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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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흥미진진해하던 나는 강사가 구명정에서의식수 공급을 언급하는 순간 마음이 서늘해졌다. 구명정에는 다양한 비상 물품이 구비되어 있고 그중 하나가 눈금 컵이었다. 눈금 컵은 식수를 정확히 분배하는 데 필요했다. 위험이란 사건의 물리적 상황뿐 아니라 인간의 감정적 문제를 함께 발생시킨다는 점을 그제야 실감했다.

오래전 죽은 고래의 흔적과 사라진 활황의 기세, 작살을 든 많은 유럽인이 19세기 중반 증기선을 타고 이곳으로 왔고 1961년 남극 조약이 발효되기까지 남극해에서 고래 180만 마리가 사라졌다. 180만 마리는 떠올리는것만으로도 아득해지는 살상의 숫자다. 하지만 중요한건 이제 우리가 더 이상 남극해의 고래를 그런 대상으로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기와 가죽과 기름을 얻기 위한 획득물에서 보호하고 존중해야 하는 생명체로 바라보게 된 변화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작살과 총을 내려놓고 생명에 대한 경이와 사랑을 택한 과정은 인간종이 이루는 이런 마음의 변화가 진보와 발전이란 사실을 보여준다.

"혹시 불편해하면 어떡해요, 운동하는데……."
다가가고 싶지만 얼마큼 다가가야 할지 몰라 주저하는 성격은 남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배우 김수현을 닮은 LB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불편해하긴요,
다들 환영할 거예요" 하며 내가 남극에서 들은 가장 잊을수 없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환영받지 못하면 어때요, 그것도 배워가는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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