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지는 저녁 창에 기대어  
먼 하늘 바라보니
나 어릴 적에 꿈을 꾸었던  
내 모습은 어디에 
가슴 가득 아쉬움으로   
세월 속에 묻어두면 그만인 것을
    

얼마나 더 눈물 흘려야  
그 많은 날들을 잊을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내가 선 이 곳을 사랑할 수 있을까

세월이 흘러 내 모습 변해도  
아름다울 수 있는 

서툰 발걸음 걸을 수 있는 
그런 내가 됐으면  
가슴 가득 그리움으로   
세월 속에 묻어두면 그만인 것을

얼마나 더 눈물 흘려야  
이 먼길의 끝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더 걸어가야 
그 많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걸어가야   

그 많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     
그 많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

 

작사,곡 송봉주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8732545

 

 어떤 가수가 있었다. 심야의 라디오에서 가끔 그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언젠가 '별밤' 공개방송에서 그가 꽤 예쁘게 생긴 이른바 싱어송라이터라며 이문세가 너스레 떠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독백'이라는 그 노래는 그 즈음 유행하던 흔한 발라드였는데 가녀린 목소리의 애절한 후렴구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

 십 년 가까이 흘렀을까. 새벽 지하철 다니는 시간까지 이어진 아저씨의 공연이 끝난 어느 해 1월 1일. 송구영신의 첫날부터 공연때문에 외박을 하겠다는 내게 엄마는 친척들 오니까 차라리 대낮까지 놀다 들어오라고 백기를 들었다. 덕분에 공연이 끝나고 대학로 넓은 횡단보도 앞에서 마주친, 아직은 작은 가수 김장훈의 공연을 성심껏 기획하고 진행하던 아저씨들의 뒤풀이 제안에 별 생각없이 합류를 했다. 어딘지 기억도 안 나는 동네에서 아침부터 좀은 비현실적인 기분이 되어 술을 마셨고 가늠할 수 없게 시간이 흘렀다.

 새해 첫날의 대낮 거리는 한산했고 우리는 홍대 앞 어느 까페로 자리를 옮겼다. 안치환 공연의 뒤풀이가 좀 전에 끝났다는 그 곳의 바에는 취한 채 등을 보이고 앉은 한 사람이 있었다. 낯선 뒷모습이었지만 너무 쓸쓸해보여 마음이 쓰였는데 마침 기획사 아저씨가 그를 불러 함께 맥주를 몇 잔 나눴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 그리고 이름을 듣고 나는 조금 놀랐다. 오래 전 '독백'을 불렀던 바로 그 사람, 술을 많이 마셨는지 초면인 우리들을 개의치 않고 그는 자기 얘기를 주섬주섬 풀어놓았다.

 잘 하지도 못하는 술을 자리를 옮겨가며 마시고 나도 좀은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파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고, 지하 까페에서 나와 마주친 골목이 딴 세상 같았다는 느낌만 선하다. 그런데 가수의 넋두리. 심야의 라디오를 열심히 들었던 사람들에게나 어렴풋이 기억을 남겼을 그는,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변함없이 노래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드라마 음악 같은 걸 하면서 피디의 추천으로 어줍잖게 출연도 해가며, 어떻게든 다시 노래를 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던 것 같다. 뭔가 복잡함을 많이 담은 듯 했지만, 취한 채 속마음을 꺼내놓는 그가 너무 순수해 보였다.

 이후 가끔 그를 보았다. 그는 오랜 방황과 또 준비 끝에 다시 노래를 시작하려는 차였다. 주로는 안치환과 그리고 때로 이지상 아저씨와 함께였다. 그 즈음 이름 없는 공연기획사에서 일을 시작한 나는 이래저래 그를 마주치게 됐고, 새해 첫날 익명으로 함께 했던 자리는 비밀에 붙인 채로 가까워졌다. 나는 그를 응원하고 싶었고 그는 자신의 믿음에 힘을 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돌아온 가수는 하고 싶은 게 많았고 꿈도 야무졌고,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여전히 너무 순수하고 맑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정말 좋았고 그렇지만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기에는 그의 노래들이 좀 아쉬웠다.

 그는 예전에 신부를 꿈꾸었던 신학생이었지만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한 아저씨였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만난 어른 중에 가장 순수한 사람이었다. 기사식당에서 마시는 소주를 좋아했고, 술을 마시면 곧잘 취해 평소보다 더 다정하게 자기 속마음을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좋아했고 그만큼 사람을 아파했다. 어린 사람의 말도 속 깊이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정말 친구가 되었다. 오래 준비했던 첫 음반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지만, 컬트홀에서 열린 그의 재기(?) 공연은 따뜻하고 감동적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그는 새로 나온 음반에 '내게 메마른 사막에서 물이 되어 주던 너...'라고 써주었다.(이 말은 당시 내가 쓰던 아이디와도 관련이 있다, 정말 그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99년 봄의 일이었다.

 그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그가 점점 바쁜 가수가 되어가면서 그의 주변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 역시 공연일을 관두었고 이따금의 만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끊어졌다. 때로 세월은 속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를 타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실은 그를 보려 몰려드는(무명가수한테도 꼭 있다 ^^) 팬들을 보며, 더 이상 그와 친구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에게 더 필요한 것은 친구가 아니라 팬이었다. 물론 나는 그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내가 느꼈던 '그의 노래의 어떤 미진함'이 소위 대중성의 반증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가끔 그와 술잔 기울이던 때가 그립기도 했지만, 그렇게 맑고 순수한 어른이 있다는 것만도 참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라디오에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정말 안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던 그런 일이 의외로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 지 오래다. 그리고 가끔 그가 만든 이 노래를 듣는다. 언젠가 그가 좋아하던 수유리 기사 식당에서 술을 마시며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나는 이 노래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주제넘게도 안치환의 목소리에 담긴 게 억울(?)했었다. 이 좋은 노래를 아저씨가 부르지 왜? 따지듯 묻는 내게 그는 말했다. 자기는 이런 노래를 만들 수는 있지만 차마 부끄러워서 부를 수는 없다고.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래, 별 거 아닐 수도 있지만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참 다행이다 싶었다. 

 가끔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찾아부른다. 이제 인연의 자락은 끊어졌지만, 내가 알던 그의 진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그의 이름은 '풍경'이다. '자전거 탄 풍경'으로 꽤 인기를 모았고, 언젠가부터 다시 홀로 '풍경'이 되었다. 그와 참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리고 가끔 이 노래를 들으며 그가 부르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듣는 귀가 마음대로 느끼는 거지만 때로 목소리는 너무 적나라하니까. 흐른 세월은 몇 년에 불과하지만, 그 동안 그는 정말 연예인이 되었다. 여전히 내가 알던 그 모습일지 궁금하다. 사람을 안다는 건 또 사람이 변한다는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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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9-15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군요.
자탄풍 때 보며 얼굴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저에게 일감을 맡기는 편집자랑 똑같이 생겼어요.
나어릴때 님이 그쪽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니 신기하고 좋습니다.
전 영화사 기획실에서 일해보고 싶었거든요.
이 카테고리의 글들 모아서 예쁜 책으로 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김형수 시인이 오래 전 말지에 연재했던 우리나라 유행가에 대한
에세이들 재밌게 읽었거든요. 단행본으로도 나왔었는데.
그런데 제 컴으로는 왜 네이버 블로그에 가도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걸까요? 거참.

waits 2006-09-15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브라운관이나 사진으로 보면 살짝 느끼하기도 하지만, 직접 보면 너무 순수하고 맑아요.(아, 직접 본 지 한참 됐군요. 여전히 그러리라고~) 그렇게 생긴 편집자분도 계시군요. 일할 맛 나실 듯...^^
어렸을 적 제 꿈은 오로지 공연뿐이었답니다. 대학로에서 포스터 붙이는 거. ㅎㅎ
책은요, 말씀만도 황송..;; 근데 김형수 시인이 그런 책도 냈었군요. 문부식 시인 시집의 발문으로 알고 좋아했는데요, 대학때'동요하는 배는 돛을 내려라' 읽고 거의 전율했었답니다. '문익환 평전'도 김형수 시인이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음악은.. 이상하네요. 네이버에선 항상 들리던데. 조만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