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로 산다는 것 - 숨어사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기행
박영택 지음, 김홍희 사진 / 마음산책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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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술평론가 박영택의 <예술가로 산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작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일간지 주말판 북가이드를 기다리고 뒤적이는 것만이 유일한 낙처럼 되어버린 그때 알게 되었고 기회만 닿으면 꼭 한번 읽어보리라 다짐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 후 책을 읽을 시간이 적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게 되기까지는 반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왜 이 책에 마음이 이끌렸을까? '숨어사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기행'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나는 아마도 '숨어사는 예술가'라는 말이 주는 그 어떤 느낌에 무의식적으로 이끌렸던 게 분명하다. 문학, 미술, 음악 등에 한때 심취하고 그것에 자기 한 평생을 걸어보겠노라고 다짐했던 사람들은 '예술가'란 말이 주는 묘한 기대와 설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장사와 밥벌이로 비루해지고 예술마저 그 어떤 진정성도 내포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런 시대에 안락과 풍요를 거부하고 오직 자기 자신과의 대면으로 질료만을 부여잡고 형상을 꿈꾸는 자들의 세계와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신비롭다. 그들은 마치 불가의 선승처럼 일상의 번잡과 현란에 거리를 두고 지상 최저의 조건을 감수하며 오로지 자신의 내면을 길어 올리는 데만 집중한다.

나는 그들이 적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존경스럽다. 여전히 현실의 부족과 앞날의 불투명함에 기죽고 불안해하면서 아무 일도 제대로 해나가지 못하는 나 자신에 비할 때 그들은 너무나 단호하고 평온하다. 나와 그들 사이의 거리를 재보고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가늠하는 일은 불편하면서도 설레는 일이다.

화가나 사진가는 하나의 캔버스, 한 장의 필름 위에 자신을 투사한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인상을 정신 없이 흘러보내는 이미지 과잉 시대에 그런 그들의 작업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그들의 작품은 그들의 생계를 해결해줄 수도 없다. 집중을 요하는 작품 감상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에 사람들의 일상은 너무나 번잡하고, 그들의 작품은 상품을 장식하는 커버가 되기에는 너무 난해하거나 무겁다.

이 시대 예술의 존재 조건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그들의 선택은 필연적으로 은둔과 고독으로 이어진다. 일상의 버거움을 애써 던져버리고 찾은 깊은 산 외딴 골짜기에서 그들이 마주친 고독, 그 고독을 그들은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대도시의 삶도 고독하긴 매한가지지만 외적인 풍요와 내적인 고독 사이의 불화에 너무나 익숙한 현대인에게 그들 예술가의 고독은 어쩌면 한 차원 높은 고독일 것이다. 그 차원 높은 고독을 그들이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그 고독만 아니라면 우리는 좀 더 대담해지고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 여기에는 '이 시대에'라는 수식어구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환쟁이라도 시대 환경에 따라 그들의 위치는 달라질 것이므로. 그러나 굳이 그런 수식어구가 필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의 예술가라도 고독과 궁핍은 그의 본질적 존재조건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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