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만발하는 계절 가고 
휑한 바람 부니 
부초처럼 떠 돈 하! 많은 세월 
아리랑 고개 무심쿠나 
어디메요 어디메요   
내 가는 곳 어디메요
    
텅 빈 저자거리 위로   
초저녁 별만 반짝인다   
  

내 어릴 적 장대 들고  
별을 따던 손엔 
의미 없는 욕망으로 
찌들어진 나날들이 
푸르고저 푸르고저   
내 쌓은 것 무엇이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빌던 
영혼의 노래 듣자꾸나
  

슬기로운 영혼 어김없이 타야 할  
꽃마차의 꿈 꾸시며 
얽히고 설킨 삶의 애증들을 
애착에 매듭 푸시겠지  
뉘 말할까 뉘 말할까   
내 이룬 것 영원하다 
    
한 끼면 족할 우리 삶이   
움켜쥔 건 무엇이오

우리의 생이 단 한 번 핀  
섦도록 고운 꽃이구나 
취해도 좋을 삶을 팔고찾는 
장돌뱅이로 산천 떠도세
 
가야겠네 가야겠네   
이 땅을 위한 춤을 추며 
    
어우아 넘자 어우아 넘자   
새벽별도 흐른다 ...

 

작사,곡 곽성삼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8130504

 

 아침저녁, 가을처럼 선선하다. mp3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으며, 어서 날씨가 서늘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언제 들어도 곽성삼 아저씨의 노래는 짠하지만, 너무 더운 날에는 감당하기 힘든 가슴을 조여오는 생의 무게가 담겨있는 목소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의 노래에는 외면할 수 없는 진정성 거부할 수 없는 생명력 같은 게 담겨 있어 가볍게 듣기에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떨리는 목소리 가쁜 호흡으로 몰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어쩐지 나도 꽤 사연 많은 삶을 살아온 듯한 느낌에 괜히 한숨이 나오곤 한다.

 지금은 경기도 양지에서 '고물잡이'로 살아가며 새로운 음악을 모색하고 있는 가인 곽성삼. 한때는 성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꽤 촉망받는 작곡가 겸 가수였다 하고,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주유원, 경비원, 보일러공, 외판원 등으로 떠돌며 작업한 음반을 들고서 이십여 년만에 다시 나타난 때가 2001년이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강촌의 윌까페에서 그의 작은 공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뒤늦게 알게 된 존재, 어렵사리 구한 그의 지난 노래까지 들으며 감읍하고 있던 터라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누구도 '곽성삼'이라는 이름을 알지 못했고, 큰 기대는 없었지만 들려준 노래에도 다들 별 반응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이제는 연락이 끊겨 버렸지만 늘 반은 정신이 나가있는 듯한,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불가해한 관계로 이따금 연락을 주고 받던 후배에게 동행을 제안했다. 엠티철이 아닌 비 오는 공휴일의 강촌 윌까페는 불과 두세 테이블을 차지한 손님들로 조용했고, 그들 중 누구도 공연을 보러 온 듯한 낌새는 아니었다. 잘은 모르지만 분명 흔한 공연은 아닐텐데 참 난감한 분위기다 싶어 지레 걱정을 얹어 후배와 맥주를 나누다보니 어스름 저녁이 되었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조금은 어수선하게 별다른 주목은 없는 채로 무대에 오른 그는, 자그마한 체구에 형형히 빛나는 눈을 가진 촌로 같은 모습이었다. 한 시간 가량, 많지 않은 노래로 이어진 그의 무대는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을 만큼의 고독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그가 힘겹게 노래를 안고 살아온 세월의 자락이 풀어헤쳐진 것만 같았다. 좀은 꿈꾸는 듯이 공연이 끝나고, 다행히 그를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모시는 중년의 사내가 나타나 초라한 무대의 쓸쓸함을 보전하는 것 같았고 자리를 마련한 주인장 아저씨도 정성껏 예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쩌면 유일하게 공연에 집중하는 객석이었을 우리 테이블에 그가 찾아왔다. 어색하고 쑥스러웠지만, 비오는 날 서울에서 먼 걸음을 마다 않은 팬(?)의 존재에 그는 꽤 반색을 했고 졸지에 나는 민망한 사명감(외로운 가인에게는 든든한 귀가 필요하다는!)에 사로잡혀 가져갔던 씨디 부클릿에 싸인까지 받고 말았다. 맥주잔을 부딪히며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도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상황적으로 나와 후배는 꽤 훌륭한 젊은이들이 되어버렸고 강촌까지 친히 공연에 나선 '선생님'을 보필하는 아저씨와 함께 경기도 어느 산 속에 자리 잡은 '귀곡산장'이란 까페에 들러 막걸리를 마셨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그 만남은 이런저런 긴 이야기와 함께 다음 날 낮까지 이어졌다.

 곽성삼 아저씨는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게 자기의 노래와 삶을 보듬어 안고 가는 사람인 것 같다. 거의 아무도 그의 노래를 알아주지 않지만 존경스러울 만큼 당당하고 고집스럽다. 이미 중년을 넘어 선 나이지만 그리고 참으로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생활 속에 놓여 있지만, 그에게는 그런 것들이 개의할 조건이 전혀 아닌 것 같다. '한단고기'에 열을 올리며 새로운 작업에 골몰하는 것 같았는데, 그 쪽은 차마 마음이 동하지 않아 이따금 생각이 나면 옛 노래를 듣고 좋은 음악을 새로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정도가 내가 가진 그에 대한 관심이다. 경비실에서 화성악 악보를 펼쳐놓고 공부를 했다는 그의 중년, 그리고 이제 오십대 중반에 접어드는 그는 낮에는 고물을 잡고 밤에는 음악을 구상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눈물겨운 마음이 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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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31 0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31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31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08-31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
 

 

 

오늘도 조용히 들어봐 
물이 낮은 데로 자연스레 흐르고 
바람은 잔 가지 사이를 지날 때
가장 많은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을
그대는 왜 불도저가 밀어놓은  
황토 벌판에 쓸쓸히 서서   
듣는 이 없는 노래를 부르며 
날로 외로움 더해가는 거야

어차피 사는 일이 마찬가질진대  
누구는 열심히 작업하며 기쁘고    
누구는 또 세상의 아픔 짊어지고  
스스로 침몰해가는 기쁨 가지는지 
그대는 말해

세상은 이렇듯 분주해지고 
사람들은 물 흐르듯 밀려오고 가는데 
그대는 이 쓸쓸한 들판에 서서  
지고천 흐르는 뜨거운 바람되어
    
아무런 걸릴 것 없이  
서천으로 뻘겋게 기우는 
구름 보고 노래하면 무얼해   

 

엄봉훈 시, 작곡 한동헌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7217606

 

 1980년에 녹음했다는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의 두번째 음반에 첫번째로 실려 있는 곡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98년에 복각한 씨디인데 3년 전 청개구리 모임에서 김의철 아저씨한테 선물로 받아 그 여름과 가을 내내 일상의 배경음악 삼았었다. 군부독재의 서슬 퍼렇던 80년 여름, 그들이 얼마나 간곡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간을 졸이며 노래를 퍼뜨렸을까를 생각하면 싸구려 감상을 잔뜩 실어 듣고 또 들었던 게 미안스럽고 송구하기도 하지만... 엄혹한 시절 저항의 노래 역시, 노래는 노래.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노래의 힘은 국경만 초월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안치환도 어느 음반에선가 다시 불렀다는데, 난 김광석 아저씨의 '나무'를 너무나 좋아했던 탓에 그 곡을 붙였던 한동헌님의 목소리가 괜히 더 절실하고 진정하게 들려서 좋다. 듣다 보면 절절한 가사에 괜스레 마음이 처연해져서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런 기분이 되다보니 혼자서는 적잖이 '신개발지구에서'에 대한 향수를 뿜어댄 편이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 여름보다 훨씬 전부터 이 노래를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즈음 우연히 퍼슨웹에서 인상적인 한동헌님의 인터뷰를 보았고, 오락가락하며 자기고백을 잔뜩 토해놓은 인터뷰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노래는 그런 노래인가봐 하는 마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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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죽어가는 땅 위로 
우리들의 만신창이 땅 위로 
오늘도 매캐한 바람이 불고
오늘도 뿌연 산성비 내리고
푸른 하늘을 본 지도 참 오래 되었지 
고운 미리내를 본 지도 참 오래 되었지 

마른 땅에 꽃을 심는 이 누구인가  
어둔 땅에 길을 내는 이 누구인가   
오늘도 어디선가 검은 강은 흐르고 
오늘도 어디선가 아기들이 태어나고 
푸른 하늘을 본 지도 참 오래 되었지
싱싱한 소나무를 본 지도 참 오래 되었지

그 어느 날에나 올까 평화의 아침은 
떠날 것들 다 떠나간 그 빛나는 아침은 

 

작사,곡 백창우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7983563

 

 지난 봄, 대추초등학교에서 열렸던 비닐하우스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처음 들었다. 꿈도 꾸지 않았던 '빈 집'에 고무되어 마지막에 다 함께 이 노래를 부를 때는 그저 정겹고 익숙하다는 느낌이었다. 원래 알던 노랜가 했는데,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나팔꽃의 세번째 음반에 실려있다. 나팔꽃은 아시다시피... 김용택, 안도현, 도종환 등등의 시인들과 백창우, 김현성, 홍순관, 이지상 등등의 가수들 그리고 기타의 사람들이 '작게 낮게 느리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느슨하게 활동하는 시노래동인의 이름이다. 나름 세레머니용으로 만든 노래같기도 하지만 처음 마주쳐도 금세 눈이 익는 정겨운 시골 풍경처럼 편안하고 좀은 애틋한 노래다. 그리고 그제 학교에서, 오랜만에 이 노래를 들었다.  

 학교에서 열렸던 신영복 선생님 퇴임 기념 콘서트. 오락가락하는 비로 높아진 습도만큼 불쾌지수도 높아진 사무실에서 내내 쩔은 땀에 시달리다보니 귀찮기도 했지만, 궁금하기도 하고 또 학교 사람들 얼굴도 볼 겸 장사(924 4차 평화대행진 10만 준비위원 모집)도 할 겸 퇴근 후 학교로 향했다. 물론 나는 초대(장) 받지 못한 손님이었지만 학교에서 열리는 많은 행사들이 그렇듯 위화감이나 거리감 같은 것 없이 편한 마음으로 나선 걸음이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부터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숲' 같은 책을 읽으며 예전에 느꼈던... 차마 감동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송구한, 도저한 존경심의 몸서리 속 저 먼 곳의 신영복 선생님. 학교를 다니며 심심찮게 교정에서 마주치기도 하고 수업도 듣고 하면서 그 존재 자체에 압도 당하며 느꼈던 피상적인 신비감과 거리감은 많이 희석된 것 같다. 물론 나는 여전히 수많은 독자와 학생 중의 이름 없는 하나일 뿐이지만, 어렴풋이나마 한 공간에 속해있다는 물리적 친근감과 옅어진 거리감은 이렇게 자기중심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만인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의 주위에는 그야말로 만인이 있다. 그는 만인에게, 나의 혹은 우리의 누구가 되는 것이다. 당연한 걸. 그래서 그제, 신영복 선생님은... 이학수의, 현정은의, 김근태의 그리고 또 누구누구의 신영복 선생님. 이름을 들자면 끝도 없을 것이고, 진정 이것이 더불어숲? 너무더불어숲이구나, 하는 불퉁한 마음에 주제 넘게 씁쓸해졌다. '다 친구'라며 냉소를 날리던 선생님이 문득 그리워졌다. 공연 중간 잠시 내린 비에 나눠준 비옷을 입은 초대 받은 사람들과 여기저기 바닥에 자리잡고 앉아 비를 맞으며 구경하는 사람들, 그리고 너무나 형이하학적인 반응이지마는... 바로 따라붙은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는 '함께 맞는 비'가 무색해 괜히 혼자 낯을 붉혔다.

 하여간 불만 많은 년은 뭐 좋은 걸 봐도 이렇다니까, 라고 말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내내 느껴지는 착잡함에 제법 심란했다. 물론 그런 자리 자체가 당사자인 신영복 선생님께는 무척이나 고사하고 싶은 낯 뜨거운 자리였을 거라고, 믿고 싶다. 돈도 줄도 없는 너무 작은 학교, 성공회대가 끝까지 바짓가랑이를 잡고 물고 늘어지지 않을 수 없는 소중한 사람. 현실은 거기에 더 가까울 것이다.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교수중창단 더숲트리오는 '상록수'를 불렀다.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돈 없고 줄 없는 학교가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은 학교발전기금을 향한 절절한 갈구일런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나, 이렇게 주절대지만 나 역시 시건방지게 굽어보며 떠들어대는 건 아니다. 그냥 빈정거리고 말기에는... 이게 현실이구나, 너무 외롭고 높고 씁쓸했다.

 그래도 장사익 아저씨의 절창, 한영애의 '축복합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이 노래까지, 좋은 것도 많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알고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강렬한 현혹 앞에서 늘 무릎 꿇고는 했던, '이름 난 좋은 사람'을 향한 나의 흘깃함에 대한 급반성. 아마 지금 마음이라면, 난 이전과 다름없이 '안전한' 고인을 주로 사모할테지만 이름 난 채 살아가는 누군가를 새로 추가하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참, 어렵고 어렵고 어렵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그리고 이 노래는 그제의 학교보다는, 추웠지만 오붓했던 대추초등학교의 비닐하우스에서 훨씬 더 정겹고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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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7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08-2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님.. 부끄럽네요, 감사..^^;;
뭐라고 한 자 적었다가 왜 지우셨어요. 궁금한데...
 

 

 

마지막 너의 뒷모습을 보내며 
아무런 말 하지 못한 채 
어리석게 돌아오리라 기대했지
다신 만나지 않을 거라던
너의 그 말 채 끝맺기 전에 
서둘러 난 눈물을 지워야했는데 

하지만 너 떠난 후에야  
사랑을 알 수 있었지   
그 옛날 그 기억만으로 
가끔씩 비 내리던 밤 가로등 아래 
불 꺼진 창문을 보며 홀로 기대어 널
사랑했던 것만으로도 가슴 저린 
힘겨운 기대 속에서 

너와 함께 옛날로 가곤 했지

아침 버스를 기다린 널
먼 발치서 바라만 보다 
무거운 후회 속에 돌아오곤 했지 

 

친구를 기다리다 우연히 널 
nino에서 마주친 순간 
너무 당황해 어색한 웃음만 서로 
조금 짙어진 듯한 낯선 화장과 
변해버린 짧은 머릴 보며  
뒤 돌아 선 너의 마음처럼 돌아설 수밖에

그 파랗던 하늘은 어느 새    
비라도 내릴 것 같았지   
그 옛날 그 기억 속에서 
예전에 둘이 걷던 그 거리 거리   
변한 게 하나 없었지 너 없는 나만   
추억도 때론 잊고 사는 거라며    

그리워 비틀거려도 체념해야 되겠지  

그러나 세월 지나 어느 날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 행복하여도  
가끔씩은 뜻하지 않게 생각이 나겠지

 

작사,곡 김형철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7308372

 

 8월 4일날 발견(!)을 했으니, 벌써 3주나 지났다. 그 동안 정말 줄창 들었다. 나 때문에 이 노래가 닳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무진장. 연일 무덥고 습한 날씨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노래는 시절을 생각나게 해줘서 좋다'던 아저씨의 말과 함께,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시절 그리고 그 밤의 공기까지 함께 떠오르는 것 같아 더 그러고 있는지도.

 97년에는 cbs 라디오에 '김장훈의 우리들'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매일 밤 10시부터 12시까지. 학창시절은 그야말로 '라디오데이즈'였던 관계로 밤 10시 이후 새벽 3시까지는 늘 라디오와 함께 였는데, 대학생이 된 후에는 전처럼 몰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아저씨가 dj를 맡은 게 반가우면서도 내심 난김했던 기억이 난다. 첫 방송이 3월 2일인가? 개강날였는데 결국 10시까지 집에 못 오고 길에서 잘 안 잡히는 워크맨 주파수를 초조하게 맞춰댔었다. 'nino에서'는 그 '우리들'에서만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노래 중 하나였다. 물론 '우리들'이 방송되는 동안에는 주파수 돌릴 일이 없어 그렇기도 했지만.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소위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과 그들의 음악이 소중히(?) 여겨지던 90년대의 종교방송 심야 프로그램은 선곡에 있어서 일종의 해방구와 같았다. bbs의 '밤의 창가에서'와 cbs의 '꿈과 음악사이에' 그리고 자주 듣지는 않았지만 pbc의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곧잘 듣고 싶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귀한 음악인들이 초대손님으로 나오고는 했었다. 또 그런 프로그램들은 대개 고정 청취자들에게 호의적이어서 신청곡도 잘 들려주고, 모든 음반을 살 수 없었던 나는 방송 시간 내내 공테잎을 맞춰놓고 성공적인 노래 녹음에 심혈을 기울이는 게 꽤 중요한 일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의 dj들은 고맙게도 약속이라도 한 듯이 노래의 전주가 나올 때 무드 잡고 곡목과 가수를 소개하는 따위의 만행은 저지르지 않았던 것 같다.

 김형철이 보컬로 참여했던 신촌블루스 음반의 '내 맘속에 내리는 비는'을 무척 좋아했던 터라, 이 노래를 우연히 처음 들었을 때는 한참을 잊고 지냈던 소중한 친구가 돌아온 것 같은 과장된 반가움에 설레기까지 했었다. 주로 책상 위 스탠드만 켜놓고 라디오를 들었던 탓에, 마음까지 괜히 센치해져서 어떤 노래는 듣다 보면 괜히 눈물을 불러내기도 하던 때였다. 또 그렇게 각별하게 들은 노래들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무방비상태에서 다시 들려와도, 비밀스런 스탠드 불빛 아래 노래만이 공간을 가득 채우던 캄캄한 내 방의 공기 같은 게 손에 잡힐 듯 떠오른다.

 사실 이 노래, 별 건 없다. 각별한 내 기억과 맞물린 덕분에 무척이나 특별한 노래가 되었지만 가사는 그야말로 나는 유행가예요, 라고 말하는 듯 신파의 극치 통속의 끝이다. 귀 기울여 가사를 옮겨 적다보니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한편 이렇게나 뻔한 연애의 전말을 담은 노래가, 누구에게나 있었음직한 실연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담은 노래가, 그렇게도 없는 것처럼 묻혀버린 게 아쉽기도 하다. 또 하나 이 노래가 좋은 이유는, 딕션이라고 해야 하나. 정확히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 지는 모르겠는데, 노래하는 사람의 발음과 억양과 창법과 뉘앙스 등속이 어우러진 독특한 느낌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내 마음의 귀에 걸리는 몇 소절의 절절함 때문이다. 기대 속에서, 우연히 널, 비틀거려도, 이런 부분이 너무 짠하게 아프다. 흡흡, 어인 사춘기 소녀.

 얼핏 2년 전쯤의 소식으로 고향인 대구에서 노래 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직도 그럴까? 각별히 노래를 좋아하게 되면 노래하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게 더 낫다고 경험적으로 판단하는 편이지만, 이 노래는 라이브로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실은 며칠 동안 아저씨가 다시 불렀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정말 바람이고. 이 노래는, 사람에 대한 별다른 로망은 없이 그저 시절에 취한 거니까 큰 기대나 실망 같은 건 없을 것 같다. 대구에 사는 사촌을 통하면 알아볼 수 있을까. 말하고 나니깐 정말 꼭 들어보고 싶다.

* 참고로 노래 들으시는 분들께, 제가 직접은 아니지만 테잎의 음원을 리핑한 거여서 음질이 상당히 안 좋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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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6-08-25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노래였군요.. 들어보고 싶었는데.. 좋네요..

waits 2006-08-25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좋은가요? 싸이에도 깔았는데, 일 할 때 튼다고 노래 좋다고 지인에게 문자도 왔어요...^^V

치니 2006-08-25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장훈의 우리들, 저 역시 시간 맞추기 어려워서, 매일 녹음을 했었어요.
전날밤에 녹음한 테잎을 그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워크맨에 넣고 듣고는 했었는데.
^-^ 지금도 어딘가에 그 테잎들이 가득 있어요...

waits 2006-08-25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흣~ 이런 반가울 데가. 우리 같이 'cbswe'를 열심히 청취했었군요...^^
저도 녹음테잎 한 가득, 언젠가 전부 파일로 만들 날을 기다립니다. 히히.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들녘에 눈이 내리면
상냥한 얼굴 동백 아가씨

꿈속에 웃고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래벌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작사,곡 이제하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7115069

 

 난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는 남자의 목소리가 참 좋다. 친족의 90% 이상이 경상도민인 관계로 어려서부터 일관되게 전라도에 열광해왔지만, 의식 이전에 익숙해진 것들이 근본적으로는 영향을 미치고 있던 탓인지 유독 목소리만은 경상도feel에 혹하고는 한다. 아쉽게도 또래 중에서는 거의 만나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들 심지어 지금 우리 학교의 교수님들 대다수가 격하지 않은 경상도 억양의 소유자들이다. 이제하님의 목소리는 사실 노랫말에서도 선연히 느껴질 만큼 격한 사투리를 자랑하지만, 이마저도 참 좋다.

 이 음반과 시집을 손에 넣은 건 꽤나 예전 대학로 어느 까페에서였는데, 그게 어디였는지도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우스개처럼 '오프대학로'라 불리우던 학전-라이브1관 뒷골목에 몰려있던 자그마한 까페들 중 하나였던 것도 같고... 그렇게 기억을 더듬다보니, 그 중 '깡통차기'였던 것도 같지만, 한편 여전히 살아남아 오히려 의아한 반대편 블록의 '작가폐업'이었던 것도 같다. 이제하님이 문을 열었다는 '까페 마리안느'는 언젠가 꼭 한 번 가봐야지, 하면서 막상 대학로엘 나서면 늘 잊어버린다.

 이제는 그마저도 없어졌지만 그의 소설 제목을 딴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라는 까페 간판을 보며, 혹시? 하며 괜한 친근감을 오래도 품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난 그의 책을 얼마 읽지 않았다. '소녀 유자'와 '유자약전'을 이상한 의무감에 휩싸여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게 벌써 십여 년 전이고, 후에 몇몇 작가와 함께 낸 여행산문집을 읽었지만 별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내게 이제하라는 이름은, '빈 들판'에 담긴 목소리로 더 친근하고 처연하게 다가오는... 진한 경상도 억양으로 노래하는 사나이, 비슷하다.

 문단의 한~참 어른인 게 벌써 오래 전부터겠지만 난 그 줄은 아니니 해당사항 없고, 처음 들은 날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껏 모란 동백 꽃 피는 시절과 무관하게 마음이 쓸쓸할 때면 늘 떠오르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노래는 스스로도 꽤 마음에 들었는지 나레이션(?)이 덧붙여진  live 버젼도 따로 실려있는데, 그 얘기를 듣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청춘과 나이듦, 인생 뭐 이딴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 모든 게 참 쓸쓸하다는 생각과 함께. 고즈넉한 쓸쓸함마저 땀에 절어 너저분해지는 너무 더운 날들은 이제 물러갈 모양이다, 내일이 처서라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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