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 연암 박지원이 가족과 벗에게 보낸 편지 참 우리 고전 6
박지원 지음, 박희병 옮김 / 돌베개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후에 보낸 쇠고기 장볶이는 잘 받아서 조석간에 반찬으로 하니? 왜한 번도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니? 무람없다, 무람없어. 난 그게 포첩(浦貼)이나 장조림 따위의 반찬보다 나은 것 같더라. 고추장은 내 손으로 담근 것이다. 맛이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 주면 앞으로도 계속 두 물건을 인편에 보낼지 말지 결정하겠다.

복날 이후 더위가 더욱 심한데 어찌 지내나? 오늘 아침 시원한 때를이용해 꼭 가서 볼까 했는데 해가 이미 중천에 걸렸구만, 저녁에 가면 밥먹을 곳이 없으니 일단 여기 그대로 앉아 있다가 내일 새벽 경우(景禹)*와함께 가겠네. 아침밥은 줄 수 있나? 이 때문에 편지하네. 이만 줄이네. 읽어봐 주게.

나는 별 탈 없이 늙고 있다. 아이 또한 잘 지낸다니 다행이다.

「오례통고』의 첫 책함(函)은 대략 점검해 보니 정말 좋은 책이더구나. 뇌아(兒)가 이 책을 얻자 춤을 출 듯이 기뻐했다고 하나 책을 싸 놓고서 펼쳐 보지 않는 건 어째서냐? 비록 한 번 섭렵하더라도 자세히 궁구하지 않는다면 수박 겉핥기나 후추 통째로 삼키기와 뭐가 다르겠니? 유생(柳生)의 무리에게 자랑할 건 없으니 유(柳)는 깊은 이치를 알려고 하는사람이 아니요 진중한 기상이 적으니 단지 책을 빌어 박식함을 자랑하길좋아할 뿐이다. 모름지기 한중락(韓會樂)*의 무리와 참구(參究)해 가며 읽고, 글 뜻이 잘 통하지 않는 곳은 네 외삼촌께 여쭤봐 실효를 다하도록 함이 옳다.

일상 속의 연암은 대단히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어떤 때는 아버지로서 근엄하고 자상한가 하면 어떤 때는 자식에게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는 그런 약한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소심한면모를 보이는가 하면 어떤 때는 호방한 성격을 보여주기도 하며, 목민관으로서 백성을 걱정하는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사익을 위해 공(公)을 훼손할 때도 없지 않고, 어떤 때는 무료한 나머지 기보(基譜)나 보며 소일하는그런 헐렁한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가 하면 어떤 때는 고상하고단아하기 그지없는 선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엄숙한가하면 어떤 때는 유머러스하다.
연암이 보여주는 이 모든 얼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대를 벗어날정도의 큰 흠이나 위선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연암은 우리를 ‘배신‘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