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집
정보라 지음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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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주택에 기본적으로 설치된 안전 보조 구조물을 거주자가 임의로 제거하려면 신청을 하고 허가를 받은 뒤 자기 돈으로 제거해야 한다. 아동의 안전 등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제거비용을 정부가 보조한다. 가구 배치에 방해가 되거나 단순히보기 싫어서 철거하는 경우, 관할 지역의 주거환경과에서 제거시 재설치 비용까지 고려하여 총 비용을 산정한 후 거주자에게 청구한다. 이후 다른 거주자가 핸드레일 재설치를 신청하면비용은 무료다.

무정형은 그게 가장 이상했다. 가족이 아이를 아이들의 집에 맡기는 건 흔한 일이다. 모든 돌봄은 국가와 공동체의 책임이다. 그런 철학에 기초하여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기 때문에 이름부터 ‘아이들의 집‘인 것이다. 색종이의 엄마도 차라리 색종이를 아이들의 집에 완전히 맡겨 버렸다면 아이가 아프거나 다쳤을 때 양육선생님들이 알아서 병원에도 데려가고 치료도 해 주었을 것이다.

오히려 의문은 더욱 커졌다. 표를 낳아 준 나라에는 ‘아이들의 집‘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아동의 양육을일정 부분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였다. 부모가 아이를 직접 양육하고 싶으면 당연히 집에서 양육할 수 있었다. 집은 신청하면 국가에서 무상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낮에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아이들의 집‘에서 양육선생님들이 돌봐주고 식사를 챙겨 먹이고 유치원이나 학교에 다니는 나이의아이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도록 등하교를 도와주고 숙제도 돌봐 준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다 보면 힘들 때도 있고 부모가 돈이 없거나 병에 걸리거나 다치거나 조부모가 아프거나 여러가지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럴 때는 아이를 ‘아이들의 집‘에맡길 수도 있다. 아이들도 그렇게 생활하는 데 익숙해진 것 같았다. 아이가 원해서 스스로 ‘아이들의 집‘에 머무르고자 한다면 부모는 강제로 아이를 데려갈 수 없다. 친부모가 자기 아이를 자기 집에 데려가려 해도 아이가 스스로 동의하지 않으면안 된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표는 깜짝 놀랐다.
이런 제도가 있다면 아기가 아무리 희귀하고 위험한 병에걸렸다 해도, 아무리 치료비가 많이 든다 해도 아기를 외국에입양 보내야 할 이유는 없다. 아기를 치료하고 양육하는 과정을 국가가 책임져 주기 때문이다.

"그 ‘모임‘은 분리한 아이들을 자기들이 운영하는 시설에 수용하고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았어. 그 때는 그렇게 했다. 그러니까 아이 한 명이 보호소에 들어올 때마다 단체가 받는 지원금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인 거야. 그러면 그 단체는 당연히 아이들을 최대한 많이 가족에게서 분리시켜서 많이 수용하고 싶을 거 아냐. 그래야 돈을 많이 버니까."

그래서 무정형은 자신의정신 건강을 위해 뉴스나 SNS를 일부러 안 보려 노력하고 있었다. 아기를 인공적으로 생산했으니 장애인도 동성애자도 피부색이 짙은 사람도 태어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기술과학의발전이라 주장하는 우생학 추종자들의 소식을 일부러 찾아서볼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아동학대 피해자를 분리해서 가둬 놓던 데야."
"피해자를 왜 가둬요?"
무정형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다른 선배가 대답했다.
"옛날에는 그랬다. 여긴 개인이 하는 사설 기관이었는데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무조건 애를 데려다 피해자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가둬 놓고 정부에다가 피해 아동을 이렇게 많이
‘구조‘했다고 숫자 보고하면 머릿수대로 돈 받고 그랬대."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거 납치 감금 아니에요?"
무정형이 분개했다.
"거의 그런 짓이지 뭐."
선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둬 놓으면 언제 풀어줘요?"
무정형이 물었다.
"안 풀어줘."
처음에 말을 꺼냈던 란(欄) 선배가 대답했다.
"놀리지 말구요."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시는 거 알아요. 하지만 이건 제가 직접 겪은 일이에요. 기계가 사람의 뇌파를 수집해서 사람하고똑같은,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뇌파를 내보내는 인공지능을만들고 있어요. 그렇게 해서 세상의 모든 스마트기기를 조종하려는 거예요. 그러면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고 내가 내 머리로생각도 할 수 없어요. 길에서는 차가 인공지능이 조종하는 대로 멋대로 달리다가 사람을 죽일 거예요."

부모가 없어도, 부모가 다쳐도, 부모가 아파도, 부모가 가난해도, 부모가 신뢰할 수 없는 인격을 가졌거나 범죄자라도, 아이들은 그런 부모와 아무 상관 없이 자라날 수 있었다. 아이의삶은 아이의 것이었다. 혈연이 있는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고 행운이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할수 없다면 슬픈 일이지만, 가족의 불운이 아이의 인생 전체를지배할 필요는 없었다. 돌봄을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모든 아이가 가진 고유의 권리였다.
아이들의 집에서 아이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아이들의 집은 어른들의 집이기도 했다.

"경찰이 상주해야 하네 마네 말이 많아…………. 그런데 아이들의 집은 원칙적으로 누구나 환영하고 모두가 안전한 곳이어야한다고. 정말 1초가 급해서 달려오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문 열어 줄 때 확인하고 경찰이 상주하고 그러면 그게 무서워서 못 들어오는 취약계층이 또 있단 말이야. 자꾸 문을 걸어잠그면 결국은 진짜 갈 데 없는 애들이 길거리에서 큰일 당해.
저런 범죄자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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