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과 페미니즘
리타 펠스키 지음, 김영찬 옮김 / 거름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근대성을 이해할 때 헤겔, 맑스 등의 지적 전통과 결부시키는 경우가 많다. 근대성에 대한 논의에서 헤겔과 맑스가 빠지면 뭔가 중요한 국면에 대한 이해가 누락된 것같은 주위의 시선을 받게 되는데, 이는 신맑스주의적 경향의 근대성론자 마샬 버먼의 <현대성의 경험>이나 <맑스주의의 향연>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가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맑스를 정점으로 재배열되어 있다. 물론 그에 의해 새롭게 부각된 인물들도 있긴 하지만, 그들 역시 남성들이라는 점에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러나 근대성이 비단 남성만의 전유물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성론자들의 대부분은 남성들에 의해 이루어진 작품들을 중심으로 근대성을 논하고 있다. 근대를 마치 남성의 전유물인 듯 남성의 업적과 작품만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으며, 여성들은 근대의 외곽에 존재하는 신화적 전통쯤으로 비가시화하는 일은 일종의 '해석적 폭력'일 수 있다.

리타 펠스키의 <근대성과 페미니즘>은 부제가 말해주듯이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근대성을 탐구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젠더적 관점을 겸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논의도 진정성을 획득하기 어려운 요즘 현실을 놓고 볼 때 펠스키의 이 책은 우리의 근대성 논의에서 고려되어야 할 지점을 부각시켜주는 훌륭한 예시인 셈이다.

펠스키는 그동안 여성과 주로 연관된 것으로 폄하되어 온 향수(노스탤지어), 소비의 문제에 근대성의 측면에서 중요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고급문학, 남성문학에 의해 폄하되어온 연애소설의 근대성을 복원한다. 이와 같은 작업은 결코 젠더 그 자체의 특성을 신비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근대성이 결코 남성의 영역만이 아닌 근대를 구성하고 있는 인자 모두의 것임을 밝히고, 근대성의 다양한 영역 중 특권적인 중요성을 가진 영역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젠더 논의는 이제 더 이상 페미니스트들만의 영역은 아니다. 근대성 논의 그 자체도 동일성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고 그 어떤 생산성도 쉽게 담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젠더는 근대 사회가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동일성, 다시 신화화해가는 동일성의 논리를 제어할 강력한 무기다. 이런 측면에서 리타 펠스키의 이 책은 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길을 열어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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