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김원영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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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평등은 추상적 규범이나 이념으로서가 아니라
‘능력‘의 측면에서 지극히 차별적인 관계에 놓인 존재들이 상대의 ‘힘을 존중하고 신뢰할 때 달성된다. 당신이 나를 배려해 내 앞에서 발레를 추지 않는다 하여 우리가 온전히 평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발레를 잘 추는 능력‘으로 당신은 내가 모르는 세계에 접속하는 다양한 방법을 나에게 제안할 수 있다. 내게도 춤출 ‘힘‘이 있음을 깨달은 지금 나는 발레를 추는 당신의 능력이 나보다 뛰어나다는 데 좌절하지 않는다. 물론 나에게도 당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차원이 있을 테다. 그것은 발레와 다른 종류의 춤일 수도, 논픽션 글쓰기일 수도, 일반 적으로는 매우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분야의 기술일 수 도 있다. 그 능력이 무엇이든 나는 이 능력들로 당신과 차별적인 개인이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내가 잘하는 영역을 섬세하게 이해하면서, 한편으로는 당신의 ‘힘을 믿으면서 나의 세계 로 당신을 초대할 방법을 고안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법 앞 의 평등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각각의 차별적인 능력을 지닌 개인들이 서로의 동등한 힘에 주의를 기울일 때, 우리는 고유한 개인이면서도 더 큰 세계의 일부가 된다.

김지수는 이때 뭐라고 말했을까? 뾰족한 수가 있었던 것 은 아니다. 극단 애인‘은 그날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장애인 배우처럼 똑같이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저런 걸 못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각자의 방식 으로 그것을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했다. 대사를 줄이되 다른 감각과 움직임을 활용하고, 장애배우의 표현을 통해 더 깊은 사유와 정서를 전달하는 방식도 있을 거라고 믿었다.

춤을 바라보는 관점, 인간 신체의 가능성, 정상성,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들 앞에서 데이비드는 최선을 다해 춤을 추고 워크숍을 진행했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공연할 기회를 가지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자기 일에 성실해야 한 다"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는 30년 전쯤 불거진 가슴으로 바닥을 기어다니는 아이를 기이하고 의심스럽게 바라볼 무수한 시선들을 우려했다. 2020년대는 달랐다. 어떤 시선들은 여전 하지만, 약간 시선을 바꾼 몸들이 그 약간의 시선에 힘을 받아 더 빨리 바뀌었고, 그렇게 바뀐 몸이 더 많은 시선을 급진적으로 바꾸고 있다. 자신에게 맡겨진 그 몸으로 책임을 다해 잘 추려는 사람들이 좋은 춤의 의미를 확장했고, 확장된 좋은 춤의 기준 속에서 더 잘 추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며, 그 사람들이 다시 좋은 춤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 시대의 가치관 을 재구성한다. 당당히 권리를 주장하고, 기꺼이 사랑하고 ,마음껏 춤추더라도 당신과 나의 삶이 파멸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존재가 되어 야 할 과제만이 우리 앞에 있다.

한계는 ‘정상성‘이라는 표준에 의해 상대적으로 구성 된다. 장애는 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상황에 있는것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사회적 반응에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몸에 대한 지수 씨의 사유는 그 몸이 놓여 있는 맥락과 조건을 새롭게 읽어내기 위한 재료가 된 다. 지수 씨의 연극에는 이런 모든 질문들이 깊이 스며 들어 있다.

그러나 당신이 보고 있는 장애배우들의 연기는, 이러 한 모든 고민과 반응, 그 역사적이거나 사회적인 맥락 들을 충분히 숙고하고, 최종적으로 선택한 수행의 방 식이다. 그들이 표현하고 전달하길 원하는 미학적 의 미가 거기에 있다. 웃는 것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드 러내는 것처럼 느껴져 꺼림칙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 고 웃지 않는 것은 장애연극인들의 예술적 실천을 인 정하지 않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 발생하는 무언가가웃음을 유발한다면 마음껏 웃어도 좋다. 혹시 그 웃음 뒤에 복잡한 마음이 남았다면, 극장 밖 세계로 돌아가 면서 그 마음을 기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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