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저는 붓을 듭니다. 내일도 그럴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강풍에 맞서는 방법입니다. 광풍 속에서도쓰러지지 않고 우뚝 서는 비결은, 미동도 없이 맞서는것이 아니라 바람에 몸을 맡겨 흔들리 자신의 뿌리는절대 놓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고통은 소설을 썼기에 생겨났고, 그 고통을없앨 방법 또한 소설을 쓰는 것뿐이다.
노동자의 명예와 존엄은 숙련된 기술 위에 세워지는 법이다.
"입은 거쳐 가는 통로일 뿐이다. 산해진미든 풀뿌리든 나무껍질이든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데 어쩌자고 콩깻묵 한 덩이 얻겠다고 개 흉내를 내느냐? 사람은 줏대가 있어야 한다!"
진심으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 남 앞에서 으스대는 교만보다는 언제나 나은 법이다.
이상은 당연히 필요하다. 누구나 이상이 있고, 누구나 꿈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원대한 이상‘인가? 정해진 기준은 없다. 이상이 있다면 그저 노력하면 된다. 꿈이 있거든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붙이고 묵묵히 일하며, 그 꿈을 현실로 만들면 그뿐이다. 분명한 것은, 인간에게는 이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팔풍‘이란 불교철학에 나오는 여덟 가지 바람이라는 개념이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이(利), 쇠), 훼(毁),예(譽), 칭稱), 기畿), 고(苦), 락(樂)이 그것이다. ‘이‘는 뜻대로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일이고, ‘쇠‘는 사랑하는 것과안락한 환경을 잃는 일이고, 훼는 남이 뒤에서 헐뜯는일, ‘예‘는 뒤에서 칭찬하는 일이며, ‘칭‘은 눈앞에서 치켜세우는 일, 기‘는 비웃음, 조롱, 비난을 받는 일, ‘고‘는정신적·육체적 고통과 고난, ‘락‘은 정신적·육체적 즐거움이다. 네 가지 순경과 네 가지 역경이 사방에서 큰바람처럼 불어와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근래 들어 나는 점점 창작의 위기를 느낀다. 개인적인 재능이 소진되어서가 아니라 삶에서 멀어지고 낯설어져서다. 이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동료 작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글쓰기로 높은 지위와 녹봉을 얻고, 호화 저택에 살며, 좋은 차를 굴리고, 꽃다발과 박수에 둘러싸이면, 작가는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한 토행손과 안타이오스처럼 힘의 근원을 잃고 만다. 겉으로는인정하지 않고 그럴듯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여전히 힘이 넘친다고 믿을지라도 사실 마음만 굴뚝 같을 뿐 능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문학에서만큼은 디킨스의 그 묘사 그대로다. "최고의 시대면서 최악의 시대다." 우리가 토행손과 안타이오스에게서 교훈을 얻고,자기 약점을 분명히 알고 마음에 새기며, 언제나 대지에발을 디딘 채 민중의 평범한 삶에서 멀어지지 않는다면, ‘인류의 공통된 장점과 약점을 폭로하고 인간의 장점이창조한 찬란한 것들과 인간의 약점이 초래한 비극을 드러내며, 인간 영혼의 복잡성과 선악미추 사이의 흐릿한경계를 섬세히 보여 주고 그 흐릿한 지대에 한 줄기 빛을 비추는 작품‘을 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위대한 작품의 정의다. 아마 우리는 평생을 바쳐도그런 작품을 쓰지 못하겠지만, 그런 야망을 품는 편이야망조차 품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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