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재미있고 쫄깃한데 왠지 모를 서늘함, 찝찝함이 있었지요. 이상하게도 그 기분이 좋아 계속 그녀의 글을 찾아 읽게 되었는데 그런 감상을 ‘이야미스’라고 하는군요.(일본말로 싫다는 뜻인 ‘이야다’와 미스테리의 합성어라 합니다.)역시 새로운 장르의 개척자였던 것입니다.
이번 소설은 나비를 모티브로 한 미스테리 소설로 도입부부터 충격적인 내용이 전개됩니다. 역시 ‘이야다. 이야다’라며 읽게 되는데 뒤로 갈수록 너무 반전에 메인 듯 하여 맥이 빠지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만나는 그녀의 장편소설은 무척 반가웠고 부디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2023년에 발표되어 최근에는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하는데 그 표본의 이미지들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보고 싶네요.

악마가 광기를 심어준 게 아니다. 광기는 처음부터 내인에 있었다. 그런 인간을, 세상은 필시 악마라 부르리라.
"둘 다 결함이 아니야. 게다가 정상적인 시각이라고 했는데, 자기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눈에 보이는 색이, 똑같이 정상이라고 믿는 옆 사람 눈에 보이는 색과 정말로똑같은지는 아무도 몰라."
하지만 표리란 무엇일까? 가령 앞과 뒤라고 하면 남을 의식한 모습과 남에게 숨기고 있는 모습,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표리라고 표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뒤쪽이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눈으로만 직접 보지 못할 뿐, 남의 눈에는훤히 드러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앞면만 신경 쓰는 것은 단순히거울 앞에 섰을 때 그쪽이 잘 보이기 때문 아닐까? 자기 눈에 비치는 모습을 남의 눈을 통해 상상하고, 그렇게 비치길원하는 모습으로 가꾼다. 만약 뒤통수에도 눈이 있다면 등쪽을 뒷면으로 인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이 앞, 보이지 않는 것이 뒤. 아카바네 히카루는 자기 뒷모습이 매력적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그의 뒤통수에 눈이 달려 있다면 그는 훨씬 당당하게 행동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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