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얇고 가벼운 책을 읽으면서 배우고 싶은 내용이 너무도 많아 수시로 밑줄을 쳐가며 읽어버렸습다. 시작은 말장난같으나 읽다보면 말리는 느낌이다가 어느 새 그를 따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요즘 시대에 에피쿠로스적으로 살기에는 ‘루저’로 불리기 십상이지만 그 상태를 본인이 만족하기만 한다면야 아무 문제가 없을 테니까요.
나의 안정과 평화로운 상태는 결국 내 안에서 찾는 것이라는 단순한 정언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저는 또 인터넷쇼핑몰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되어 있겠지요.

젊은 시절에 철학 공부를 미루어서는 안 되며, 성숙한뒤에도 철학에 싫증을 내서는 안 되네. 왜냐하면 정신건강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너무 이르거나 늦은 경우는없기 때문이네.

그렇다면 에피쿠로스가 물리학이나 기상학에 관한 편지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주제들이 정신건강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의 공포와 불안은 흔히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데 기인하기 때문이다. 잘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못 이해하거나 실존하지 않는위협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공포와 불안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세계의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정신의 두려움과 어둠은 일광, 수시로 변하는 대낮의 햇살로 물리칠 수 없으며, 오직 자연의 외적 형태와내적 작용을 이해함으로써 떨쳐낼 수 있다.

그렇다면 에피쿠로스주의의 악명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쾌락이야말로 좋은 삶의 열쇠라는 에피쿠로스의 주장이 화근이었다. 쾌락은 좋은 것이며 고통은 나쁜 것이니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의 원인이자 목적이라고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피한다는 점에서는 원인이며 우리의 모든 행동이 궁극적으로 이르고자 하는 상태라는 점에서는 목적이다. 문제는우리가 쓸데없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곤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인생이란 매우 단순하며,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피하는 것이 전부인데 말이다.

따라서 에피쿠로스적 쾌락이란 탐식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리 많은 것 없이도 도달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상태를 목표로 하는 소박한 생활일 뿐이다.

그러면 이제 에피쿠로스의 분류에 따른 네 가지 쾌락의유형을 살펴보자. 먹는 행위와 같은 동적인 육체적 쾌락,
배고프지 않은 상태와 같은 정적인 육체적 쾌락, 친구들과의 즐거운 대화와 같은 동적인 정신적 쾌락,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상태와 같은 정적인 정신적 쾌락,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이 네 가지는 모두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유형, 즉 불안도 걱정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 정적인 정신적 쾌락이다. 말하자면 이는 배고프지 않은 상태의 정신적 등가물이라고 할수 있다. 에피쿠로스는 이 상태를 아타락시아라는 용어로표현했는데, 직역하면 ‘근심 없음‘ 이지만 대체로 ‘평정‘이라고 번역한다.

에피쿠로스는 육체적 고통을 견디는 데 유용한 또다른관점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고통은 대체로 두 종류로나눌 수 있다. 대체로 격렬한 고통은 빨리 끝나고 약하게지속되는 고통은 견딜 만하다. 고통이 빨리 끝나거나 견딜 만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고통에 흔히 따르는 정신적 불안, 예를 들어 내가 과연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덜 수 있다. 드물지만 고통이 격렬하면서도오래가는 경우라면, 결국 그 고통(혹은 그 원인) 때문에 죽게 될 테니 어쨌든 고통은 끝날 것이다. 별로 위로가 되는말은 아니지만, 에피쿠로스가 말하려는 요점은 육체적 고통을 너무 두려워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통을견디는 데 익숙해질 수 있으며, 극한의 고통을 오랫동안겪는 일은 드물다. 고통도 나름대로 견딜 만하며 정신적쾌락에 견주어보면 금세 하찮아 보이게 마련이다.

"만족하는 건 불가능해. 사람의 가치는 가진 게 많을수록 높아지거든." 이렇게 말하는 자에게 뭐라고 대답할수 있겠는가? 계속 비참하게 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는 비참한 삶을 즐기는 것이니까.

일단 에피쿠로스에서 시작해보자. 앞에서 살펴보았듯그의 핵심 사상은 쾌락이란 무조건 좋은 것이며 고통은무조건 나쁘다는 것이다. 쾌락과 고통 모두 감각을 통해이루어지는 체험이다. 하지만 죽음은 어떤가? 죽음은 감각의 부재다. 당연한 얘기지만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체험할 수 없다. 죽음이 감각의 부재라면 쾌락도 고통도 아니며, 따라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셈이다. 죽음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모든 감각의 부재일 뿐이라면 그것을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