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시인 김수영 서거 5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사후 고인의 작품에서 나오는 인세를 기반으로 돈을 보태서 만들어진 게 김수영 문학상이었을 것이다. 1981년부터 지금껏 시상해오고 있는데 이 상을 받은 시인들 다수가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한 시인들이다. 물론 개중에는 지금으로서는 전혀 존재감이 없는 몇 사람도 끼어 있는 것이지만….
얼마 전부터는 순전히 출판사에서 알아서 상을 준다고 하는데, 최근 수상자들의 수상작을 몇 편 읽어봤지만, 솔직한 말로 예전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에게서 기대함 직한 뭔가를 가진 시인들이 없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시인을 뽑아 상을 준 것인지 모르겠다는 느낌이다. 특히 다른 시인의 이름을 걸고 주는 상도 아니고 김수영 문학상인데….
김수영이야말로 자유와 부정, 비판 정신의 상징같은 존재인데 최근 수상자들의 시에서는 그런 기운을 잘 느낄 수 없다. 여기에는 뭔가 내가 알지 못할 내막이 있을 듯하다. 여하튼 이렇게 되면 결국 김수영 문학상은 없느니만 못한 형국이 돼 버릴 게 분명하다.
예전 날고 긴다 하는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 중 여전히 활발하게 시를 써내는 사람 중 한 사람이 김혜순이다. 김혜순이란 이름이 생소한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같다. 이름 자체는 상당히 착하고 고분고분한 성격의 전통적 여인상을 연상케 한다. 이런 이름의 시인이라면 “여성적 서정성”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그런 부류의 시를 연상케 된다.
그런데 정작 시는 그렇지 않다. 이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지식인연하고, 쓸데없이 난해한 지적 유희와 피해망상의 시만을 주야장천 써내는 시인 취급을 곧잘 받는 사람이다. 등단할 때부터 그런 부류의 시들을 써왔으니 근 40년 가까이 그렇게 살아온 셈이다. 이 정도면 주변에서 “병자”란 소리를 들을 법도 할 터.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연민과 짜증 같은 단순한 감정에서 시작해서 뭔가 심연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까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마음을 갖게 된다. 정말 진정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만, 기존의 방식으로는 제대로 말할 수 없어서 끊임없이 입을 여는 누군가를 옆에 두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될 수 있으면 마음을 열고 머리를 털고 그녀가 하는 말을 들으려고 해왔지만, 그녀의 시들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루트는 쉽게 발견할 수 없었던 것같다.
여성, 시하다는 지난 15년간 그녀가 써온, 시 아닌 것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흔히는 시론(詩論)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글들이다. “바리데기”, “유령”, “귀”, “몸”, “쓰레기” 같은 버려지고 억압되고 하찮은 것으로 분류된 것들 중심으로 자기 생각들을 풀어내고 있다.
대체로는 자기 시나 문학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지만 때로는 자신의 동년배 시인들이나 소설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그녀들이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려고 하는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쓸데없는 지적 유희와 피해망상의 재탕 아닐까 하는 혐의를 완전히 내던지지 못한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가 읽고 듣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도 존재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심각하게 했다. 김혜순은 세상의 주류적인 시각이 읽어내지 못하고 배제해버리고 망각해버리는 많은 것들을 고집스럽게 보듬고 자기식으로 말하려고 하는 드문 인간이라는 인간에 대한 감동도 겸해서.
김혜순의 프로필을 확인해보면 그녀는 소월의 이름으로도 미당의 이름으로도 상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소월이나 미당 그 어느 이름도 그녀에게는 오명(誤名/汚名)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녀에게는 오로지 김수영이란 이름만이 본명(本名)이다. 굳이 다른 상은 안 받는 게 나았을 텐데, 왜 받았을까. 자기한테 맞지도 않은 그 이름들을….
* 사족1: 이 시점에서 민음사는 김수영 문학상 폐지를 심각하게 고민해보는 게 좋을 듯하다. 독자든 수상자든 출판사든 결국 아무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고, 무엇보다도 고인을 욕되게 하고 있다.
* 사족2: 17세기에 침몰한 거대한 배를 인양해 전시하고 있는 스톡홀름의 바사박물관에서의 체험과 생각을 담고 있는 <시인은 가라>라는 글은 세월호 추모관이 있는 안산으로 출퇴근하는 시인의 애도와 결심을 담고 있는 글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녀와 진심으로 마음이 닿았음을 처음으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