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경희
나혜석 / 메이크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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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의 입술은 간질간질하였다.
‘먹고 입고만 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알아야사람입니다. 당신처럼 영감, 아들 간에 첩이 넷이나 있는 것도 배우지 못한 까닭이고, 그것으로 속을 썩이는당신도 알지 못한 죄입니다. 그러니까 여편네가 시집가서 시앗(남편의 첩)을 보지 않도록 하는 것도 가르쳐야하고, 여편네를 두고 첩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르쳐야만 합니다‘ 하고 말하고 싶었다. 이외에 여러 가지예를 들어 설명도 하고 싶었다.

이러므로 경희가 좋은 것을 갖고 싶고 남보다 많이 갖고 싶을진대 경희의 힘으로 능히 할 만한 일은 행여나 털끝만 한 일이라도 남더러 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남에게 빼앗길 것이 아니다. 아아, 다행이다. 경희의 넓적다리에는 살이 쪘고 팔뚝은 굵다. 경희는 이 살이 다 빠져서 걸을 수가 없을 때까지 팔뚝의 힘이 없어 늘어질 때까지 할 일이 무한이다. 경희가 가질 물건도 무수하다. 그러므로 낮잠을 한 번 자고 나면 그 시간 자리가 완연히턱이 난다. 종일 일을 하고 나면 경희는 반드시 조금씩자라난다. 경희가 갖는 것은 하나씩 늘어간다. 경희는이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얻기 위하여 자라 갈 욕심으로 제 힘껏 일한다.

"나는 이것을 가지고 巴里(파리)로 갈련다. 살러 가지않고 죽으러."
가면서 나의 할 말은 이것이다.
"靑邱(청구) 氏(씨)여 반드시 後悔(후회) 있을 때 내 이름 한번 불러주소. 四男妹(사남매) 아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社會制度(사회제도)와 道德(도덕)과 法律(법률)과 因習(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過渡期(과도기)에 先覺者(선각자)로 그 運命(운명)의 줄에 犧牲(희생) 된 者(자)이였더니라. 後日(일) 外交(외교관)이 되어 巴里(파리)로 오거든 네 에미의 墓(묘)를 찾아 꽃 한 송이 꽂아다오."

펄펄 날던 저 제비
참혹한 사람의 손에
두 쪽지 두 다리
모두 상하였네.
다시 살아나려고
발버둥치고 허덕이다
끝끝내 못 이기고
그만 척, 늘어졌네.
그러나 모른다.
제비에게는
아직 따듯한 기운이 있고
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중천에 떠오를
活力(활력)과 勇氣(용기)와
忍耐(인내)와 努力(노력)이
다시 있을지
뉘 능(能)히 알리가 있으랴.

-舊稿(구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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