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정신분석
줄리아 크리스테바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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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호학의 국제적 권위자이자 문학 비평가, 정신분석의로 잘 알려진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강연록이다. 프랑스 모 여고에서 학생들을 모아 놓고 종교와 정신분석을 주제로 펼친 강의록인 이 책은 고등학생을 청자로 한 탓인지 무척이나 정교하고 명료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고등학생들이 이 정도의 강의를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강의가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어 있다는 것 그 자체는 프랑스적인 힘과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는 결여된 이 정신의 힘을 느끼면서 읽어 나가는 과정은 하나의 신선한 자극이다.

이 책의 주제는 종교와 정신분석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독교에 대한 정신분석적인 관찰을 주제로 하고 있는 셈이다. 프로이트 역시 기독교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바 있지만, 우리에겐 별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지 못하다. 크리스테바는 기본적으로 정신분석이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사랑의 전이가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서 펼치는 욕망의 담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브라이언 드 팔머의 <드레스드 투 킬>, 우디 앨런의 <젤리그>는 크리스테바의 이와 같은 주장을 명징하게 드러내준다. 특히 <젤리그>에서 사회적 편견과 의심, 좌절에도 불구하고 환자 젤리그의 정신병적 발언을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들어주는 정신분석의의 모습은 크리스테바적인 정신분석의의 전형이라 할 것이다. 결국 치료자와 환자가 결혼 관계를 형성할 때, 환자 젤리그는 치유 단계로 접어든다. 따라서 정신분석이 사랑의 담론이라 할 때,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대죄와 부활의 관념은 동정녀 마리아라는 순결한 어머니의 표상을 등장시킴으로써 우회적인 구원을 희구하는 서구적 자아의 욕망의 표현이다.

크리스테바의 책들이 계속해서 번역되고 있다. 물론 모든 책들이 번역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저작들 상당수가 번역되었다고 보아도 좋겠다. 따라서 이제 크리스테바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달려 들어보는 일은 더 이상 차후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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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수련 옮김 / 인간사랑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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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의 이 책은 지젝의 라깡적 작업이 초기에 헤겔에 많이 의존하였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이후 저작에서 지젝이 칸트에 의존하여 작업한 것에 비하면 이 책은 헤겔적이다. 따라서 이 책만을 본 사람은 지젝이 헤겔주의자라는 사실에 의심을 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후 저작을 조금 읽어보면 그는 사실 헤겔이나 마르크스보다는 칸트나 키에르케고르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당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젝은 니체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는 독일보다는 프랑스내에서 니체가 이론적인 영감의 원천처럼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데리다 류의 해체주의와는 달리 지젝은 하버마스의 근대성 비판에 더 많이 동조하는 듯한 입장을 보인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볼 때 이 책은 지젝의 초기 작업이 헤겔에 의존하고 있음을 뚜렷히 보여준다는 점, 그리고 칸트적인 논점으로의 이동을 암시하는 일종의 징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강조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이데올로기 개념에 대한 알튀세르 류의 해석과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이론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를 주체로 호명되는 메커니즘의 문제, 그리고 그 제도화의 문제로 바라보고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과학의 의미를 중요시했다면, 지젝은 이데올로기/과학이라는 이분법을 아예 언급하지 않고, 이데올로기는 실재적 중핵에 둘러싸인 상징적 질서가 유지되는 데 있어 필수적인 누빔점, 주인기표로 보고 있다. 흔히 기표를 기의를 가진 기호로 보는 관점에서 볼 때, 그 자체의 기의를 가지지 않았지만 기표로서 기능하며 이데올로기의 작용을 가능케 하는 주인기표의 존재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알튀세르와 지젝 사이의 구분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 책은 마르크스적 증상에서 시작해서 지젝이 여러 책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따라서 지젝의 이론은 이 책을 시작으로 산포되고 재응집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책임에 분명하다. 가물가물한 철학 개념을 재반추하고, 여러 가지 개념들을 넘나들며 문맥을 이해하는 일은 분명 특별한 노동에 속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이론이 알튀세르로서 정점에 도달했다고 믿는 사람은 지젝의 이 책을 통해서 또 다른 정점을 맛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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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의 어제 오늘 내일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7
이종희 지음 / 책세상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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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이해하는 데 있어 굳이 영화사가 필요하지는 않다. 어떤 개별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문학사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보면 영화에 있어서도 영화사란 기껏해야 본질과는 무관한 번외의 노력이라는 인상을 가질 법도 하다. 쿠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을 이해하기 위해 1900년대 초부터 시작되는 일본 영화사를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류노스케의 원작 <라쇼몽>을 이해하고, 지극히 일본적 테두리 내에 갇혀 있는 쿠로사와 아키라 이전의 일본 영화와 그 이후의 일본 영화를 구분하게 된다면 <라쇼몽>에 대한 해석은 다른 차원에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 장르의 기원과 변천, 그 동인을 탐구하는 개별 예술사는 좀 더 차원 높은 해석을 위한 거시적 안목을 확보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필수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할리우드 영화사가 아닌 다른 지역의 영화사는 좀 차원이 다르다. 우리가 보는 영화의 90%가 할리우드 영화라고 할 때, 할리우드 영화사 읽기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되겠지만, 그 나머지 지역의 영화사를 읽는 일은 한갓 모래성 쌓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 영화사의 경우, 문화 개방이 확대되면서 그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지만, 아무리 수준 높은 영화의 고장이라 하더라도 프랑스나 이태리의 영화사가 적극적 의미를 띠기는 어렵기 마련이며, 지극히 주변적이고 번외적인 영역에 속한다.

최근 중국과의 경제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중국 영화들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영화의 현실은 우리의 7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따라 중국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도 다분히 후진 사회의 초기 모습을 닮아 있다. 농촌 풍경을 바탕으로 순박한 인심을 그려내는, 아니면 전통과 근대의 갈등상을 담아내는 중국 영화는 할리우드식 시각적 쾌락에 익숙해진 우리에게는 한마디로 촌스러운 영화라는 인상을 짙게 드리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중국 영화는 6세대 영화 감독들의 도시 영화를 통해 근대화된 모습과 문제 의식을 드러내보이고 있어 우리 영화 시장과 어느 정도 접점을 찾을 실마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중국에 대한 점증하는 관심과 더불어 중국은 그 자체가 하나의 미지의 대륙, 더 많은 관심이 투여되어야 할 땅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 영화의 어제, 오늘, 내일>은 지금까지 발견한 한국인이 쓴 중국 영화에 관한 가장 대중적인 책자이다. 흔히 5세대라고 불리는 장이모, 첸카이거의 영화들에 익숙한 눈으로 볼 때 중국 영화의 전통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알려진 영화가 적다는 사실이 중국영화에 대해 얕잡아보게 하는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후 영화에 대한 검열과 제작 편수의 제한 등으로 인해 영화적인 활기가 상당 기간 죽어 있었다는 사실은 의식하지 못했으나 눈감고 소 잡기 식의 편견이 진실에 적중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비교적 최근의 영화적 흐름까지 중국 영화의 역사를 단계 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해당 시기 대표 감독과 작품들에 대해 간략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대부분 우리가 접할 수 없는 영화들이어지만, 간략한 설명 덕택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중국영화의 개요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는 부록 성격으로 대표적인 감독의 프로필과 필모그래피를 덧붙여놓고 있다. 아직은 큰 의미가 없지만 향후 중국 영화가 본격적으로 소개된다면 이 부록이 유용한 자료 구실을 하리라 생각된다.

영화는 못 보고 영화 서적만 읽는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머지 않은 장래 중국 영화도 원하는 만큼 볼 수 있는 그런 여건이 갖춰질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은 전세계가 네트워크화되어 있으니, 중국도 고립된 섬마냥 죽의 장막을 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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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적 유토피아, 그 대안적 미래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0
김미경 지음 / 책세상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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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 년 간 여성학, 여성주의,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의 인식론적 지형도를 급격하게 변화시켜 놓았다. 성과 젠더 사이의 구분 관념조차 미약했던 사회에서 이제 관점 자체가 문제시되는 차원을 넘어 그 대안에 대한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상상력 자체가 화두가 되어 가는 시대로 변했다. 관념의 과잉과 더불어 찾아온 상상력의 빈곤은 현 시기 여성학, 여성주의 실천에 있어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일상에 대한 분석은 이제 넘쳐흐르는 지경이다. 그러나 그런 관념이 우리 일상에서 어떤 변화로 이어질 지를 짚어 내는 능력은 부족하다. 이것은 아마도 이론과 관념의 차원에서는 해결될 수 없는 난점일 수도 있다. 여성주의가 근대성의 중요한 문제라 할 때 그 패러다임은 지배와 피지배 사이의 전도라는 이율배반의 위험성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그런 위험성을 깨닫고 경계하는 데 있어 창조적 서사가 가능한 여성 작가의 소설에 희망을 걸어볼만도 하지만, 우리의 여성 작가들은 아쉽게도 사회학적 여성주의와는 희미한 관련성만을 가지고 있거나 오히려 그와는 역행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여성주의적 유토피아, 그 대안적 미래>는 지난 10여 년 간의 여성주의가 사회 곳곳에 전파해 온 성별 구분 관념에 대한 전복,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복을 꿈꾸는 한 여성학자의 담론이다. 저자는 한때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듯하나 독일 유학 이후 페미니스트가 되어 돌아왔다. 유독 유토피아 서사가 강한 독일에서의 유학 때문인지 저자는 유토피아 서사에 대한 욕망을 따라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그 과정에는 유학을 전후한 자신의 변화, 그리고 독일 유학 시절의 경험들, 그리고 귀국 후의 한국 현실 등이 그 예로 제시되고 있다. 저자는 성별 구분 관념의 혁파, 성별 구분 관념이 없는 자유로운 노동 사회,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남녀 관계와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서 유토피아를 꿈꿀 줄 아는 상상력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또한 이제 여성이 여성을 적대시하는 태도를 버릴 것, 그리고 사회적 강자로 군림하는 남성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여성과 연대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런 제안들 모두는 이미 친숙한 것이지만 재삼 읽고 반성하고 내면화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실제 자신의 현실을 둘러싼 억압의 실체를 파악하고 일상의 유토피아적 비전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저자가 결론에서 밝히고 있듯 저자의 유토피아 서사는 여전히 현실의 질곡과 불투명 앞에서 멀리 뻗어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 점은 이 책의 제목과의 낙차를 생각하게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일종의 징후로 봐야 할 것이다. 저자의 한계는 우리 모두의 한계이며, 우리 각자의 비전이 모아질 때 우리는 한층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그리고 힘을 가진 유토피아 서사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희망을 말하는 에른스트 블로흐와 폭풍 앞에서 거센 바람을 맞고선 천사 그 자신인 발터 벤야민, 이 둘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밑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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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할리우드의 정신분석 한나래 시네마 10
슬라보예 지젝 / 한나래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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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할리우드의 정신분석]으로 되어 있다. 제목 자체에 이미 정신 분석의 중요한 용어 중 하나인 징후가 등장한데 이어 부제는 이 책의 목적을 간결하고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영화 서적으로 분류되는 바람에 멋 모르고 이 책을 집어든 사람들이 꽤 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할리우드 그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다. 할리우드는 정신분석 강의를 효과적으로, 그러니까 선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참고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책은 할리우드 영화를 가장 비할리우드적으로 읽어 내는 영화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 중에는 영화와는 전혀 무관한 장도 있을 뿐 아니라 그 내용 자체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난해하다. 칸트의 형이상학, 인식론, 도덕론의 기본 바탕에 대한 이해가 없는 자, 그리고 프로이트와 라깡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자는 아예 읽지 않는 게 좋다.

그러나 이 책이 여러 모로 기만적이고 일탈적이긴 하지만 전혀 쓸모가 없는 건 아니다. 이 책의 저자 지젝은 영화를 자신의 정신분석적 가르침의 효과적인 예시 정도로 이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채플린의 <시티라이트>나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삼부작에 대한 분석, 그리고 필름느와르에 대한 설명은 그만의 독보적인 경지를 잘 보여주는 탁견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창적이다.

라깡과 더불어 지젝은 현실을 구성하는 위치로서의 주체에 관심을 가지고 실재라는 무시무시한 공백의 존재를 강조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의미화된 메시지로서 징후를 상징적인 질서내로의 인입을 강조하지만 지젝은 이와는 반대로 징후 그 자체를 즐기는 비타협적인 태도로서의 윤리, 그러니까 칸트가 말하는 근본적인 악을 실천하는 행위야말로 실재의 심연을 건너 이데올로기의 존재태를 직시할 수 있는 태도라는 자세를 취한다. 그러므로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라는 지젝의 말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를 강하게 사로잡는 할리우드 고전 필름느와르의 위상을 새삼 확증한다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의 표지는 히치콕의 <이창>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이 건너편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근심과 불안 어린 표정으로 지켜보는 장면인데, 이 장면이야말로 징후를 즐기는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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