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 집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음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음 잘 있거라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음 갇혔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음 잘 있거라 잘 있거라 
음 잘 있거라

 

기형도 시, 작곡 백창우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8335829

 

 그의 집은 우울을 한껏 담은 채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다. 이따금 다가가면, 그녀의 따스한 눈길조차 얼어붙을 것만 같은 작정한 듯한 침묵과 조용한 냉담으로 둘러싸인 집. 그러나 어느 날, 그는 마음을 바꿔 말하고 대꾸하고 심지어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몰래몰래 훔쳐보던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슬금슬금 나타나 그에게 말을 걸고 웃음을 보내기 시작한다. 오로지 늪과 같은 단단한 오해에 가로놓인 그녀에게만 금단의 집. 그는 이제 웃으며, 모두에게 다정하다. 이제껏의 냉소와 침묵은 청소를 위한 거였어. 다시 원래대로 하지 뭐. 이제 침묵은 그의 몫이 아니라 그녀의 몫, 담 너머의 애애한 화기를 결코 가질 수 없는 꿈처럼 지켜보는 그녀의 침묵이 철퍼덕 주저앉는다. 그녀의 부재는 그에게 사소한 안심을 선사했는지도 모른다. 해명도 설명도 난마처럼 얽혀 더 깊은 오해의 질곡을 만드는 관계의 늪,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없는 듯 지켜보는 것 뿐. 다행히 시선은 보이지도, 발각되지도 않는다. 안전하고도 침울한 존재의 형식, 무가시의 시선으로 남은 그녀는 중얼거린다, 잘 있거라 그리고 잘 잊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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