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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소아 -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의 화신 ㅣ 클래식 클라우드 4
김한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평점 :
사실 페소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저 김한민작가님의 이름을 보고 선택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김한민 작가님이 페소아를 전공한 학자인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글쓰는 일러스트레이터로만 알고 있었지요. (표지 그림도 김한민 작가님이 그린 줄 알았을 정도 입니다)
그래서 처음 책장을 넘길 때 예상외의 내용이라 과연 끝까지 읽을 수나 있을까 싶었는데 책을 놓을 수 없이 빠져들었습니다. 이렇게 매력적이고도 미스테리한 인물은 처음 만났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뭐 하나 끈기있게 해내지 못하는 4차원 다중이’일 뿐이지만 그의 무심한 매력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페소아에게 매료되는 요소를 하나만 꼽으라면 뭐니 뭐니 해도 이명이다. 페소아와 관련된 대중 행사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늘 이명에 관한 질문이 주를 이룬다. 여기에 페소아‘라는 말이 포르투갈어로 사람을 뜻한다는 점, 그 어원인 페르소나가 가면을 의미한다는 점, 문학적 정체성이 여럿인 사람이 하필이면 그리 흔하지도않은 이 성을 타고났다는 기막힌 우연, 또한 페소아를 프랑스어로번역하면 ‘페르손느_personne’가 되고 이는 아무도 없음.nobody‘을 뜻하기도 한다는 점 등이 더해지면, 이 이야기만으로도 문학 애호가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심지어 페소아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채 이명이라는 아이디어만 듣고 그에게 빠져버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니 그 매력은 부정할 수가 없다.
"여행은 무엇이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모든 석양은 지 . 일 뿐인데 그것을 보러 콘스탄티노플까지 갈 필요는 없다. 여행을하면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나는 리스본을 떠나 벤피카Benfica(리스본 근처의 외곽 도시)에만 가도 자유를 느낀다. 리스본을 떠나 중국까지 간 어느 누구보다 강렬하게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내 안에 자유가없다면 세상 어디에 가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불안의 책,텍스트 138) 그는 여행의 무용함을 단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행은 정신의 활동력이 낮은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가차 없이 펌하한다. "여행은 느낄 줄 모르는 이들이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1행 책자는 경험을 풀어놓은 책으로서 항상 부족한 면이 있기 마련이다. 여행기의 가치는 글쓴이의 상상력에 비례한다. (…) 우리 모는 내면을 들여다볼 때를 제외하고는 다 근시안이다. 오직 꿈을때에만 제대로 볼 수 있다." (『불안의 책』, 텍스트 123)
능과 감만약 이상하고 설명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면, 한 사람의 지는수성이 똑같은 생각에 정주해서 유지되는 것, 항상 자기 자신과 이관성이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의 끊임없는 변화는 우리의 몸에도 해 당되고, 고로 우리의 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어떻게, 만약 병이아니라면, 어제 했던 생각을 오늘도 똑같이 하기를 원하는 비정상성에 어떻게 빠지며, 그것이 어떻게 재발될 수 있겠는가, 오늘의 두뇌가 이미 어제의 두뇌가 아닐 뿐은 물론, 오늘이라는 날조차 어제와는 다를진대? 일관성이 있다는 것, 그것은 병이고, 어쩌면 격세유전이다. (…) 현대적인 두뇌와, 장막 없는 지성, 그리고 깨인 감수성을 갖춘사람이라면, 하루에도 수차례, 생각과 확신에 변화를 가할 지적 의무를 가지고 있다. 종교적 신념, 정치적 의견, 문학적 편애를 가져 서는 안 될 것이며, 오히려 종교적 감각, 정치적 인상, 문학적 감탄 에 대한 충동을 가져야 할 것이다. 페르난두 페소아, 『생전에 출판된 산문들Prosa Publicada em Vidas,
네가 꿈꾸는 사람을 커다란 벽들로 둘러싸라. 그러고 나서, 대문의 쇠창살을 통해 정원이 보이는 곳에다, 가장 유쾌한 꽃들을 심어라. 너란 사람도 그렇게 여기도록. 아무도 안 보는 곳에는 아무것도 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처럼 화단을 꾸며라, 남들에게 보여줄 너의 정원 눈길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그곳에. 하지만 네가 너인 곳, 아무도 안 볼 곳에는, 땅에서 나는 꽃들이 자라게 놔두어라. 그리고 잡초들이 무성하게 놔두어라.
너를 보호된 이중의 존재로 만들어라, 그래서 보거나 응시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도록, 너라는 정원 이상은 ... 속마음 모를 겉치레 정원, 그 뒤에 토박이꽃에 스치는 너무 초라해서 너조차 못 본 풀.... - 1935년 9월 추정(『나의 시』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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