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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 혹은 없어짐 - 죽음의 철학적 의미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8
유호종 지음 / 책세상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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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떠남 혹은 없어짐>의 표지는 테레사 수녀가 관속에 누워있는 장면을 사용하고 있다. 마치 곤한 잠을 자고 있는 사람처럼 테레사의 얼굴은 약간 찡그리고 있다. 테레사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녀는 앞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일상적으로 접하는 무수한 죽음들에 대해 우리는 길을 떠나는 여행자의 형상을 차용한 비유적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죽음은 여전히 존재론적 사건일 뿐, 그 존재의 신비를 애써 해명하거나 이해할 필요는 없는 수동적인 사건으로 존재한다.

이처럼 수동적이고 존재론적인 사건인 죽음에 대해 그 철학적 의미를 따져보고자 젊은 철학자가 화두를 끄집어낸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떠남 혹은 없어짐>으로 존재하는데, 그의 논의의 화두가 된 것은 '뇌사'라고 하는 생명윤리적 문제이다. 흔히 말하는 죽음도 아니요 삶도 아닌 그 중간지대에 놓여 있는 모호한 사건, 뇌사를 통해 지은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모호한 인식의 근저를 파헤치고 그 죽음의 의미를 논리적으로 탐구하고자 한다.

이런 시도는 충분히 그럴 듯해보고 그 의미도 충분하다. 그러나 죽음이 존재론적 사건으로만 착색된 현실에서 그 사건을 마치 인과관계의 맥락에서 해명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보는 지은이의 인식적 관심은 생각보다는 다소 허망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의 탐구가 시작되었을 때와 비교해 그의 탐구가 끝난 시점에서 도출된 결론은 저자 자신의 인식적 관심은 물론이려니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의 인식적 관심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못한 것같다. 삼단논리적 추론을 따라가느라 골치만 아팠을 뿐, 그 과정 자체도 과연 이런 추론이 정당한가라는 의심을 곳곳에 던지게 했다.

죽음에 대한 연구가 과연 논리적 추론만으로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줄 수 있을까? 죽음은 논리적 사건이 되기에는 가려진 게 너무 많은 존재론적 사건이다. 그리고 죽음 의식에 기반한 삶은 이성적 계산에 따르기도 힘들뿐더러 자신의 계산이 반드시 훌륭한 삶을 보증해주는 것일 수도 없다. 차라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의 논리적 탐구보다는 죽음의 윤리적 탐구에 기반해 현재 삶에서 죽음이 어떤 의미를 띠고 내 삶에 녹아날 수 있는가와 같은 실천적인 측면을 다시 보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볼 때 <죽음의 한 연구>같은 소설이나 죽음과의 힘겨운 대결을 거친 이들의 자서전을 읽으며 내 삶의 죽음과 삶을 반추해보는 작업이 훨씬 의미 있는 일이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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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 산다는 것 - 숨어사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기행
박영택 지음, 김홍희 사진 / 마음산책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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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박영택의 <예술가로 산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작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일간지 주말판 북가이드를 기다리고 뒤적이는 것만이 유일한 낙처럼 되어버린 그때 알게 되었고 기회만 닿으면 꼭 한번 읽어보리라 다짐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 후 책을 읽을 시간이 적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게 되기까지는 반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왜 이 책에 마음이 이끌렸을까? '숨어사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기행'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나는 아마도 '숨어사는 예술가'라는 말이 주는 그 어떤 느낌에 무의식적으로 이끌렸던 게 분명하다. 문학, 미술, 음악 등에 한때 심취하고 그것에 자기 한 평생을 걸어보겠노라고 다짐했던 사람들은 '예술가'란 말이 주는 묘한 기대와 설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장사와 밥벌이로 비루해지고 예술마저 그 어떤 진정성도 내포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런 시대에 안락과 풍요를 거부하고 오직 자기 자신과의 대면으로 질료만을 부여잡고 형상을 꿈꾸는 자들의 세계와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신비롭다. 그들은 마치 불가의 선승처럼 일상의 번잡과 현란에 거리를 두고 지상 최저의 조건을 감수하며 오로지 자신의 내면을 길어 올리는 데만 집중한다.

나는 그들이 적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존경스럽다. 여전히 현실의 부족과 앞날의 불투명함에 기죽고 불안해하면서 아무 일도 제대로 해나가지 못하는 나 자신에 비할 때 그들은 너무나 단호하고 평온하다. 나와 그들 사이의 거리를 재보고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가늠하는 일은 불편하면서도 설레는 일이다.

화가나 사진가는 하나의 캔버스, 한 장의 필름 위에 자신을 투사한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인상을 정신 없이 흘러보내는 이미지 과잉 시대에 그런 그들의 작업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그들의 작품은 그들의 생계를 해결해줄 수도 없다. 집중을 요하는 작품 감상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에 사람들의 일상은 너무나 번잡하고, 그들의 작품은 상품을 장식하는 커버가 되기에는 너무 난해하거나 무겁다.

이 시대 예술의 존재 조건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그들의 선택은 필연적으로 은둔과 고독으로 이어진다. 일상의 버거움을 애써 던져버리고 찾은 깊은 산 외딴 골짜기에서 그들이 마주친 고독, 그 고독을 그들은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대도시의 삶도 고독하긴 매한가지지만 외적인 풍요와 내적인 고독 사이의 불화에 너무나 익숙한 현대인에게 그들 예술가의 고독은 어쩌면 한 차원 높은 고독일 것이다. 그 차원 높은 고독을 그들이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그 고독만 아니라면 우리는 좀 더 대담해지고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 여기에는 '이 시대에'라는 수식어구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환쟁이라도 시대 환경에 따라 그들의 위치는 달라질 것이므로. 그러나 굳이 그런 수식어구가 필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의 예술가라도 고독과 궁핍은 그의 본질적 존재조건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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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과 페미니즘
리타 펠스키 지음, 김영찬 옮김 / 거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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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근대성을 이해할 때 헤겔, 맑스 등의 지적 전통과 결부시키는 경우가 많다. 근대성에 대한 논의에서 헤겔과 맑스가 빠지면 뭔가 중요한 국면에 대한 이해가 누락된 것같은 주위의 시선을 받게 되는데, 이는 신맑스주의적 경향의 근대성론자 마샬 버먼의 <현대성의 경험>이나 <맑스주의의 향연>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가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맑스를 정점으로 재배열되어 있다. 물론 그에 의해 새롭게 부각된 인물들도 있긴 하지만, 그들 역시 남성들이라는 점에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러나 근대성이 비단 남성만의 전유물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성론자들의 대부분은 남성들에 의해 이루어진 작품들을 중심으로 근대성을 논하고 있다. 근대를 마치 남성의 전유물인 듯 남성의 업적과 작품만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으며, 여성들은 근대의 외곽에 존재하는 신화적 전통쯤으로 비가시화하는 일은 일종의 '해석적 폭력'일 수 있다.

리타 펠스키의 <근대성과 페미니즘>은 부제가 말해주듯이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근대성을 탐구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젠더적 관점을 겸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논의도 진정성을 획득하기 어려운 요즘 현실을 놓고 볼 때 펠스키의 이 책은 우리의 근대성 논의에서 고려되어야 할 지점을 부각시켜주는 훌륭한 예시인 셈이다.

펠스키는 그동안 여성과 주로 연관된 것으로 폄하되어 온 향수(노스탤지어), 소비의 문제에 근대성의 측면에서 중요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고급문학, 남성문학에 의해 폄하되어온 연애소설의 근대성을 복원한다. 이와 같은 작업은 결코 젠더 그 자체의 특성을 신비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근대성이 결코 남성의 영역만이 아닌 근대를 구성하고 있는 인자 모두의 것임을 밝히고, 근대성의 다양한 영역 중 특권적인 중요성을 가진 영역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젠더 논의는 이제 더 이상 페미니스트들만의 영역은 아니다. 근대성 논의 그 자체도 동일성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고 그 어떤 생산성도 쉽게 담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젠더는 근대 사회가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동일성, 다시 신화화해가는 동일성의 논리를 제어할 강력한 무기다. 이런 측면에서 리타 펠스키의 이 책은 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길을 열어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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