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우리들이 노동현장에 들어갈 때, 일생을 두고 그 현장에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에 있다고 봐. 죽을 때까지 말이야. 바로그것이 일반 노동자들의 실제 삶이거든. 우리는 현장에 들어가더라도 되돌아올 수 있는 길이 항상 열려 있지만 일반 노동자들은그렇지 않아. 그들에겐 노동현장이 바로 생존이지만 우리들에겐그게 생존이 아니라 의식일 뿐이거든. 그런데 그 의식은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차라리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게 어때? 예를 들면, 앞으로 10년 20년 이후의 우리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말이야. 확실한 것은 그때 세화의 모습은 택시운전사가 아니라는사실이야. 차라리 세화는 문화운동 쪽에 더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쪽에서 활동하는 세화의 모습은 상상이되거든"
"이상하게 들으시겠지만 별로 한 일도 없어요. 다만 저항했을 뿐이지요. 남한의 국시는 반공이랍니다. 프랑스의 ‘자유, 평등, 형제애‘처럼 적극적인 가치를 이루자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반대의 이데올로기였지요. 내 나이 스무 살 때, 나는 이 반대이념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증오심을 살찌운다는 것을 알아야 했어요. 나도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벌써 공산주의자를 철저히 증오하고 있었으니까요. 그것은 무서운 발견이었지요. 인간을 알기도 전에 이미 인간을 증오하다니. 인간에 대한 사랑을 알기 전에 증오부터 배웠다니. 그 충격이 있은 뒤에 남한의 권력이 모두 이 증오의 이데올로기만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지요. 나는 저항하여 나에게 강요된 증오를 거부했지요. 그 결과가 이렇게 된 셈이지요."
나의 처지는 나의 의식만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대하는 다른 사람의 의식도 규정하였다. 내가 돈도 없고 힘도 없으니 함부로 해도 된다는 의식이 있었기에그런 모함을 할 수 있었을 터였다. 이런 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실제 모습이었다. 이른바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의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프랑스에선이 주장과 저 주장이 싸우고 이 사상과 저 사상이 논쟁하는 데 비하여 한국에선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또 서로 미워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프랑스인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 주의 주장 또는 사상을 일단 그의 것으로 존중하여 받아들인 다음, 논쟁을 하여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데 비하여 우리는 나의 잣대로 상대를 보고 그잣대에 어긋나면 바로 미워하고 증오한다.
사람이 미래를 모르고 살면 불안하긴 하나 위험하지는 않단다. 아니, 미래를 모르고 사는 것이 오히려 축복일 수도 있단다. 그러나 과거를 모르고 사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란다. 그것이 개인의 과거였든 민족의 과거였든...
똘레랑스란 첫째로,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뜻합니다. 이 뜻은 내가 임의로 규정하여 말한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말 사전이 밝힌 똘레랑스의 첫 번째 뜻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똘레랑스의 두 번째 말뜻으로 프랑스말 사전은 "특별한 상황에서 허용되는 자유"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똘레랑스는 원래 ‘허용 오차‘를 뜻하는 공학 용어인데 사회적의미를 갖게 되어 ‘특별한 상황에서 허용되는 자유‘라는 뜻이 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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