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실제로 어느 정도 악역이 맞지만), 그 둘이 없었다면 리지가 다아시와 연결될 수 없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이 로맨스에서 맡은 역할이 있는 거죠. 만약 베넷 부인이 제인을 마차가 아니라 말에 태워보내 빙리 씨네 집에 묶어두지 않았다면, 리지가 아픈 언니를 만나기 위해 3시간이나 길을 걸어 그 집에 찾아가지 않았겠죠. 그 날 아침 리지의 "두 눈이 반짝거리"는 걸 다아시가 못 봤을 테고요! 리디아의 경우는 더 명확합니다. 리지아가 그렇게 엄청난, 리지네 집안 자체적으로는 절대로 해결하지 못할 사고를 치지 않았다면, 다아시가 끼어들어 중재할 일도 없었을 테고 둘이 다시 엮일 일도 없었겠죠. 리디아의 야반도주는 꼭 필요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그걸 이해한다고 해서 베넷 부인이나 리디아가 더 좋아지거나 하지는 않더라고요;;; 특히 리디아가 끝까지 반성하지 않고 뻐기는 걸 보는 일은, 엘리자베스에게 이입한 독자로서는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평생 다아시 재산에 빨대 꽂고 살겠지 싶어요. 으윽..

   

 현대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리디아가 '결혼도 하지 않고 남자랑 야반도주한 것'이 다른 식구들에게 도대체 얼마만큼의 타격일까 감이 잘 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영문학 전공한 친구들에게 물어봤는데, 한번에 확 느낌이 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굳이 현대로 바꿔 말하자면 '막내여동생이 가족 모두를 끌어들이는 연대보증을 서고 정작 본인은 잠수탄 것'에 가깝다고요. 와, 정말 확 와닿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나머지 식구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얘네를 찾아내서 어떻게든 결혼을 시켜야 하는 상황인 거예요. 아니면 다른 식구들도 전부 시궁창에 한꺼번에 끌려들어갈 위기니까요. 가족에게 이런 문제가 있으면 제인-리지가 결혼을 영영 못할 정도는 아닌데 결혼할 수 있는 남자의 수준이 엄청나게 떨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결혼이 여자의 유일한 생계 수단인 상황을 고려하면 정말 엄청난 위기인 거죠. 그나마 결혼을 시키면 보증과는 달리 수습이 된다고 하니 다행이지요;;



 인생을 뒤바꿀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로맨스를 다루고 있는데도, 흥미진진하고 뒤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는 게 정말 신기한 작품입니다. 등장인물이 입체적이라 매력적이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제인은 너무 사람을 좋게만 보려고 해서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그런 태도를 지녔기 때문에 다아시를 오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재산과 신분 차이가 있는 남녀가 단지 외적인 조건 뿐만 아니라 내적인 조건 때문에 어긋날 뻔 했다가 결국 이루어진다는 지점도 단순한 신데렐라 로맨스가 아니라서 좋아요! 로맨스를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다들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명작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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