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을 산 건 작년이고, 아마도 거의 바로 이 시집을 구매했던 것같고, 읽은 것도 그 직후였을 것이다. 이 시집은 대표적인 문학 출판사 중 하나인 문학과지성사의 대표적인 한국시시리즈 문지시인선 500권째 시집이다. 기존의 기간 시집들에서 시인당 2편씩 총 65명의 시 130편을 모아놓은 것이다. 적어도 문지 출신 대표시들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인당 2편은 너무 적기도 하고, 또 편찬자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이기는 하지만, 난 이 정도라도 이렇게 모아져 나온 게 너무 반가웠다.
살면 살수록 무엇에 기대 살아가야 하는 걸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내 삶에 대해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고 또 누군가의 속내도 알아보면서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거나 다독이고 또 삶을 위로할 무언가가 필요함을 느낀다. 그럴 때, 가장 좋은 건 영화나 소설같은 번다한 이야기들은 아닌 것같기도 하다. 물론 그런 것들이 전혀 쓸데없단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뭔가 집중하기도 힘들고 그런 시간을 내기도 힘든 이런 시절에 온전히 삶 그 자체와 나 자신에 집중하며 생각하며 느낄만한 매개가 되기에는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시는 참 좋다. 세상의 모든 시들은 낱개 포장이다. 한 번 뜯으면 다 먹어야 하는 과자가 아니다. 생각날 때마다 한 편씩 들여다 보고, 깊게 생각할 수 있다. 하루에 시집 한 권을 꼭 다 읽어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 나름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에겐 독서 습관이나 관성이 있을 것이다. 책 한 권을 하루나 이틀 안에 다 읽어야 한다는 식의... 그러나 적어도 시집과 관련해선 그런 식의 물량주의, 성과주의는 필요치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나쁘다고 생각한다. 대용량 과자를 한번 뜯었으니 빨리 먹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맛도 모르고 먹어치우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시집은 달력처럼 생각할 수 있을 때 가장 좋다. 1개월마다 한 장을 넘겨야만 하는 그 지루한 시간들의 연속이 달력이듯이 시집도 그렇게 대할 수 있어야 정말 제대로 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왜 시의 맛을 느끼지 못하고, 어렵다고만 생각할까? 난 시에 오래 머물지 않거나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한 페이지와 등가로 생각하는 그런 태도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시에 있어서 해석의 주체는 따로 있고 자기는 그냥 그런 걸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객체란 생각도 또 다른 이유일 것같다.
작년에 읽었던 이 시집을 다시 꺼내들었다. 최대한 천천히 한 편씩 한 편씩 읽고 있다. 시 독서의 목표량같은 걸 세워놓고 읽지 않는다. 그래야만 시가 마음에 들어온다. 신기하다. 한 편의 시를 열심히 해석하려고 하지 않고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처음엔 딱딱한 글자들에 지나지 않던 시어들이 어느 순간 나한테 말을 걸어오고, 나도 뭔가 그 시어들에게 말을 하게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