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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의 어제 오늘 내일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7
이종희 지음 / 책세상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영화를 보고 이해하는 데 있어 굳이 영화사가 필요하지는 않다. 어떤 개별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문학사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보면 영화에 있어서도 영화사란 기껏해야 본질과는 무관한 번외의 노력이라는 인상을 가질 법도 하다. 쿠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을 이해하기 위해 1900년대 초부터 시작되는 일본 영화사를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류노스케의 원작 <라쇼몽>을 이해하고, 지극히 일본적 테두리 내에 갇혀 있는 쿠로사와 아키라 이전의 일본 영화와 그 이후의 일본 영화를 구분하게 된다면 <라쇼몽>에 대한 해석은 다른 차원에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 장르의 기원과 변천, 그 동인을 탐구하는 개별 예술사는 좀 더 차원 높은 해석을 위한 거시적 안목을 확보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필수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할리우드 영화사가 아닌 다른 지역의 영화사는 좀 차원이 다르다. 우리가 보는 영화의 90%가 할리우드 영화라고 할 때, 할리우드 영화사 읽기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되겠지만, 그 나머지 지역의 영화사를 읽는 일은 한갓 모래성 쌓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 영화사의 경우, 문화 개방이 확대되면서 그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지만, 아무리 수준 높은 영화의 고장이라 하더라도 프랑스나 이태리의 영화사가 적극적 의미를 띠기는 어렵기 마련이며, 지극히 주변적이고 번외적인 영역에 속한다.
최근 중국과의 경제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중국 영화들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영화의 현실은 우리의 7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따라 중국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도 다분히 후진 사회의 초기 모습을 닮아 있다. 농촌 풍경을 바탕으로 순박한 인심을 그려내는, 아니면 전통과 근대의 갈등상을 담아내는 중국 영화는 할리우드식 시각적 쾌락에 익숙해진 우리에게는 한마디로 촌스러운 영화라는 인상을 짙게 드리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중국 영화는 6세대 영화 감독들의 도시 영화를 통해 근대화된 모습과 문제 의식을 드러내보이고 있어 우리 영화 시장과 어느 정도 접점을 찾을 실마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중국에 대한 점증하는 관심과 더불어 중국은 그 자체가 하나의 미지의 대륙, 더 많은 관심이 투여되어야 할 땅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 영화의 어제, 오늘, 내일>은 지금까지 발견한 한국인이 쓴 중국 영화에 관한 가장 대중적인 책자이다. 흔히 5세대라고 불리는 장이모, 첸카이거의 영화들에 익숙한 눈으로 볼 때 중국 영화의 전통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알려진 영화가 적다는 사실이 중국영화에 대해 얕잡아보게 하는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후 영화에 대한 검열과 제작 편수의 제한 등으로 인해 영화적인 활기가 상당 기간 죽어 있었다는 사실은 의식하지 못했으나 눈감고 소 잡기 식의 편견이 진실에 적중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비교적 최근의 영화적 흐름까지 중국 영화의 역사를 단계 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해당 시기 대표 감독과 작품들에 대해 간략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대부분 우리가 접할 수 없는 영화들이어지만, 간략한 설명 덕택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중국영화의 개요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는 부록 성격으로 대표적인 감독의 프로필과 필모그래피를 덧붙여놓고 있다. 아직은 큰 의미가 없지만 향후 중국 영화가 본격적으로 소개된다면 이 부록이 유용한 자료 구실을 하리라 생각된다.
영화는 못 보고 영화 서적만 읽는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머지 않은 장래 중국 영화도 원하는 만큼 볼 수 있는 그런 여건이 갖춰질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은 전세계가 네트워크화되어 있으니, 중국도 고립된 섬마냥 죽의 장막을 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