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째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다. 근처에 산을 끼고 있는 큰 공원이 있고 집에서 한시간 반이면 데크깔린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낮은 산이 있다. 버스 정류장은 수풀로 우거진 작은 언덕앞에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바뀔 때마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풍경이 눈앞에 공짜로 펼쳐지고 있었는데 그저 좋다고 바라보기만 했던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
나 역시 자연의 무심하면서도 비범한 장면에 무한한 애정을 느끼는 사람이다. 산을 오르다 숲을 산책하는 꿩을 보았고 머리가 쪼개지도록 나무를 두드리는 딱따구리를 보았다. 아침이면 직박구리의 싸움소리에 잠을 깨기도 했고 출근길이면 내 눈앞을 가로지르는 물까치의 회푸름한 꼬리에 반하기도 하였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작은 벌레를 물고온 참새가 나름의 있는 힘을 다해 벌레를 내려치는 장면도 보았고 부러진 가지를 소중히 물고 가는 까치도 만났었다. 그 소중한 시간들을 기록했다면 내 앞에 그 좋은 장면이 쌓여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너무나도 아쉽다.
작가님은 귀엽다, 아름답다라는 말을 많이 써주었다. 이쁘다는 말은 아무 감정 없이도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귀엽다’라는 말에는 애정이 느껴지고 ‘아름답다’라는 말에는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매 순간 E성향의 ADHD답게 모든 사물을 살펴보며 귀여워하고 아름다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작가님의 치앙마이와 교토를 다녀온 일러스트 여행기도 무척 재미있었는데 사진없는 자연관찰일기 역시 작가님의 취향과 감정이 듬뿍 담겨있어 읽는 내내 행복했다. 이제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자연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돈이 들지 않았고
의외로 많은 시간이 들지도 않았다.2022년부터는 매일
자연관찰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기록을 해보니 자연이 매일 달라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봄은 생각보다 길었고 여름은 매일 뜨겁지 않았다. 가을은 예상보다 일찍 징조를 보였고, 겨울은 늘 얼어있지 않았다.
나를 둘러싼 자연은 작은 것이라도 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돌아와 본 것을 기록하면하루가 허망하게 지난 것 같지 않아 좋았다.
" 나는 지금 이 세상과 시간의 흐름을 놓치고 있지 않다"
이런 기분을 처음으로 들게 해준 자연관찰일기를 이젠 책으로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한때는 자연에 있는 동식물들의 이름을 내가 꼭 알아야 하나 생각한 적도 있다. 그들은 그냥 살아갈 뿐인데 인간이 인위로 붙인 이름이 아닌가? 그런데 이제 안다. 이름을 붙이고 이름을 아는 것 은 그것에 대해 알아가겠다는, 기록하고 관찰하겠다는 뜻이다. 그 래서 하찮은 풀 하나도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아내겠다는.
아직 이 나무의 이름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알아낼 것이다.
올해의 마지막 날에 새로운 나무를 또 만났다는 사실이 즐겁다.

난 언제나 자연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달이 언제 차오르고 언제 기우는지
발 밑의 풀들은 언지 돋아난 건지
왜 물닭은 잠수를 하는지 여전히 아는 게 하나도 없다.
근데 희한하네. 왜 그래서 더 좋지?
모르는게 너무 많다는 것. 알아갈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게 오히려 재미있다.
아마 평생을 자연관찰일기를 쓴대도 매번 모르는 게 있을 거고 신기한 것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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