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바라보는 세상이란  
성냥갑처럼 조그맣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허전한 맘으로 돈을 세도
    
네겐 아무 의미 없겠지   
날아오를 하늘이 있으니    
  

너는 알고 있지 구름의 숲      
우린 보지 않는 노을의 냄새  
바다 건너 편의 꽃의 이름    
옛 방랑자의 노래까지   
네겐 모두 의미 있겠지   
날아오를 하늘이 있으니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  
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       
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

어느 날 네가 날개를 다쳐 
거리 가운데 동그랗게 서서   
  
사람들이라도 믿고 싶어
조용한 눈으로 바라보며
    
"내겐 아무 힘이 없어요   
날아오를 하늘이 멀어요"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  
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
가장 아름다운 하늘 속  
멋진 바람을 타는 
너는 눈부시게 높았고
  
    
그것만이 너 다워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
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        
가야한다면     
어딘가 묻히고 싶다면 
우리가 없는  
평화로운 곳으로 가서    
마음을 놓고        
나무 아래서 쉬는 거야    

우리가 없는        
평화로운 섬으로 가서     

...    
     
우리가 없는
가야 한다면

 

작사,곡 이상은


노래가 안 나오면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9719104

 

 그 극장에 아직은 '라이브 2관'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었을 때, 이상은과 백현진이 함께 하는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담다디'가 세상을 뒤집었을 때, 나 역시 그녀를 향해 열광을 보내는 수많은 소녀들 중 하나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탬버린을 흔들어대며 허스키 보이스로 열창하는, 그러나 스폿라이트 속의 그녀가 조금은 안쓰럽고 어색하다 싶기도 했었다. 한 동안은 '상은언니에게' 라고 시작하는 일기를 열심히 썼었다. 그녀가 살던 집과 멀지 않았던 우리 학교 아이들은 무시로 그녀의 목격담을 전해왔다. 나는 그냥 열심히 전해지지도 않을 일기를 써댔을 뿐이다.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던 강인원의 노래를 열심히 부르던 그녀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미술을 하러 간다고 했던 것도 같은데, 그녀가 떠나기 전에 이미 나의 열광은 빛을 잃기 시작했다. 약간은, 나의 열광이 부끄러웠던 것도 같고 너무 빨리 식어버리는 마음이 당혹스럽기도 했던 것 같다. 이후에도 여전히 '포토뮤직'이니 '뮤직라이프'니 하는 잡지들을 탐독했지만, 소위 '동아기획표' 가수들에 관한 알량한 분량의 기사를 읽고 모으기 위해서였다. 물론 중간에 잠깐씩은 신해철에, 서태지 그리고 91년부터는 무엇보다 아저씨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스무 살 남짓까지 달마다 흘깃대던 대중음악 잡지들은 언젠가부터 '키노'와 '씨네21' 류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상은이라는 이름은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따금 일본에서 어쩌고 하는 소식과 함께 새 음반 소식이 들려왔지만, 무렵 내가 사랑하던 뮤지션들과 비교하며 너무 번드르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한 번 멎은 열광, 그것도 결단하듯이가 아니라 자연스레 사라져간 열광이 다시 불 붙는 일은 거의 없다. 2000년 무렵으로 기억되는 그 공연은 한편 소녀적 우상과의 재회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나는 백현진의 무대에 더 솔깃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나는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가 좀 거북스럽고 불편했다. '담다디' 시절을 떠올리는 게 민망할 만큼 그녀의 음악과 그녀의 위상은 달라졌지만, 이전의 열광이 무색할만큼 아무런 감회가 없었다. 또 한참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퍼슨웹에 실린 그녀의 인터뷰를 읽으며 한때의 팬으로서가 아니라 동시대 청자로서 응원의 마음 같은 게 든 적은 있다. 병적일 만큼 많은 노래들에 감정이입을 하고 그 기억을 오래 간직하는 나로서는 꽤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주 가끔이나마 떠올리게 되는 건, 그녀가 이 노래를 만들어 불렀기 때문이다. 까마득히 잊고 살던, 인간으로서의 반성을 상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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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10-15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눌님이 좋아하시는 앨범만 봐도 그렇게 좋으신가요? ^^

waits 2006-10-17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흡. 뭐 굳이 대답까지...^^
 

 



아침에 보던 그 맑은 햇살과
당신의 고웁던 참 사랑이
 
푸른 나무 가지 사이사이로 
스며들던 날이 언제인가 
별들에게 물어요 나의 참 사랑을
    
뜰에 피던 봉선화와 같은 사랑을   
아무도 모른다네 우리의 추억을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해 놓고  
말은 한 마디도 못한 것은
당신의 그 모습이 깨어질까봐
슬픈 눈동자로 바라만 보았소 
별들에게 물어요 나의 참 사랑을   
뜰에 피던 봉선화와 같은 사랑을 
    
아무도 모른다네 우리의 추억을

낙엽이 지고 또 눈이 쌓이면  
아름답던 사랑 돌아오리라
언제보아도 변함없는
나의 고운 사랑 그대로를 
별들에게 물어요 나의 참 사랑을   
뜰에 피던 봉선화와 같은 사랑을

아무도 모른다네 우리의 추억을
  

 

작사,곡 이주호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9646646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 나는 할머니랑 한 방을 썼다. 1학년 봄부터 살았던 그 집은 소위 '미니이층'이라고 불리던, 아래층에는 셋집이 살고 외부의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구조였고 방이 세 개 있었다. 3학년때까지는 함께 방을 썼던 오빠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중간방에서 자취를 하던 누군가 대신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었다. 고작 4학년 주제에 나는 그게 무척 부러웠는데, 텔레비전도 없고 중학생이라고 혼자 자기를 강요당했던 오빠는 처음에 꽤나 징징대며 밤마다 할머니와 내가 있던 방으로 몸을 날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철없는 오빠도 어엿한 중학생, 사춘기가 찾아왔을테고 언젠가부터 그 방은 아주 비밀스러운 방이 되어버렸다. 아직은 심형래의 크리스마스캐롤(이건 4학년 겨울, 학교에서 튼다고 샀던 기억이 있다, "달릴까 마알까" 그 엄청난 센세이션..;;)이랑 구창모의 '희나리' 말고는 소장 테잎이랄 게 없었던 나와 달리, 오빠는 동네 레코드가게를 열심히 들락거리며 낡은 턴테이블에 올릴 lp들을 사모으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여나 천적싸가지 동생이 자기 물건을 어떻게 할까 싶었던지, 엄마 아빠가 없는 낮에는 오로지 자기 편인 할머니를 구슬려 방의 출입을 막았던 것 같기도 하다. 드럽고 치사해서, 그리고 실은 별로 관심도 없어서 무시하던 4학년때를 지나... 나는 자주 그 방을 찾았다.

 구창모의 '희나리'가 대히트를 기록했던 85년, 이제 나는 다 큰 5학년이었고 아직 내 라디오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수완 좋게 오빠가 돌아오기 전까지 왕영은의 '젊은이의 노래'며 장유진의 '가요산책' 같은 방송을 열심히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즈음 소도둑 된 심정으로, 이전에는 차마 건드리지 못했던 lp판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내 손으로 턴테이블에 lp를 얹고 노래를 들었다. 좀은 재미없었던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가 첫곡으로 흘러나온 그 음반은, 낙엽 가득한 산길을 걸어가는 두 남자의 뒷모습 사진이 박힌 해바라기의 2집 '그 날 이후'였다.

 이영훈과 이문세 콤비의 멜랑꼬리 발라드가 fm을 평정하던 시절이었다. 너무 어른의 노래같기도 했고 양보 없는 쓸쓸함 같은 게 느껴져서 좀은 지루했지만, 이상한 인내를 발휘해가며 뒷면의 '어허야 둥기둥기'까지 나는 열심히 들었다. 어쩐지 음악을 들으려면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성실하고 정직해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뒷면의 중간쯤 이 노래가 있었다. '사랑의 시'나 '갈 수 없는 나라'도 좋았지만, 주변 공기를 달리 만드는 것도 같고 나른한 슬픔을 담은 것도 같은 이주호의 목소리에 실린 이 노래가 나는 유독 좋았다. 그때도 대략 그늘지고 우울한 것들을 향한 어두운 연정을 자주 품고 지냈던 터라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어쩐지 우수에 찬 분위기에 젖어들었던 것도 같다.

 뜬금없이 며칠 전부터 이 노래가 맴돌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그렇게 좋아했던 이주호의 목소리 말고, 한영애의 읊조림으로. 나는 그녀의 공연에 가본 적이 없다. 그녀가 한창일 때는 내가 좀 어렸고, 이 버전이 실려있는 세번째 음반을 꽤 좋아해서 테잎이 늘어지도록 반복해 들었던 고1 때는 가야할 공연이 너무 많아서 여력이 없었다. 몇 년 전 옛노래들을 다시 부른 'behind time'의 '오동나무'를 꽤 좋아하기는 했었지만, 어쩐지 나는 그녀의 귀기어린 절규가 늘 약간 부담스러웠다. 생각해보면 '갈증'과 '여울목', '여인#3', '달', '따라가면 좋겠네' 같은 노래를 꽤나 좋아했음에도 말이다. 그러다 문득 한참 전 우연히 그녀를 마주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로 뒷골목에, 공연 뒤풀이가 자주 열렸던 '행운'이라는 식당에서였다. 한쪽 방에서는 무슨 공연의 뒤풀이가 흥청망청, 무슨 일 때문인지 잠시 플로어로 나왔다가 너무 귀여운 아가를 발견했다. 늦은 시각이었고 그 시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이래저래 긴장이 풀린 채 서로에게들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작고 예쁜 아가를 보러 다가갔는데, 그 아가가 한영애에게 안겨 있었다. 그녀 역시 나처럼, 누군가의 작은 아가가 너무 예뻐서 안아보고 얼러보는 중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익히 듣던 노래에서 뿜어져나오던 광기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해사한 얼굴이었다. 단지 아가 때문에 마주한 처지여서 순진한 웃음이 오갔고, 그 뿐이다. cbs인지 어디에서 문화정보 프로그램 dj로 앉은 그녀의 목소리에 좀 낯설어 했던 게 그 이전인지 이후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이 노래가 떠올랐을까. 북한핵이 어쩌고 하며 뒤숭숭하던 대낮, 사무실에서 문득이었다. '아무도 모른다네, 우리의 추억을...' 정말 쌩뚱맞게. cd를 갖고 있지 않아 bugs에서 다운을 받고 며칠 내내 듣는다. 그녀는 이 노래를 서너 번쯤 불렀을 것이다. 다짐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고 회한도 없이, 이렇게 숨죽이듯 그렇지만 담담하게 부르는 노래가 좋다.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눈물이 난다. 벼락치듯 갑자기 세상이 끝난다고 해도, 이렇게 읊조리고 있으면 세상이 고요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아마 아련하게 다정한 옛 일이 떠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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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2 0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10-12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선가 이 새벽에 이 노래를 같이 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괜히 짠하고 고마운걸요.
같은 노래가 사람에 따라, 또 톤에 따라 얼마나 달리 들리는가를 생각하면 참 신기해요.
한편 놀아나는 느낌이기도 하지만... 결국 듣는 귀의 기분 때문이겠죠.
노래처럼 착하고 아련한 꿈을 꾸면 좋을까요. ^^

2006-10-12 0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10-12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노래가 마음에 닿으면 굳이 말이 필요 없을 것도 같아요. 함께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
 

 


 

길을 걷던 한 소년은 물었지 
"엄마 저건 꼭 토끼같아" 라고 
심드렁한 엄마는 대답했지
"얘야 저건 썩은 고양이 시체일 뿐이란다"

오! 뒤틀린 발목 너덜너덜해진 날개를   
푸드덕거려도 보지만
    
날 수 없는 작은 새 한 마리를   
누가 쳐다나보겠어?   
  

길을 떠나던 한 소녀는 물었지  
"아빠 저건 꼭 토끼같아" 라고 
무표정한 아빠는 대답했지
"얘야 저건 썩은 고양이 시체일뿐이란다" 

오! 뒤틀린 발목 너덜너덜해진 날개를
푸드덕거려도 보지만 
    
날 수 없는 작은 새 한 마리를   
누가 쳐다나보겠어?

 

작사,곡 김민규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7418594

 

 김민규의 수줍고 여린 목소리에 실린, 섬뜩하도록 냉소적인 가사를 곱씹다가 내 귀를 의심했던 적이 있었다. 절대 구질구질하지 않게, 짝사랑의 이야기도 배신의 이야기도 나긋하고 쿨하게 노래할 줄 아는, 델리 스파이스식 촌철살인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를테면 엽기도 동화처럼. 델리의 음악치고 꽤 장중한 연주다 싶은데, 듣다보면 귀에 쏙 들어오는 인트로와 메인 멜로디에 어린 시절 '얼레리 꼴레리'가 연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때로 동심의 통찰은 얼마나 정확하며, 예민한 감수성의 직관은 얼마나 날카로운지. 즈음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보며 이 노래를 자주 떠올렸다. 발목이 뒤틀리고 날개가 너덜너덜해져도 살아보겠다고 아직 살아있다고 푸드덕거리는 힘없고 약한 모든 것들이 그저 세계를 구성하는 배경으로 붙박혀버린 건 아닐까. 노래가 담긴 음반의 제목은, '슬프지만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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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9 0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하 2006-09-29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퍼갈께요...^^;

waits 2006-09-29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는 노래, 세상은 세상이면 좋을텐데 말이죠.
일단락되시면 그렇게 해요, 제 사정은 11월보다는 10월이 나을 듯. ^^

2006-09-29 0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9-29 0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6-09-29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오랜만에 듣는 '마음이 빚진'... 난 한참 안 올라오길래... 빚 다 갚았는 줄 알았지 뭐예요.. 어차피 늦은 것 같은데 이제 '회색노트'까지 쓰시고.. 주무심이... ㅋㅋㅋ

waits 2006-09-29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그렇군요. 10월 1일이 끝인 줄 알았죠. 뭐 어련히 알아서 하시려고...^^
제 사정은 나중에 언제 얘기를 하도록 하지요.

에로이카님, 학자금 대출은 2년 거치 2년 상환이지만 마음의 빚은 거치 없이 무기한 상환입니다...;; 회색노트에 쓸 말도 많지만, 정말 쓰면 에로이카님 말을 너무 잘 듣는 게 되는 관계로... 실은 너무 졸려서, 개인적으로 지각저지기간이기도 하고요. ^^

blowup 2006-09-29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각 저지 기간이라면서 저 시간까지.--;
무기한 상환이라는 건 어떤 걸까, 생각해 보고 있어요.
갚고 싶을 때 갚으면 되는 건가요?
결혼한 김민규가 아이를 낳으면, 길가에 버려진 썩은 고양이 시체를 아이가 보게 될까봐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줄 테죠?

waits 2006-09-29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10시까지 열심히 출근했더니 열쇠 가진 사람이 가서 30분 기다렸답니다. 안 하던 결심을 하면 늘 이런 선물이...;; 무기한 상환, 지맘대로라고 지맘대로 생각했어요. 김민규는... 그런 느낌이죠? ^^

로드무비 2006-09-2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기한 상환이라면 안 갚아도 되지 않을까요?ㅎㅎ
네이버 블로그 가서 들어야겠네요.

waits 2006-09-29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어쩐지 로드무비님과 어울리는 명쾌한 해결인 것 같은데요? 네이버는 나온다니 다행이예요. ^^
 

 



 

오랜 시간이 걸렸어  
아직도 길은 멀기만 하다 
살아가기 위해  
모든 걸 조금씩 놔버리네 

바람이 불고 있어   
늘 이런 날이면
    
추억만을 위해   
살아있는 것만 같아   
  

어디선가 네가  
웃으며 올 것만 같아 
웃는 예쁜 얼굴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게 전부는 아닐거야     
그리운 사람이 너무 많아   
지치지 않기 위해 
하늘을 보네
  

 

작사,곡 황보령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8832747

 

 산뜻한 '출발'을 듣다가 문득 '오랜 시간'이 떠올랐다. 불과 오 년 전에 낸 음반인데도 그녀의 이름은 멀리 사라진 느낌이다. 그녀의 노래를 열심히 듣는 측은 아니다. 다시 발매가 됐을수도 있지만 그녀의 1집 음반 '귀가 세 개 달린 곤양이'는 일찍 희귀음반 목록에 올랐었다. 하지만 몹시 궁했던 2000년의 어느 날, 주제 넘게 너무 많이 가진 것들 단지 소장용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을 처분하기로 했을 때 제일 먼저 손이 갔던 음반 중에 하나였다. 그녀의 음악이 별로였다기보다 언젠가부터 수집하듯 음반을 모으던 내게, 그다지 코드가 맞지 않는 펑크음반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졸부의 호사벽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꽤나 좋아했던 방준석의 프로듀싱이었음에도, 1집에서 들었던 노래들이 기억에 없는 걸 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다. 그후 때로 '황보령'의 이름을 마주칠 때마다, 궁하기는 하지만 사기는 치지 않겠다며 이미 절판된 음반을 살 때보다 더 싸게 보냈던 게 생각 나서 솔직히 좀 속이 쓰리기도 했었다. 없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없애고 사는 것과의 차이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물론 잊으면 그만이지만. 하지만 몇 년 후 새 음반을 가지고 그녀가 나타났을 때, 나는 소시적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사들였다.

 98년은 홍대 앞에서 폭발한 소위 인디씬의 황금기였다. '인디'는 밑바닥이기도 했지만 한편 특별한 주목을 받는 새로운 권력(?)의 가능성과도 무척 가깝게 있었던 것 같다. 그해 가을 동숭아트센터에서 열렸던 단편영화제의 첫 날, '스케이트'와 '간과 감자', '햇빛 자르는 아이'를 묶어 상영하는 자리에서는 어어부가 공연을 했고 객석에는 나같은 얼치기 관객과 함께 임권택 안성기 같은 영화계 거물이 앉아있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날 영화가 끝난 뒤 극장 통로에 서 있던 황보령은 음색만큼이나 독특한 느낌이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려나, 지금은 뭘 하는지 알 수 없지만 2001년 '태양륜'으로 돌아온 황보령의 음악은 난해하고 가까이 하기 힘들었던 1집 때와는 조금 다르다. 여전히 우주적이고 비밀스러운 느낌이 들지만 펑크노니 하는 새로운 장르를 표방하며 나로서는 친화력 제로인 음악이 가득했던 1집에 비하면 말이다. 게다가 '오랜 시간'을 들으면 심지어 위로가 된다. 너무 많은 말이 악덕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말부림의 쾌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내게, 간단히 말하고 단순하게 말하며 속을 내보이는 건 일종의 가르침이다. 2002년 9월 7일, 그러고보니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때는 몰랐지만 사는 건 늘 이게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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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지는 저녁 창에 기대어  
먼 하늘 바라보니
나 어릴 적에 꿈을 꾸었던  
내 모습은 어디에 
가슴 가득 아쉬움으로   
세월 속에 묻어두면 그만인 것을
    

얼마나 더 눈물 흘려야  
그 많은 날들을 잊을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내가 선 이 곳을 사랑할 수 있을까

세월이 흘러 내 모습 변해도  
아름다울 수 있는 

서툰 발걸음 걸을 수 있는 
그런 내가 됐으면  
가슴 가득 그리움으로   
세월 속에 묻어두면 그만인 것을

얼마나 더 눈물 흘려야  
이 먼길의 끝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더 걸어가야 
그 많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걸어가야   

그 많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     
그 많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

 

작사,곡 송봉주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8732545

 

 어떤 가수가 있었다. 심야의 라디오에서 가끔 그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언젠가 '별밤' 공개방송에서 그가 꽤 예쁘게 생긴 이른바 싱어송라이터라며 이문세가 너스레 떠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독백'이라는 그 노래는 그 즈음 유행하던 흔한 발라드였는데 가녀린 목소리의 애절한 후렴구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

 십 년 가까이 흘렀을까. 새벽 지하철 다니는 시간까지 이어진 아저씨의 공연이 끝난 어느 해 1월 1일. 송구영신의 첫날부터 공연때문에 외박을 하겠다는 내게 엄마는 친척들 오니까 차라리 대낮까지 놀다 들어오라고 백기를 들었다. 덕분에 공연이 끝나고 대학로 넓은 횡단보도 앞에서 마주친, 아직은 작은 가수 김장훈의 공연을 성심껏 기획하고 진행하던 아저씨들의 뒤풀이 제안에 별 생각없이 합류를 했다. 어딘지 기억도 안 나는 동네에서 아침부터 좀은 비현실적인 기분이 되어 술을 마셨고 가늠할 수 없게 시간이 흘렀다.

 새해 첫날의 대낮 거리는 한산했고 우리는 홍대 앞 어느 까페로 자리를 옮겼다. 안치환 공연의 뒤풀이가 좀 전에 끝났다는 그 곳의 바에는 취한 채 등을 보이고 앉은 한 사람이 있었다. 낯선 뒷모습이었지만 너무 쓸쓸해보여 마음이 쓰였는데 마침 기획사 아저씨가 그를 불러 함께 맥주를 몇 잔 나눴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 그리고 이름을 듣고 나는 조금 놀랐다. 오래 전 '독백'을 불렀던 바로 그 사람, 술을 많이 마셨는지 초면인 우리들을 개의치 않고 그는 자기 얘기를 주섬주섬 풀어놓았다.

 잘 하지도 못하는 술을 자리를 옮겨가며 마시고 나도 좀은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파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고, 지하 까페에서 나와 마주친 골목이 딴 세상 같았다는 느낌만 선하다. 그런데 가수의 넋두리. 심야의 라디오를 열심히 들었던 사람들에게나 어렴풋이 기억을 남겼을 그는,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변함없이 노래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드라마 음악 같은 걸 하면서 피디의 추천으로 어줍잖게 출연도 해가며, 어떻게든 다시 노래를 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던 것 같다. 뭔가 복잡함을 많이 담은 듯 했지만, 취한 채 속마음을 꺼내놓는 그가 너무 순수해 보였다.

 이후 가끔 그를 보았다. 그는 오랜 방황과 또 준비 끝에 다시 노래를 시작하려는 차였다. 주로는 안치환과 그리고 때로 이지상 아저씨와 함께였다. 그 즈음 이름 없는 공연기획사에서 일을 시작한 나는 이래저래 그를 마주치게 됐고, 새해 첫날 익명으로 함께 했던 자리는 비밀에 붙인 채로 가까워졌다. 나는 그를 응원하고 싶었고 그는 자신의 믿음에 힘을 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돌아온 가수는 하고 싶은 게 많았고 꿈도 야무졌고,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여전히 너무 순수하고 맑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정말 좋았고 그렇지만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기에는 그의 노래들이 좀 아쉬웠다.

 그는 예전에 신부를 꿈꾸었던 신학생이었지만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한 아저씨였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만난 어른 중에 가장 순수한 사람이었다. 기사식당에서 마시는 소주를 좋아했고, 술을 마시면 곧잘 취해 평소보다 더 다정하게 자기 속마음을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좋아했고 그만큼 사람을 아파했다. 어린 사람의 말도 속 깊이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정말 친구가 되었다. 오래 준비했던 첫 음반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지만, 컬트홀에서 열린 그의 재기(?) 공연은 따뜻하고 감동적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그는 새로 나온 음반에 '내게 메마른 사막에서 물이 되어 주던 너...'라고 써주었다.(이 말은 당시 내가 쓰던 아이디와도 관련이 있다, 정말 그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99년 봄의 일이었다.

 그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그가 점점 바쁜 가수가 되어가면서 그의 주변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 역시 공연일을 관두었고 이따금의 만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끊어졌다. 때로 세월은 속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를 타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실은 그를 보려 몰려드는(무명가수한테도 꼭 있다 ^^) 팬들을 보며, 더 이상 그와 친구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에게 더 필요한 것은 친구가 아니라 팬이었다. 물론 나는 그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내가 느꼈던 '그의 노래의 어떤 미진함'이 소위 대중성의 반증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가끔 그와 술잔 기울이던 때가 그립기도 했지만, 그렇게 맑고 순수한 어른이 있다는 것만도 참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라디오에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정말 안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던 그런 일이 의외로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 지 오래다. 그리고 가끔 그가 만든 이 노래를 듣는다. 언젠가 그가 좋아하던 수유리 기사 식당에서 술을 마시며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나는 이 노래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주제넘게도 안치환의 목소리에 담긴 게 억울(?)했었다. 이 좋은 노래를 아저씨가 부르지 왜? 따지듯 묻는 내게 그는 말했다. 자기는 이런 노래를 만들 수는 있지만 차마 부끄러워서 부를 수는 없다고.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래, 별 거 아닐 수도 있지만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참 다행이다 싶었다. 

 가끔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찾아부른다. 이제 인연의 자락은 끊어졌지만, 내가 알던 그의 진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그의 이름은 '풍경'이다. '자전거 탄 풍경'으로 꽤 인기를 모았고, 언젠가부터 다시 홀로 '풍경'이 되었다. 그와 참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리고 가끔 이 노래를 들으며 그가 부르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듣는 귀가 마음대로 느끼는 거지만 때로 목소리는 너무 적나라하니까. 흐른 세월은 몇 년에 불과하지만, 그 동안 그는 정말 연예인이 되었다. 여전히 내가 알던 그 모습일지 궁금하다. 사람을 안다는 건 또 사람이 변한다는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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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9-15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군요.
자탄풍 때 보며 얼굴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저에게 일감을 맡기는 편집자랑 똑같이 생겼어요.
나어릴때 님이 그쪽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니 신기하고 좋습니다.
전 영화사 기획실에서 일해보고 싶었거든요.
이 카테고리의 글들 모아서 예쁜 책으로 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김형수 시인이 오래 전 말지에 연재했던 우리나라 유행가에 대한
에세이들 재밌게 읽었거든요. 단행본으로도 나왔었는데.
그런데 제 컴으로는 왜 네이버 블로그에 가도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걸까요? 거참.

waits 2006-09-15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브라운관이나 사진으로 보면 살짝 느끼하기도 하지만, 직접 보면 너무 순수하고 맑아요.(아, 직접 본 지 한참 됐군요. 여전히 그러리라고~) 그렇게 생긴 편집자분도 계시군요. 일할 맛 나실 듯...^^
어렸을 적 제 꿈은 오로지 공연뿐이었답니다. 대학로에서 포스터 붙이는 거. ㅎㅎ
책은요, 말씀만도 황송..;; 근데 김형수 시인이 그런 책도 냈었군요. 문부식 시인 시집의 발문으로 알고 좋아했는데요, 대학때'동요하는 배는 돛을 내려라' 읽고 거의 전율했었답니다. '문익환 평전'도 김형수 시인이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음악은.. 이상하네요. 네이버에선 항상 들리던데. 조만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