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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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들이 카라치 집안에 대해서 가진, 또 우리 같은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전염된 두려움, 뿌리 깊은 원한,증오와 맹목적인 순종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감정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때 릴라가 내 손을잡은 것은 나 혼자 마지막 계단까지 올라갈 용기가 없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실은 그녀도 내 손을 잡음으로써 계속해서 나아갈 힘을 얻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흐뭇해진다.

설마 그런 걸까? 릴라는 부모님이 벌로 내 중학교 진학을 취소하게 하려고 나를 꼬드긴 걸까? 아니면 정말로 내가 중학교에 가지 못할까봐 그렇게 서둘러서 나를 다시 데려온 걸까? 세월이 흘러 오늘에 와서야 나는생각해본다. 사실 릴라는 때에 따라서 이 두 가지를 모두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린 시절 체룰로가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던 아름다움은 피어나지 못했단다. 그 아름다움이 모두 얼굴과 가슴, 허벅지와 궁둥이로 가버렸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름다움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그런 곳들로 말이야."

그들과의 이질감 때문에 생긴불행한 소외감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느낀 것은 오라치오가에있는 레스토랑으로 가던 바로 그 길에서였다. 나는 이 아이들과 함께 자랐고, 이들의 행동은내게도 자연스러웠다. 그들의거친 언어는 내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6년 동안 매일같이 이들이 전혀 모르는 길을 걸어왔다. 학생들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모든 과정을 훌륭히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땐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조금도 사용할 수 없었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자제해야 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학교에서의 내 모습을 잠시 접어두어야 했다. 기껏해야 나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해서 내 주장을 관철시킬필요가 있을 때만 그런 모습을 잠깐 내비칠 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세계 안에 머무른다는것은 어머니와 똑같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가 어머니와 같아진다면 내 곁에 안토니오 말고 누가 남겠는가.

결국 릴라마저도 내 어머니의 세계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해내야만 한다. 이제는 복종만할 수는 없다.

"너 천민이 뭔지 아니?"
"네, 선생님."
천민이 무엇인지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 모두가 천민이었다. 음식과 와인을 둘러싼 다툼,더 빨리 음식을 제공받고 더 나은 서비스를 해달라고 벌이는 싸움, 웨이터들이 분주히 오가는 더러운 바닥, 시간이 갈수록수위가 높아지는 저속한 건배사야말로 비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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