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me sing you a waltz
Out of nowhere, out of my thoughts
Let me sing you a waltz
About this one night stand
You were for me that night
Everything I always dreamt of in life
But now you're gone
You are far gone
All the way to your island of rain
It was for you just a one night thing
But you were much more to me
Just so you know
I hear rumors about you
About all the bad things you do
But when we were together alone
You didn't seem like a player at all
I don't care what they say
I know what you meant for me that day
I just wanted another try
I just wanted another night
Even if it doesn't seem quite right
You meant for me much more
Than anyone I've met before
One single night with you little,, 'Jesse'
Is worth a thousand with anybody
I have no bitterness, my sweet
I'll never forget this one night thing
Even tomorrow, another arms
My heart will stay yours until I die
Let me sing you a waltz
Out of nowhere, out of my blues
Let me sing you a waltz
About this lovely one night stand

 

julie delpy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8589394  

 

 차가운 대기에 어울리는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를 올리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다운받은 컨버터 프로그램이 오류다. 아쉬운 대로 올리기에는 줄리언니에게 미안하지만... 청춘, 청춘 하다보니 떠오른 이 노래. 십 년 만에 만난 그들의 수다(!)를 들으며 꽤 적나라하다고도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하니 이 영화 한편 참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이기도 했던 것 같다. 십 년 전의 그 하루에 대해, 십 년 전의 그 사람을 앞에 두고, 이렇게 능청스레 노래할 수 있다니. 갑자기 무척, 늙어버린 느낌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6-09-11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09-12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너무 추워요. 님의 댓글이 너무 정다워서 여러 번 봤답니다...^^

2006-09-12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 집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음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음 잘 있거라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음 갇혔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음 잘 있거라 잘 있거라 
음 잘 있거라

 

기형도 시, 작곡 백창우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8335829

 

 그의 집은 우울을 한껏 담은 채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다. 이따금 다가가면, 그녀의 따스한 눈길조차 얼어붙을 것만 같은 작정한 듯한 침묵과 조용한 냉담으로 둘러싸인 집. 그러나 어느 날, 그는 마음을 바꿔 말하고 대꾸하고 심지어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몰래몰래 훔쳐보던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슬금슬금 나타나 그에게 말을 걸고 웃음을 보내기 시작한다. 오로지 늪과 같은 단단한 오해에 가로놓인 그녀에게만 금단의 집. 그는 이제 웃으며, 모두에게 다정하다. 이제껏의 냉소와 침묵은 청소를 위한 거였어. 다시 원래대로 하지 뭐. 이제 침묵은 그의 몫이 아니라 그녀의 몫, 담 너머의 애애한 화기를 결코 가질 수 없는 꿈처럼 지켜보는 그녀의 침묵이 철퍼덕 주저앉는다. 그녀의 부재는 그에게 사소한 안심을 선사했는지도 모른다. 해명도 설명도 난마처럼 얽혀 더 깊은 오해의 질곡을 만드는 관계의 늪,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없는 듯 지켜보는 것 뿐. 다행히 시선은 보이지도, 발각되지도 않는다. 안전하고도 침울한 존재의 형식, 무가시의 시선으로 남은 그녀는 중얼거린다, 잘 있거라 그리고 잘 잊거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의미없는 날이지만 숨쉬고 있어 
난 숨쉬고 있어 오늘도 
니가 없는 이 곳에는 변한 게 없어 
늘 그대로인 걸 오늘도 
하지만 모든 것이 낯설고   
그 날에 우린 어느 곳에 있는지
    
그땐 아름다웠지 그땐 행복했었어   
따스한 햇살 그 하늘 아래   
  
  
늘 함께였는데 
많은 꿈을 나눴지 소중했었던 꿈들 
우린 얼마나 많은 걸 잃고
또 살아가야 하는지   
의미 없는 날이지만 숨쉬고 있어 
    
난 숨쉬고 있어 오늘도   
희망이란 이름으로 여기 있을께 
난 여기 있을께 이렇게
  

 

작사,곡 고헌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8288491

 

 '김장훈과 한국사람'이라는 밴드가 있었다. 90년대 초중반의 공연에서는 늘 아저씨와 함께였던, 중간에 잠시 '多時詩作'이라고 이름을 바꾸기도 했던(물론 아무도 신경도 안썼지만;;) 밴드. 김현식 아저씨의 하모니카 연주곡 제목이기도 했던 '한국사람'이라는 밴드명을 아저씨는 많이 아끼며 오래 고수했었다. 지금도 보면 은근 nl인지, 고이즈미를 붙잡고 늘어지기도 하고 꽤 오래 전부터 도산 안창호 선생의 고언들을 자주 언급하신다. 일개 대중가수가 민족이니 나라를 떠드는 게 웃길지도 모르지만, 아무도 신경 안 쓸 때부터 이따금 태극기 휘날리며 애국가를 연주하곤 하던 그 모습이, 무슨무슨 마케팅과는 다른 차원의 진심으로 와닿아 괜히 벅차기도 했었다.

 '김장훈과 한국사람'은 어찌 보면 공포의 외인구단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건반을 맡았던 장경아 언니만이 실용음악과 출신의 정통음악인(?, 나름 정원영님의 애제자를 소개받은 거였다고.)이었고 나머지 라인업인 기타의 조상헌, 베이스의 최환준, 드럼의 고헌은 당시만해도 희대의 불운아였던 김장훈과 의리로 뭉친... 그러니까 실력보다는 조직력이 뛰어났던 아마추어 밴드였다고도 볼 수 있겠다. 베이스를 맡았던 최환준은 그나마 경원대 그룹사운드 출신이었지만, 기타의 조상헌은 들개같이 살던 시절의 아저씨가 연습실 겸 거처로 주인을 구워삶아 지내던 대학로의 까페 '가장무도회'에서 함께 기거하던 웨이터를 꼬드긴 결과였다.

 그리고 이 노래를 만든 고헌 아저씨. 그는 소극장 공연을 이어가던 어느 날 마지막 공연에서, '이 시대 최고의 드러머'라는 극찬과 함께 객석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온 군바리였다. 그 날, 93년의 겨울밤. 주로는 초대권으로 동원한 관객들로 가득했던 보름 간의 공연이 끝난 후 뒤풀이, 어찌어찌 합세하게 된 그 곳에서 고헌 아저씨 곁에 앉게 됐었다. 한 눈에도 아저씨의 엄청난 신뢰와 인정을 받고 있음이 느껴졌는데, 그에 비해 고헌 아저씨는 매우 깍듯하고도 어렵게 아저씨를 대했다. 그러던 중 저 편에서 일어난 모 여가수가 무사히 끝난 공연을 축하하자는 둥의 좀은 쌩뚱맞은 건배 제의로 호들갑을 떨었고, 주로 세션들과 아저씨의 후배 및 지인들이 있었던 테이블은 분위기가 좀 거시기해졌다. 그때 바로 옆에 조용히 앉아있던 고헌 아저씨의 입에서 나직히 흘러나왔던 한 마디를 잊을 수 없다. "**년", 차마 글로 옮길 수는 없는데... 순간 엉뚱하게도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士爲知己者死;;;) 류의 애틋함 같은 게 느껴지면서, 나름 복잡한 그 세계의 비밀과 그들의 고독 같은 걸 한 눈에 봐버린 느낌이 들어버렸었다. 그리고 늘 불안한 마음으로 아저씨를 바라보는 일개 팬의 입장에서 고헌 아저씨에 대한 지극한 믿음과 감사의 물결, 나 대신 아저씨를 지켜주세요...;;;

 이후의 공연부터 몇 년간 고헌 아저씨는 '김장훈과 한국사람'의 드러머였다.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진하게 갖고 있던 아저씨는, '세상이 미쳐돌아가도 우린 여기에 있지' 하는 미발표곡의 밴드송도 만들어 부르고는 했었다. 그리고 그에 부응하듯 밴드는 공연 때마다 '시골영감'이니 '신바람 김박사'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쇼에서도 아저씨와 함께 적극적으로 망가지는 무대 위의 동지애와 투혼을 보여주었다. 아저씨는 매우 성의를 들여 멤버 한 사람씩을 늘 소개했었는데, 고헌 아저씨의 경우는 정신병원 거주 경력과 함께 고호와 고갱을 잇는 3대 미술인이라는 유치한 수식어를 빠뜨리지 않았었다. 몇 년 후 고헌 아저씨는 정말로 미술을 하겠다고 밴드를 떠났고, 또 얼마 후 인터넷 뉴스를 통해 무슨무슨 미술대전 입상 소식을 전해왔다.

 이 노래는 '그런' 그가 만든 노래다. 내가 알기로 아저씨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드러머 고헌, 이따금 공연에서 그가 들려주는 드럼 솔로는 엄청난 파워를 자랑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늘 속을 알 수 없는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조용한 모습이었다. 그가 밴드를 떠난 뒤에도 아저씨에게 드러머의 기준은 '고헌의 파워 드럼에 필적하는' 하는 식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난 8월, 전후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그가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미술계로 떠난 이후, 작업과 함께 대학 강의도 한다는 소식에 참 신기하고 대견(?)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다시 돌아온 파워 드러머 고헌 아저씨를 지켜보는 감회는 꽤 흐뭇한 것이었다. '김장훈과 한국사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기대감 같은 것. 이 노래를 부를 때의 아저씨 목소리 역시, 다듬어지지 않은 채 불안하던 그 시절 떨림을 담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참 좋다. 그리고 마지막 보너스, 금속판을 마모시켜 손을 묘사했다는 고헌 아저씨의 작품이다. 내가 미술을 뭘 알겠냐마는, 기특해서...^^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에로이카 2006-09-04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십일조네요... ^^ 이런 노래 이야기들은 나어릴때님만이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느 쪽으로든 다재다능한 분들은 참 부러워요... 드럼스틱을 잡던 손에 또 저런 재주까지... 참 멋집니다...

waits 2006-09-04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맞아요, 십일조. 며칠 전부터 혼자서 무슨 노래가 좋을까 고심했다는...;;;
이야기 적으면서 괜히 옛날 생각이 나서 시큰했답니다, 완전 '아, 옛날이여!' ^^

치니 2006-09-04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분이 돌아왔군요. 왠지 김장훈씨에게 큰 힘이 될 거 같네요.
저도 이 노래가 무척 좋았었는데...

2006-09-04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09-04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그렇습니다. 그분이 오셨어요...^^ 예전의 라인업은 이제 너무 커져버린 공연이라 아저씨 성에 안 차겠지만, 고헌 아저씨의 파워 드럼은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님, 당근이죠...^^*
 

 



 

삼봉이와 춘팔이 외로운 고아라네 
둘이의 소원은 어른이 되는 것 
그러나 커가면서 느끼게 되었네
맑은 두 눈에 비친 어른의 모습

사람들은 왜 그렇게  
따듯한 사랑을 갖지 못할까
  
서로 욕하고 서로 시기하고   
서로 싸우며 자기만 아는 
그런 모습이었어

어른들은 말하네 크면 알게 된다고
하지만 진실은 변함이 없는 것 
아무런 가책없이 위선에 묻혀서 

때론 인정 많은 체 때론 정의로운 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진실한 가슴을 갖지 못할까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울게 만드는 거짓 사랑을  
그런 모습이었어

삼봉이가 말했네 우리가 어른 되면    
사랑을 노래하는 그런 사람이 되자   
춘팔이가 말했네 나는 어른이 싫어 
해와 달과 별처럼   
이대로가 좋아   

 

작사 최원무, 작곡 조성오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7347589 

 

 어렸을 때는 판단도 쉬웠고 세상도 선명했다. 내 편 아니면 니 편, 둘 중 하나가 아닌 것은 내 세상에 없었다. 조금씩 커가면서 '편'이라는 게 참 유치해서, 그런 구분은 그만해야지 하던 때를 지나... 나이는 어른인데 나는 여전히 아이인 채로, 그 '편'이란 말이 참 애잔해졌다. 누군가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것, 혹은 내가 누구의 편이 된다는 것. 상황이나 맥락 혹은 옳고 그름을 떠난 '무조건'이란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더 간절했던 걸까. 세상이 다 등을 돌려도 단 한 사람 끝내 뒷모습을 보이지 않는 내 편이 있다면 그 힘만으로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양비론이 멋져 보일 때도 있었다. 정황을 살피고 전후사정을 고려하고 알량한 이성을 동원하다보면, 누구도 전적으로 옳거나 그르지는 않았다. 정말 드물게 온전히 옳더라도 전심을 다해 편을 들어주는 건 어쩐지 주관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 같아 주저하게 되기도 했다. 혹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온 마음을 다해 편이 되어줄 수도 있었지만, 생물이며 동물인 누군가에게 하나뿐인 마음을 온전히 내어준다는 건 보통의 믿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 같았다. 어쩌면 그보다, '편을 든다'는 것의 사회적 의미를 알아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개의 경우 누구의 편이 된다는 것은 그 나머지의 반대편이 된다는 것을 뜻했다.

 믿어주고 싶은 사람이 곤경에 빠졌다. 믿어주고 싶다는 것과 믿음이 있다는 것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놓여있는지를 비로소 실감한다. 여전히 어른의 나이에 어른 아닌 마음으로 살고 있지만, 실은 나도 어른이다. 편을 든다는 것은 얼마나 순진하고 유치한 일인가. 그리고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어렸을 적에는 놀이처럼 쉬웠던 일들이 어른이 되고나니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일이 되어버렸다. 믿어주고 싶은 사람 속의 진실은 나도 알지 못한다. 사람은 모른다,와 그러나 아닐 것이다, 사이에서 내 마음도 흔들린다. 이미 건너버린 시간 저 편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참 많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라 2006-09-02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절마다 가슴에 와 닿네요-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일, 이라든지 사람은 모른다,와 그러나 아닐 것이다, 사이...
잘 읽었습니다.

waits 2006-09-02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절마다 가슴에 와 닿으신다니...
혹시 님도 무슨 심란한 일이 있으신지. 세상이 사람이 참, 어렵네요.

에로이카 2006-09-02 0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밤늦게까지 안 주무시고, 무슨 사연 생겼나봐요? 사연? 무슨 라디오 방송 같네요... 잘 모르지만, 맘고생 너무 안 했으면 좋겠어요... "나어릴때"란 어른이 되어야만 존재한답니다... (오.. 해놓고 나니, 말 같은 말장난이 되어 버렸네..^^)
"매일매일 기다려"밖에 몰랐는데, 티삼스가 판도 있고, 이런 노래도 있었군요...

waits 2006-09-02 0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노래에 갖다붙일(?) 일은 아닌데, 워낙 노래가 삶이다보니 엿다 대고 넋두리를 해버렸네요. 사연은 뭐, 맘고생 당사자는 따로 있고 저는 그저 생각'만' 하는 거랍니다. 아니었음 좋겠다고, 아닐 거라고. 음.. 그런 의미로 쓰신 게 아니란 건 알지만, '티삼스가 판도 있고' 이거 웃겼어요. 티삼스 섭하겠다...^^;;
 

 



 

꽃이 만발하는 계절 가고 
휑한 바람 부니 
부초처럼 떠 돈 하! 많은 세월 
아리랑 고개 무심쿠나 
어디메요 어디메요   
내 가는 곳 어디메요
    
텅 빈 저자거리 위로   
초저녁 별만 반짝인다   
  

내 어릴 적 장대 들고  
별을 따던 손엔 
의미 없는 욕망으로 
찌들어진 나날들이 
푸르고저 푸르고저   
내 쌓은 것 무엇이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빌던 
영혼의 노래 듣자꾸나
  

슬기로운 영혼 어김없이 타야 할  
꽃마차의 꿈 꾸시며 
얽히고 설킨 삶의 애증들을 
애착에 매듭 푸시겠지  
뉘 말할까 뉘 말할까   
내 이룬 것 영원하다 
    
한 끼면 족할 우리 삶이   
움켜쥔 건 무엇이오

우리의 생이 단 한 번 핀  
섦도록 고운 꽃이구나 
취해도 좋을 삶을 팔고찾는 
장돌뱅이로 산천 떠도세
 
가야겠네 가야겠네   
이 땅을 위한 춤을 추며 
    
어우아 넘자 어우아 넘자   
새벽별도 흐른다 ...

 

작사,곡 곽성삼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8130504

 

 아침저녁, 가을처럼 선선하다. mp3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으며, 어서 날씨가 서늘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언제 들어도 곽성삼 아저씨의 노래는 짠하지만, 너무 더운 날에는 감당하기 힘든 가슴을 조여오는 생의 무게가 담겨있는 목소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의 노래에는 외면할 수 없는 진정성 거부할 수 없는 생명력 같은 게 담겨 있어 가볍게 듣기에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떨리는 목소리 가쁜 호흡으로 몰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어쩐지 나도 꽤 사연 많은 삶을 살아온 듯한 느낌에 괜히 한숨이 나오곤 한다.

 지금은 경기도 양지에서 '고물잡이'로 살아가며 새로운 음악을 모색하고 있는 가인 곽성삼. 한때는 성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꽤 촉망받는 작곡가 겸 가수였다 하고,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주유원, 경비원, 보일러공, 외판원 등으로 떠돌며 작업한 음반을 들고서 이십여 년만에 다시 나타난 때가 2001년이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강촌의 윌까페에서 그의 작은 공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뒤늦게 알게 된 존재, 어렵사리 구한 그의 지난 노래까지 들으며 감읍하고 있던 터라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누구도 '곽성삼'이라는 이름을 알지 못했고, 큰 기대는 없었지만 들려준 노래에도 다들 별 반응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이제는 연락이 끊겨 버렸지만 늘 반은 정신이 나가있는 듯한,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불가해한 관계로 이따금 연락을 주고 받던 후배에게 동행을 제안했다. 엠티철이 아닌 비 오는 공휴일의 강촌 윌까페는 불과 두세 테이블을 차지한 손님들로 조용했고, 그들 중 누구도 공연을 보러 온 듯한 낌새는 아니었다. 잘은 모르지만 분명 흔한 공연은 아닐텐데 참 난감한 분위기다 싶어 지레 걱정을 얹어 후배와 맥주를 나누다보니 어스름 저녁이 되었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조금은 어수선하게 별다른 주목은 없는 채로 무대에 오른 그는, 자그마한 체구에 형형히 빛나는 눈을 가진 촌로 같은 모습이었다. 한 시간 가량, 많지 않은 노래로 이어진 그의 무대는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을 만큼의 고독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그가 힘겹게 노래를 안고 살아온 세월의 자락이 풀어헤쳐진 것만 같았다. 좀은 꿈꾸는 듯이 공연이 끝나고, 다행히 그를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모시는 중년의 사내가 나타나 초라한 무대의 쓸쓸함을 보전하는 것 같았고 자리를 마련한 주인장 아저씨도 정성껏 예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쩌면 유일하게 공연에 집중하는 객석이었을 우리 테이블에 그가 찾아왔다. 어색하고 쑥스러웠지만, 비오는 날 서울에서 먼 걸음을 마다 않은 팬(?)의 존재에 그는 꽤 반색을 했고 졸지에 나는 민망한 사명감(외로운 가인에게는 든든한 귀가 필요하다는!)에 사로잡혀 가져갔던 씨디 부클릿에 싸인까지 받고 말았다. 맥주잔을 부딪히며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도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상황적으로 나와 후배는 꽤 훌륭한 젊은이들이 되어버렸고 강촌까지 친히 공연에 나선 '선생님'을 보필하는 아저씨와 함께 경기도 어느 산 속에 자리 잡은 '귀곡산장'이란 까페에 들러 막걸리를 마셨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그 만남은 이런저런 긴 이야기와 함께 다음 날 낮까지 이어졌다.

 곽성삼 아저씨는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게 자기의 노래와 삶을 보듬어 안고 가는 사람인 것 같다. 거의 아무도 그의 노래를 알아주지 않지만 존경스러울 만큼 당당하고 고집스럽다. 이미 중년을 넘어 선 나이지만 그리고 참으로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생활 속에 놓여 있지만, 그에게는 그런 것들이 개의할 조건이 전혀 아닌 것 같다. '한단고기'에 열을 올리며 새로운 작업에 골몰하는 것 같았는데, 그 쪽은 차마 마음이 동하지 않아 이따금 생각이 나면 옛 노래를 듣고 좋은 음악을 새로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정도가 내가 가진 그에 대한 관심이다. 경비실에서 화성악 악보를 펼쳐놓고 공부를 했다는 그의 중년, 그리고 이제 오십대 중반에 접어드는 그는 낮에는 고물을 잡고 밤에는 음악을 구상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눈물겨운 마음이 되고는 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6-08-31 0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31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31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08-31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