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음, 임진실 사진 / 돌베개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특성화고 학생에 대한 편견은 대개의 편견이 그러하듯잘 모름’에서 생겨나고, 편견은 ‘접촉 없음‘으로 강화된다.
어느 삼십대 남성은 나와 이야기를 하던 중 자신은 살면서특성화고 졸업생을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와마주보고 있던 나는 여상을 졸업했다. 그가 말하는 특성화고 졸업생이 바로 나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은 전부 대졸자이고 특히 글 쓰는 일에 종사하면 대학을 나왔으리라 간주한다. 꼭 그렇지는 않다. 그동안 거리에서 장애인을 못 봤다면 장애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만한 여건이 아니라서 그렇듯이,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자를 못 봤다면 그런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실을 말해도 들어주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듯, 특성화고 학생도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맥락에 따라자연스레 비가시화된다. 모든 청소년은 학교에 다니고 학생이란 곧 전부 수능을 치는 예비 수험생으로 여기는 식이다.

애들아, 너무 착해도 이 나라에서 살기 힘들다. 적당히 싸가지도부리고 개기기도 해야지 묵묵하게 일만 하면 호구로 보고 갈구기만 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때리거나 건드리면 너는 더 때려라.
이게 팩트다. 약한 모습 보이지 말고, 세상이 그래. 더 강해져라.

강석경 씨의 인터뷰 중 슬픔에 처한 사람과 관계 맺는 법에 대한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가장 큰 공부였다. "슬픔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슬픔의 일부"(론 마라스코·브라이언 셔프, 『슬픔의 위안』)라는 말 뜻이무엇인지 그는 긴 시간을 할애해 들려주었다. 자식을 잃고매일 돌아오는 하루를 살아갈 용기를 내기까지, 세끼 식사를 차리고 세상에 복귀하기까지, 사람들이 모여 너나없이자식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 앉아 있기까지 2년 넘는 시간이걸렸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자식을 잃은 슬픔을 보려 했다.
자식 얘기를 피했고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그건 배려가 아닌 배제였다. 그는 자기 앞에서 아무도 자식 얘기를 하지 말라 요구하지 않는다. 자식을 키우는 희로애락을 말하는 것처럼 자식을 그리워하는 희로애락도 공평하게 말할 수 있기를, 느닷없는 눈물도 대화의 일부로 예사롭게 받아주기를바랄 뿐이다. 기쁨을 말하듯이 슬픔도 심상하게 말하게 해달라는, 눈물도 일종의 말이라는 그의 요청은 이 슬픔의 시대에 공동체가 익혀야 할 삶의 기술이 아닐까. 기쁨을 나누는 일은 배우지 않아도 사는 데 무리가 없지만, 슬픔을 나누는 일은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강석경씨를 만나면서 알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