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새의 선물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5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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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에 읽은 책을 다시 보았습니다. 진희는 여전히 같은 이야기 안에서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만 저는 이제 어른이 되어 그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20여년 전 진희는 그저 되바라진 아이의 얼굴로 “세상이라는 건 이런 거야”’라며 또랑또랑하게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진희는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어때? 세상은 그렇지?”하며 묻는 표정입니다.

하지만 나는 어른들이 나를 귀여워하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자기들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밀을 저당잡혀 있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귀여워할 수밖에 없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런 비굴함이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다.
내가 어른들의 비밀에 쉽게 접근한 것은 바로 어린애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서 ‘어린애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자기들이 다루기 쉽도록 어린애를 그저 어린애로만 보려는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어린애로 보이기 위해서는 예쁘다거나 영리하다거나 하는 단순한 특기만으로 충분하다.
나처럼 일찍 세상을 깨친 아이들은 어른들이 바라는 어린이 행세를 진짜 어린이 수준밖에 못 되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그럴듯하게 해낸다. 그래서 어른들 비밀의 겉모습은조금 엿봤을망정 그 비밀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행동한다. 그것이 어른들을 얼마나 안심시키면서 또한 귀여움을 촉발시키는지 모른다. 비밀이란 심술궂어서자기를 절대 보이기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누군가에게 공유되어지기를 간청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줌마들은 자기의 삶을 너무 빨리 결론짓는다. 자갈투성이 밭에 들어와서도 발길을 돌려 나갈 줄을 모른다. 바로 옆에 기름진 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한번 발을 들여놨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뼈빠지게 그 밭만을 개간한다.

나는 봉희처럼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하는 어린애들을경원한다.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것처럼 스스로 어린애임을 드러내 보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른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장 어린애답게 보이는것이다. 어린애로 보이는 것은 편리하기도 하지만 비상시에는 강력한 무기도 된다. 그런데도 아무런 이지적 노력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해도 시간이 해결해주는 그따위 신체적성장을 남의 눈앞에 앞당겨서 보이려 한다거나 다만 금기라는 사실 때문에 본뜰 가치도 없는 어른 흉내에 매료된다거나 하는 것은 역시 봉희 같은 어린애들만의 생각이다.

이제 성숙한 나는 삶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 어린애의 책무인 ‘성숙하는 일‘을 이미 끝마쳐버렸으므로 할일이 없어진 나는 내게 남아 있는 어린애로서의 삶이 지루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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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교수님의 글은 읽기 쉽고 이해하기도 쉽습니다. 공부에 대해서도, 정치에 대해서도, 추석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이번 책에서도 정치라는 것은 하나도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고, 정치가들과는 평생 만나고 싶지도 않은 저에게 그럴 수 없음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알려주시네요.
교수님의 필력으로 쭉쭉 읽어 나갔지만 뒤로 갈수록 너무 드립력에 힘을 주시는 것 같아 오히려 지루해져 아쉽습니다.

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사람과 함께 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자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정치는 과일 수레를 엎어버리고 싶은 원한이 애당초 생기지 않게 하는 일, 쏟아져굴러다니는 사과를 차근차근 주워 담는 일, 그리고 제풀에무너지지 않도록 사과들 간의 균형을 잘 잡는 일이다. 비록 엎어진 수레를 방관하거나 과일을 밟고 다니거나 등 뒤에서과일을 깎아 먹거나 굴러다니는 과일을 훔쳐 달아나는 이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조선시대의 문인 조찬한(趙續韓)은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사납게 굴지 않았는데도 백성들이 잘 따랐으니 우아하지 않습니까.
얽어매지 않았는데도 백성들이 스스로 복종했으니 단정하지 않습니까. 자리를 맡았을 때는 직무에 충실하고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는 백성들을 생각했으니, 바탕과 겉멋이 잘 조화를 이루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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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금주 다이어리 - 어느 애주가의 맨정신 체험기
클레어 풀리 지음, 허진 옮김 / 복복서가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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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에는 치료가 없다고 합니다. 완치도 없지요. 그저 평생 참고 사는 것 뿐입니다. 중독을 인정하고 참아가며 스스로를 통제하는 힘을 기르다보면 다른 힘을 얻게 되고 중독에 속아 못 보던 것을 볼 수 있게 되지요. 소버마미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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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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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 대하여 문화한이지만 하루키의 에세이이기에 기다린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실망스러웠습니다. 그가 소개해 주는 음악이라면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한번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보여주니 더욱 선택이 어렵네요. 게다가 작가는 자신이 아끼는 것을 선보인다는 마음에 들떴는지 그동안 보여주던 소중한 위트가 빠져 있는 듯 합니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그 맛인데 말이에요. 지난번에는 티셔츠를 소개하고 이번에는 LP를 소개하니 나중에는 집안의 살림살이 하나씩 소개하며 책을 만드시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그의 소설도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죠.

이걸 들으면 도움이 좀 될까요?

https://m.youtube.com/playlist?list=PLeU2lp4IKHAnrWbwzsHRpmYxfX2eqBsZ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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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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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를 할 때 가장 이상야릇한 것은, 한 도시가, 온 세상이 결코 마주칠 리 없는 하나의 존재로 가득차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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