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시큰둥하기 읽은 책이 유명배급사를 통해 드라마화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드라마도 챙겨 보았으나 역시 별 감동없이 지나가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인기의 열기는 아직도 식지 않아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을 만들었지요. 아! 이제 알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왜 대단한 이야기인지, 어떻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는지 말입니다. 한국의 일제식민지-6.2전쟁-민주화의 격동기를 살아내는 한 가족의 이야기에는 그저 그들의 삶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립운동가도 이념에 사로잡힌 정치인도 민주화투쟁열사도 등장하지 않은 채 그 시대의 무게를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족들이야말로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이 사회를 구성하고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위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라도 이 이야기의 가치를 알게 되어 다행스럽습니다.
카야는 자기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왜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용서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걸까? 카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렛 미인‘의 원작자라는 정보로 읽게 되었습니다. 역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경계선‘ 과 ’지나간 꿈을 흘려 보내고‘
삶이 감옥이라면, 갇힌 채 살아가다가도 벽이 어디있는지, 자유의 한계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깨닫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과연 벽뿐인지 아니면 탈출 통로가 존재하는지도. 티나에게는 학교 졸업파티가 그런 순간들 중 하나였다.
그때 이후로 성형수술 기술이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지만, 티나는 운명을 받아들였고 재도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무도 벼락 맞은 모습 그대로인데 왜 나는회복해야 한단 말인가?
인간들은 우리를 그들의 모양으로 만들어.우리는 우리를 인간들이 모양으로 만들지.
사람들은 내가 야망이 없다고들 했다. ‘야망‘이 경력의 사다리나 신분상승의 계단 같은 것들을 기어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을 뜻한다면, 그런 평가는 어떤 면에서 사실이다. 하지만 야망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있다. 예를 들어 내 야망은 조용하고 품위 있는 인생을사는 것이었으며, 그에 성공했다고 믿는다.
지카에게 말하면 고쳐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류를 유지하고 싶다. 불현듯 재생되는 것은 마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와 인간을 마비시키는 그리움 같아서 나는 그것을 흉내 내고 싶다. 감정을 훔칠 수 없으니 베끼는 것이다.
거기다 무게를 달지 못한 두려움까지 더해 이례적인 짐에 깔려버렸다.
그들은 저희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다녔다.
진실한 전쟁 이야기는 결코 교훈적이지 않다. 그것은 가르침을 주지도, 선을 고양하지도, 인간 행동의모범을 제시하지도, 인간이 지금껏 해오던 일들을 하지 않도록 말리지도 못한다. 만약 이야기가 교훈적으로 보인다면 믿지 마라. 전쟁 이야기의 끝에서 희망이 차오름을 느낀다면, 혹은 거대한 폐허 속에서 일말의 올바름을 건진 느낌이 든다면 당신은 케케묵은지독한 거짓말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올바름 따위는 없다. 선은 없다.
많은 경우 진실한 전쟁 이야기는 믿어지지 않는다.믿어진다면 의심하라. 신뢰성의 문제인 것이다. 더러 비정상적인 것이 진실하고 정상적인 것이 진실하지않을 때가 있는데, 왜냐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비정상적인 것을 믿게 하려면 정상적인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전쟁 이야기에서 교훈은, 만약 교훈이란 게있다면, 옷감을 이루는 실과 같다. 그것은 한 올만 고이 골라낼 수 없다. 그 의미를 추출하려면 더 깊은 의미를 헤집어놓아야 한다. 그러면 결국, 정말로, 진실한 전쟁 이야기에 관해 "이런"이라는 말 외에는 할말이 남지 않을 것이다.진실한 전쟁 이야기들은 일반화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관념이나 분석에 빠지지 않는다.
"악의 정원이라고. 여기서는 있잖아, 죄란 죄가 다 아주 신선하고 독창적이야."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 말이 훨씬 더 난해한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죽은 청년의 시신에 드러난 사실을 조고 입을 헤벌리는 것뿐이었다. 지금도 나는 해결을 보지 못했다. 나는 가끔은 나를용서하고 가끔은 나를 용서하지 않는다. 평범한 일상중에는 그 생각에 몰두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때로는, 가령 신문을 읽고 있거나 방 안에 혼자 가만히 앉아있다가 고개를 들면 그 청년이 아침 안개 속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곤 한다. 나는 어깨가 살짝 굽은채 무언가에 귀 기울이듯 고개를 옆으로 젖히고 내쪽으로 걸어오는 그를 지켜보고, 그는 내게서 몇 야드 안 되는 거리를 지나가면서 어떤 은밀한 생각에 젖어 문득 웃음 짓고는 도로 안개 속으로 궂이진 오솔길을 따라 가던 길을 계속 가곤 한다.
다른 사람들은 둘러서서 물속을 지켜보았는데 조금 뒤 누군가 "저대로 놔두고 갈 순 없어" 하고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더니 야전삽을 꺼내 파기 시작했다. 힘들고 질척거리는 작업이었다. 파내는 속도가진흙 메워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듯했지만 카이오와는 그들의 친구였고 그들은 메워지든 말든 그 일을 계속했다.
그들은 카이오와가 안됐다고 느꼈다. 그러면서도 일종의 아찔함, 은밀한 기쁨을 느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살았고, 똥밭에 빨려 들어가는 것보다는차라리 비를 맞는 게 나았고, 모든 게 운과 우연의 문제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