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없는 날이지만 숨쉬고 있어
난 숨쉬고 있어 오늘도
니가 없는 이 곳에는 변한 게 없어
늘 그대로인 걸 오늘도
하지만 모든 것이 낯설고
그 날에 우린 어느 곳에 있는지
그땐 아름다웠지 그땐 행복했었어
따스한 햇살 그 하늘 아래
늘 함께였는데
많은 꿈을 나눴지 소중했었던 꿈들
우린 얼마나 많은 걸 잃고
또 살아가야 하는지
의미 없는 날이지만 숨쉬고 있어
난 숨쉬고 있어 오늘도
희망이란 이름으로 여기 있을께
난 여기 있을께 이렇게
작사,곡 고헌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8288491
'김장훈과 한국사람'이라는 밴드가 있었다. 90년대 초중반의 공연에서는 늘 아저씨와 함께였던, 중간에 잠시 '多時詩作'이라고 이름을 바꾸기도 했던(물론 아무도 신경도 안썼지만;;) 밴드. 김현식 아저씨의 하모니카 연주곡 제목이기도 했던 '한국사람'이라는 밴드명을 아저씨는 많이 아끼며 오래 고수했었다. 지금도 보면 은근 nl인지, 고이즈미를 붙잡고 늘어지기도 하고 꽤 오래 전부터 도산 안창호 선생의 고언들을 자주 언급하신다. 일개 대중가수가 민족이니 나라를 떠드는 게 웃길지도 모르지만, 아무도 신경 안 쓸 때부터 이따금 태극기 휘날리며 애국가를 연주하곤 하던 그 모습이, 무슨무슨 마케팅과는 다른 차원의 진심으로 와닿아 괜히 벅차기도 했었다.
'김장훈과 한국사람'은 어찌 보면 공포의 외인구단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건반을 맡았던 장경아 언니만이 실용음악과 출신의 정통음악인(?, 나름 정원영님의 애제자를 소개받은 거였다고.)이었고 나머지 라인업인 기타의 조상헌, 베이스의 최환준, 드럼의 고헌은 당시만해도 희대의 불운아였던 김장훈과 의리로 뭉친... 그러니까 실력보다는 조직력이 뛰어났던 아마추어 밴드였다고도 볼 수 있겠다. 베이스를 맡았던 최환준은 그나마 경원대 그룹사운드 출신이었지만, 기타의 조상헌은 들개같이 살던 시절의 아저씨가 연습실 겸 거처로 주인을 구워삶아 지내던 대학로의 까페 '가장무도회'에서 함께 기거하던 웨이터를 꼬드긴 결과였다.
그리고 이 노래를 만든 고헌 아저씨. 그는 소극장 공연을 이어가던 어느 날 마지막 공연에서, '이 시대 최고의 드러머'라는 극찬과 함께 객석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온 군바리였다. 그 날, 93년의 겨울밤. 주로는 초대권으로 동원한 관객들로 가득했던 보름 간의 공연이 끝난 후 뒤풀이, 어찌어찌 합세하게 된 그 곳에서 고헌 아저씨 곁에 앉게 됐었다. 한 눈에도 아저씨의 엄청난 신뢰와 인정을 받고 있음이 느껴졌는데, 그에 비해 고헌 아저씨는 매우 깍듯하고도 어렵게 아저씨를 대했다. 그러던 중 저 편에서 일어난 모 여가수가 무사히 끝난 공연을 축하하자는 둥의 좀은 쌩뚱맞은 건배 제의로 호들갑을 떨었고, 주로 세션들과 아저씨의 후배 및 지인들이 있었던 테이블은 분위기가 좀 거시기해졌다. 그때 바로 옆에 조용히 앉아있던 고헌 아저씨의 입에서 나직히 흘러나왔던 한 마디를 잊을 수 없다. "**년", 차마 글로 옮길 수는 없는데... 순간 엉뚱하게도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士爲知己者死;;;) 류의 애틋함 같은 게 느껴지면서, 나름 복잡한 그 세계의 비밀과 그들의 고독 같은 걸 한 눈에 봐버린 느낌이 들어버렸었다. 그리고 늘 불안한 마음으로 아저씨를 바라보는 일개 팬의 입장에서 고헌 아저씨에 대한 지극한 믿음과 감사의 물결, 나 대신 아저씨를 지켜주세요...;;;
이후의 공연부터 몇 년간 고헌 아저씨는 '김장훈과 한국사람'의 드러머였다.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진하게 갖고 있던 아저씨는, '세상이 미쳐돌아가도 우린 여기에 있지' 하는 미발표곡의 밴드송도 만들어 부르고는 했었다. 그리고 그에 부응하듯 밴드는 공연 때마다 '시골영감'이니 '신바람 김박사'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쇼에서도 아저씨와 함께 적극적으로 망가지는 무대 위의 동지애와 투혼을 보여주었다. 아저씨는 매우 성의를 들여 멤버 한 사람씩을 늘 소개했었는데, 고헌 아저씨의 경우는 정신병원 거주 경력과 함께 고호와 고갱을 잇는 3대 미술인이라는 유치한 수식어를 빠뜨리지 않았었다. 몇 년 후 고헌 아저씨는 정말로 미술을 하겠다고 밴드를 떠났고, 또 얼마 후 인터넷 뉴스를 통해 무슨무슨 미술대전 입상 소식을 전해왔다.
이 노래는 '그런' 그가 만든 노래다. 내가 알기로 아저씨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드러머 고헌, 이따금 공연에서 그가 들려주는 드럼 솔로는 엄청난 파워를 자랑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늘 속을 알 수 없는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조용한 모습이었다. 그가 밴드를 떠난 뒤에도 아저씨에게 드러머의 기준은 '고헌의 파워 드럼에 필적하는' 하는 식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난 8월, 전후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그가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미술계로 떠난 이후, 작업과 함께 대학 강의도 한다는 소식에 참 신기하고 대견(?)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다시 돌아온 파워 드러머 고헌 아저씨를 지켜보는 감회는 꽤 흐뭇한 것이었다. '김장훈과 한국사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기대감 같은 것. 이 노래를 부를 때의 아저씨 목소리 역시, 다듬어지지 않은 채 불안하던 그 시절 떨림을 담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참 좋다. 그리고 마지막 보너스, 금속판을 마모시켜 손을 묘사했다는 고헌 아저씨의 작품이다. 내가 미술을 뭘 알겠냐마는, 기특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