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문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 / 책세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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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기전부터 이미 내 안에도 사람을 낳을 소질이 준비되어 있다니.
심지어 대량으로 태어나기 전부터 몸속에 ‘낳음‘을 지니고 있다니. 근데 이게 책에만 적혀 있는 일이 아니라 내 배 속에서실제로, 정말로, 지금, 일어나는 일이다. 태어나기 전의 장차태어날 수 있는 것이 태어나기 전부터 몸속에 있다니, 쥐어뜯고 싶다, 박박 찢어버리고 싶다. 대체 이거 뭔데.

이를테면 AID로 태어난 사람들은 진실을 듣지 못한 채속아 살아왔다는 사실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숨김없이 털어놓았더라면 어땠을까. 아이에게도 기증자의개인 정보에 접근할 권리가 보장된다면 이 기술에는 찬성인가,
어떤가. 자신의 출생을 명확히 모르는 사람은 비단 AID에 한하지 않고도 많은데, 그 경우와 어디가 어떻게 다른가

이 사람들은 어쩜 이리 경솔하고 제멋대로일까 싶어요. 진심으로요. 그러게 그렇게 될 줄 뻔히 보이잖아요?
그거 알면서도 자기들이 좋아서 저질러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그리고 속으로 동정한답니다. 앞으로 고생고생, 허리게 일하면서 몇십 년이나 애들 길러야 하잖아요. 아프고, 입시치르고, 반항기 겪고, 취업 때문에 쩔쩔매고, 본인 인생에서 간신히 다 정리했다 싶었는데 그 사람들 또 똑같은 고생을 하나부터 다시 하잖아요. 정말 별난 사람들이랄까 사서 고생이랄까.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딱히 결심했던 건 아니지만,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지금은 생각해요."

"여자가 더는 아이를 낳지 않고, 아니면 출산 같은 게 여자 몸과 분리되는 기술이 나오면, 남녀가 만나 가정이니 뭐니 꾸렸던 게 인류의 어느 시기에 단순한 ‘유행이었다‘ 하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 언젠가는?"

"태어나서 잘됐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자신들 같은 인생을살게 하고 싶어서요컨대 자기들 멋대로 시작한 도박에서 이기려고 부모나 의사들은 부탁도 받지 않은 생명을 만들어요. 때로는 작은 몸을 자르고, 꿰매고, 관을 넣어 기계에 연결하고, 많은 피를 흘리게 하죠. 많은 아이들이 아픔만 느끼다가 죽어요.
그러면 부모를 동정하죠. 세상에, 얼마나 상심했을까. 부모들은눈물을 훔치며 슬픔을 이겨내려 애쓰고, 그래도 태어나줘서 기뻤다고, 고마웠다고 말해요. 진심으로요. 뭐가 고맙다는 거죠?
누구한테 하는 말이죠?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저 고통 덩어리일 뿐이었던 그 아이는 태어났죠? 설마 부모에게 고맙다는 말을 시키려고? 선생님 실력은 굉장했다는 칭송을 듣게 하려고? 대체 무슨 권리로 그런 일을 해도 된다고 생각할까요? 고통만 느끼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아이를, 이런 세상에서 1초도못 버티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아이를, 날마다 죽음만 생각하며 살아갈지도 모르는 아이를, 어떻게 세상에 턱턱 내놓을 수있죠? 몰랐으니까? 그렇게 되기를 원한 게 아니었으니까? 설마자신이 도박에서 질 리는 없으니까? 인간은 원래 어리석은 존재니까? 이건, 대체 누구의 도박이죠? 뭘 걸고 하는 도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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