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한 미학자가 아는 그림을 보러 미술관에 가는 건 그리운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과 같다는 얘기를 했어. 책이나 음악과 달리그림은 복제본을 소유하는 게 의미가 없잖아. 장소특정적이라 그도시의 미술관에 가야만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림과 관람자 간에관계를 형성하게 한다는 거지. 어떤 그림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느끼게 되는 건 그런 관계 때문이라는 거야."
지극히 성실하고, 지극히 지적이며, 지극히 교양 있는 노인들.이들과 함께 수업을 들으면서 ‘삶이란 무엇인가‘ 종종 생각했다.우리는 때때로 ‘공부에도 때가 있다‘며 무언가를 배우기에는너무 늦었다고 여기지만 이 강의실에는 한 발 한 발 내딛는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두뇌만은 그 어떤젊은이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지적 열망으로 가득찬 노인들이앉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지식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그들의 부유함이다. 그렇지만 부유하다고 해서 모두 말년에 공부에열중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남녀성관계시 임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을 ‘피임‘, 즉 ‘아이 배는 것을피한다‘라고 할 때의 수동성과 ‘버스 컨트롤‘, 즉 ‘아이 낳는 것을통제한다‘고 할 때의 능동성 간의 차이. 그건 각 문화에서 여성이어떻게 자리하고 있는가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피임‘이라 할 때여성은 자기 몸의 주체가 아니지만, ‘버스 컨트롤‘이라 말할 때는자기 몸의 주체가 된다. 꽤나 주체적인 척했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순종적인‘ 한국 여성인 건가,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한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는가의 여부는 거대한시민정신이라기보다는 인간 개개인의 인격의 문제라는 것, 인간이란어디서나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격의 결함을 사회시스템으로보완할 수밖에 없고, 그 시스템의 정교함이 한 사회의 수준을결정한다는 것 등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이 다른 게 아니었다.시스템의 수준이 다른 거였다.
이 책은 내가 구병모작가님을 처음 만나게 된 책이었다. 이번에 새로나온 프리퀄(파쇄)를 읽고 나니 다시 ‘조각‘을 만나고 싶어졌다. 정말 재미있게 읽은 소설을 마치고 나면 홀로 영화캐스팅을 해보게 된다. 10여년전쯤 읽을 때는 이혜영배우님이 조각을 연기해주시면 좋겠다 생각했다. 다시 읽어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배우님의 나이가 조각과 비슷해졌으니 더욱더 영상으로 만나고 싶은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