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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어머니와 원행을 다녀오다 - 원행을묘 정리의궤 (園幸乙卯整理儀軌) ㅣ 처음 읽는 의궤 1
김흥식 지음 / 태학사 / 2022년 1월
평점 :
의궤란 각종 행사의 준비부터 마무리를 기록한 공문서라고 랍니다. ‘원행을묘’는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그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맞이하여 아버지 성묘를 겸한 잔치를 준비하는 기록을 남긴 책입니다. 요즘 환갑의 나이는 아직 청춘으로 여겨지지만 당시만해도 장수의 상징이었기에 왕으로서도 어머님을 위한 큰 잔치를 베풀게 되었겠지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정조의 효심뿐 아니라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 과학적인 사고방식등을 두루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매 과정마다 백성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 국가의 재산을 최대한 절약하려 하고 모든 과정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려 한 정조의 고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배다리를 만들기 위한 ‘어제주교지남’은 감동적이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글 뿐 아니라 수록된 그림 역시 무척이나 매력적이라 조만간 그림을 직접 보러 미술관을 가야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처음 읽는 의궤’시리즈의 첫 책으로 나와 다른 의궤에 대한 호기심을 한껏 부추겨 주었으니 다른 의궤를 소개하는 책들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다만 지금보다 조금만 더 쉽게 풀어주신다면 더 많은 독자들이 읽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원행을묘 정리의궤』는 이렇게 계획된 행사인 을묘년의 성묘, 그리고혜경궁 홍씨의 장수를 기원하는 잔치, 나아가 1795년 6월 18일 개최한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에 이르는 전 행사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경축의 예를 여러 신하가 이미 시작하였으니 지금 바로 준청準[신하들이 청하는 것을 임금이 윤허하던 일]하겠다. 내년 원행에 자궁의 어가를 받들어 모시기 위하여 지난봄, 한 직책을 별도로 두어 전담해서 거행하라고 하교하였는데, 행정적인 일이 지금쯤은 이루어져서 설치되어야 한다." 1794년 12월 10일
정리소의 낭청이 당상의 뜻으로 아뢰기를, "현륭원에 행차하실 때, 관계되는 모든 일은 본 정리소에서 주관하여거행합니다. 그런데 배다리 놓는 일은 관계된 바가 더욱 긴요합니다. 따라서 며칠 사이 날씨를 보아 따뜻해지면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뱃사람들에게 날마다 일을 시킨다고 하더라도 20일 가까이걸려야 끝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절목節目에서 그사이에 관련된 일들의 자세한 규칙을 정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무릇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조리가 있으면 일은 반만 하고도 실적은 두 배를 거둘 수 있습니다.
어제주교지남御製舟橋指南 배다리 제도는 『시경詩經』에 실려 있으며 역사책에도 나타나 있어서, 그것이 시작된 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역이 외지고 막혀서 오늘날까지 시행되지 못하였다. 이에 내가 그것을 실행할 뜻을 가지고 의정부에 자문하고 부로父老[나이 많은 어른]들에게까지 물어본 것이 부지런하고도 정성스럽지 않은가?
일단 범죄가 있을 경우 즉시 배 장부에서 그 명단을 제거하고 다른가 을배로 충당하게 하면, 이익이 있는 곳에 벌칙 또한 적지 않으므로 형벌을쓰지 않아도 백성들을 자연히 징계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할 경우 5강의 뱃사람들은 배다리에 편성되는 것을 영광스럽게 받들게 되어, 그 기회를 얻지 못한 자는 걱정하고 이미 얻은 자는 혹시라도 잃을까 걱정하면서, 혹시라도 남에게 뒤질세라 힘을 다해일에 참가할 것이다. 은혜를 베풀면서도 낭비하지 않고, 수고롭게 하면서도 원망을 사지 않고, 위엄을 보여도 사납지 않은 것이 바로 이것을두고 한 말이다.
묘시 초3각에 삼취하여 때가 되자, 임금께서 융복을 갖추어 말을 타고신풍루에 나와, 말에서 내려 자리에 오르시어 동부승지 이조원에게 하교하시기를, "너는 내려가서 쌀은 두 배로 지급하고 죽은 똑같이 나누어 먹여, 쌀을 나누고 죽을 먹임이 모두 자궁의 은혜에서 나왔다는 뜻을 뭇 백성들에게 알리라." 하시고 또 하교하시기를, "선전관은 죽 한 주발을 가져오라. 내 죽 맛이 어떠한가를 보겠다." 하셨다.
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러한 말들은 너희들의 겉치레 인사이다. 너희들은 모두 나의 자식이니 매양 은택을 내리지 못함을 걱정한다. 더구나 구중심처九重深處[겹겹이 문으로 막은 깊은 궁궐이라는 뜻으로, 임금이 있는 대궐 안을 이르는 말]에서 백성들의 질고疾苦 [병으로 인한 괴로움]를 자세히알 길이 없으니 지척의 어가 앞에서 생각들을 말하게 하여, 아뢰지 못하던 어려움을 아뢰게 하여 여러 백성들의 고충을 들어주고자 함인데, 너희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 어찌 두려워하여 머뭇거리며말을 못 하고 있는가?"
"세월이 흐르고 흘러 회갑 탄신일을 맞는 것이야말로 보기 드문 큰 경사이다. 어버이의 춘추가 여기에 이르게 되면 이를 경축하며 기쁨을 표시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로서 당연한 것이다. 정중하게 음식을 대접하며 술을 따라 올리는 것은 서민들이 하는 일이요, 잔치 자리를 마련하여여러 집안 어른들을 초청하는 것은 경대부들이 하는 일이요, 정사를 하며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하는 것은 임금이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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