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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시대정신 - 한국영화 100년, 나의 영화평론 60년
김종원 지음 / 작가 / 2020년 1월
평점 :
요즘은 넷플릭스다 왓챠다 해서 개인이 소유한 휴대형 미디어를 통해서 영화를 보는 게 일상이 됐다. 나 역시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같은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이와 더불어 유튜브를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영화를 포함한 영상 감상의 기회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실제로 많은 시간을 영상물 감상에 소비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영화에 관한 글, 범박하게 영화비평이나 영화평론이라고 할 글을 읽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인터넷 초창기만 하더라도 영화평론가들이 적잖이 활동했고 그들의 평론에 주목하는 때도 있었다. 한데 요즘은 그 흔한 별점 서비스같은 걸 신경 써서 보는 사람조차 없어진 듯하다. 영화는 살고 영화평론은 죽어버린 시대같다. 영화는 감각 체험이고 영화평론은 이론적 성찰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면 굳이 바삐 돌아가는 이 시대에 보통 사람들이 뭔가에 대해서 성찰할 여유같은 걸 논하는 게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한데 우리의 감각적, 미적 체험의 대상이 되는 것의 성격을 요모조모 따져보는 비평이라는 영역은 우리가 앞으로 더 좋은 체험을 할 수 있기 위해서도 누군가는 맡아줘야 하는 게 아닌가.
어린 시절 토요명화던가. 그 프로 할 때면 화면에 나타나 영화 소개를 간단하게 해주던 정영일이라는 영화평론가가 있었다. 그때는 그가 영화의 하느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20대 때는 약간 현학적이긴 했지만 정성일을 ‘뭔가 있는’ 자로 믿었다. 그리고 류가 다르기는 하지만 이동진같은 편안해서 이웃같은 느낌의 평론가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엔 누가 있나 생각해본다.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정영일보단 밑이지만 팔순을 넘긴 지금까지 현역에서 뛰고 있는 김종원이라는 평론가가 생각난다. 노년에 들어 얼굴엔 살도 없고 목소리도 약간 떨리지만 항상 다정한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영화 관련 인터뷰를 하는 그 모습을 볼 때면, “아, 나도 저렇게 늙어서도 미소를 지으며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이 시대가 자신의 시대인 것마냥 어떤 위축감 없이 말하는 김종원은 주로 영상을 통해서 봤을 뿐, 글을 읽어본 적은 없다. 그런데 최근에 그동안 쓴 영화평론을 모은 책이 출판됐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영화와 시대정신이라는 제목의 이 책에는 대략 2000년 이후 쓴 글들이 수록돼 있다. 영화와 역사란 제목의 1부에는 한국영화사와 관련된 글들이, 영화작가 배우론이라는 제목의 2부에는 저자가 주목한 감독이나 배우에 관한 글이, 영화일반론이라는 제목의 3부에는 1, 2부에 묶기 어려운 이러저러한 글들이 수록돼 있다.
어떤 글이든 본격적인 의미의 학술적 글은 아니고 대상을 자기식으로 소개하는 글들이 많다. 그리고 이 글들은 주로 어딘가 매체에 기고하거나 DVD 발간 시 해설로 쓴 것들이 많다. 영화평론이다, 영화 글이다 하면 손사래부터 치면서 재미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게 통상적일 텐데, 내 느낌으로는 그렇게 지루하거나 재미없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 이것보다 좀 더 긴 글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렇게 긴 호흡으로 읽지 않아도 되는 분량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소위 ‘노친네’ 글이니 요즘 감각에 맞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필자가 생각보다 젊은 감각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문체라는 측면에서도 매력은 있다. 약간 늘어지는 형태의 문체이지만 원래 시인으로 출발한 분이라 그런지 언어의 긴장감을 잘 살리는 문체여서 문학 작품적 품격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담백하고 세련된 운치를 느끼게 한다.
전체 글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글은 이창동의 「밀양」에 관한 글 「빛의 알레고리, 소외된 피해자의 용서」란 글이다. 왜 하필이면 밀양인가, 이 영화를 본 누구나 한 번쯤 자문해보는 문제일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한 번뜩이는 해석을 접하는 대목에서 방만한 독서 자세를 가다듬어야 했다.
부록으로 저자가 선정한 한국영화 100편 리스트가 있어 표시를 해보니, 대략 84편 정도를 본 것같다. 제작순 1번은 나운규의 「아리랑」이고 100번은 봉준호의 「기생충」이다. 과연 1번을 볼 날이 있을까.
이 책을 굳이 찾아 읽은 건 어떤 허전함, 아쉬움 때문이었다. 가늠하기 힘든 속도와 양상으로 변하는 삶 속에서 미처 알아채지 못한 어떤 변화, 어떤 흐름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1937년생이니 올해 우리 나이로 84세다. 올해도 노익장을 유감없이 발휘하시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