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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평점 :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을 만날 때 책에 대한 애정이 철철 흐르게 됩니다. 이 소설은 SF가 아닌 우리의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바로 보고 미래를 빛낼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정상이라는 것을 정의하지도 못하는 인간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배척하고 무시하는데다가 이유없는 피해의식까지 생긴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모두가 같은 능력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면 천재 음악가와 화가, 몸이 활처럼 휘는 무용수, 남들보다 빠르고 높이 뛰는 운동선수들이 세상을 살 수 있었을까요?
저는 루의 선택을 평가할 수도 돈의 선택을 욕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만 이 아름다운 소설을 읽고 세상과 사람들을 좀 더 부드럽고 넓게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러두기
자폐인의 ‘자폐특성‘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질병과 같은 선상에서 ‘자폐증‘ 이라 불려 마땅하지 않다. 이는 분명 지양해야 할 표현이나, 본문에서는 작품 세계 속인식의 한계를 드러내기 위해 선택적으로 사용했다.
그녀는 나를 좀 멍청한 애처럼 대한다. 내가 (그녀의표현을 따르면) 과시적인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그저 생각하는 대로 말하라고 지적한다.
올드린이 무엇을 할 수 있나? 아무것도, 누가 무엇을 할 수있겠나? 아무것도, 크렌쇼 같은 사람들은 저런 사람이라서꼭대기에 올라앉았다-위에 서려면 저런 사람이어야하는가 보지.
공항으로 가는 길에, 나는 창밖을 본다. 공중을 떠다닐 수있을 듯 가벼운 기분이다. "행복은 정상 이하의 중력에있는 것 같아." 내가 말한다. 마저리의 시선이 느껴진다. "깃털처럼 가볍게. 그런뜻이야?" "깃털은 아닐지도 몰라. 풍선에 더 가까운 기분이야." "어떤 기분인지 알아." 마저리가 말한다. 마저리는 지금 그런 기분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마저리의 기분을모른다. 정상인들은 그녀의 기분을 알지도 모르지만, 나는알지 못한다. 그녀를 알면 알수록,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것이늘어난다. 나는 톰과 루시아가 돈에게 왜 그렇게 심술궂었는지도 모른다.
"돈은 가끔 진짜 밥맛이야." 돈은 밥이 아니다. 사람이다. 정상인들은 경고 없이단어의 의미를 바꾸어, 이런 식으로 말하고, 그 뜻을이해한다. 몇 년 전에 누군가에게서 밥맛이 나쁜사람‘이라는 뜻의 속어라고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안다. 그러나 그는 내게 왜 그런지 설명해 주지 못했고, 나는아직도 궁금해하고 있다. 만약 누가 나쁜 사람이고 그가나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왜 그냥 그렇게 말하지않을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알지 못하는 경우인 단순한 무지도있지만, 이해의 빛을 어두운 편견의 덮개로 가리는, 알기를거부하는 고의적인 무지도 있다. 그러니 나는 긍정적인어둠이란 것이 존재할지도 모르고, 어둠이 속도를 가질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 자신이기를 좋아합니다. 자폐증은 나 자신의 한 부분입니다. 전부가 아닙니다. "나는 내 말이 사실이기를, 내가 내 진단명 이상이기를 바란다.
마침내 다시 생각하고 느낄 준비가 된다. 슬프다. 나는슬픔을 느껴서는 안 된다. 나는 포넘 박사가 내게 했을법한 말을 되된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보수 좋은직업을 갖고 있다. 살 집과 입을 옷이 있다. 드물게도자가용을 운전할 자격을 갖고 있어, 다른 사람과 함께차를 타거나 시끄럽고 번잡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않아도 된다. 운이 좋다. 그래도 슬프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여전히 안된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옷을 입는다. 같은 때 같은말을 한다. 안녕하세요, 안녕, 잘 지내요, 괜찮아요, 잘자요, 부탁합니다, 고마워요, 천만에요, 아뇨, 사양할게요, 당장은 아니에요. 교통 법규를 지킨다. 규칙을 따른다. 아파트에 평범한 가구를 놓고, 내 별난음악은 아주 조용히 틀거나 헤드폰으로 듣는다. 그래도부족하다. 이렇게 안간힘을 쓰는데도, 진짜 사람들은내가 변화하기를, 그들과 같아지기를 바란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변화하기를 바란다. 내 머릿속에 이것저것집어넣고, 내 뇌를 바꾸고 싶어 한다. 그렇지 않다고말하겠지만, 사실은 그렇다.
정상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상이 무슨 뜻이든 간에.
그는 내게 타이어 네 개의 바람이 빠졌다니 유감이라고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어떻게 그런일이" 라든지 "정말 속상하겠어요" 라고 말하지만, 크렌쇼 씨는 정상인이면서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유감스럽지 않은지도 모른다. 표현할인정이 없는지도 모른다. 나는 느끼지 않을 때에도관습적인 말을 하도록 배워야 했다. 그것이 적응하고함께 어울리는 법을 배운 행동이기 때문이다. 아무도크렌쇼 씨에게 적응하라고, 함께 어울리라고 말한 적이없을까?
나는 왜 정상인인 올드린 씨가 크렌쇼 씨를 그런 식으로따라가는지 모른다. 크렌쇼 씨를 무서워하는 걸까? 정상인들도 다른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무서워할까? 만약 그렇다면, 정상이라서 좋은 점이 뭘까? 크렌쇼씨는 치료를 받아서 정상이 되면, 다른 사람들과 더 쉽게어울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크렌쇼 씨가 말한 ‘어울리다‘ 의 의미가 궁금하다. 어쩌면 그는 모든사람들이 올드린 씨처럼 자신을 따라다니기를바라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를 따라다닌다면, 우리는우리가 맡은 일을 다 하지 못할 것이다.
낫고자 하느냐는 질문은 안초비를 좋아하고 싶으냐는 질문과 같다. 나는 안초비를 좋아하는 느낌이 어떤 느낌일지, 입 안에 어떤 맛이 느껴질지 상상하지못한다. 안초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게 안초비가 맛있다고 말한다. 정상인들은 정상인으로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들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맛이나 느낌을 묘사하지 못한다.
"나도, 누가 내 뇌를 바꾸는 일을 원치 않아. 범죄자들이나 뇌를 바꾸어야 하고, 나는 범죄자가 아냐. 자폐인은 다를 뿐이지, 나쁘지 않아. 다름이 잘못은아니야. 달라서 힘들 때도 있지만, 잘못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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