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제껏 겪은 일들은 수많은 방식으로 내 몸에남겨져 있다. 내가 겪은 일에서 살아남긴 했으나 그것은 이야기의 전부라 할 수 없다. 세월이 흐르며 나는 살아남는다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고 ‘생존자‘라고주장할 수도 있게 되었으나 누가 날 여전히 피해자라 해도 신경 쓰지는 않는다. 나는 성폭행을 당한순간 피해자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여러 이름을 갖고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피해자이고 그 사실에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현재 나는생존자‘ 보다는 피해자를 선호한다. 일어난 일의 엄중함을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 희망의 여정을 걸어와승리를 쟁취한 척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무사한 척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 일이 일어난 채로 여기까지 걸어왔고 그 일을 잊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거나내게 흉터가 남지 않은 척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도 않다.
이런 용어들 의학 용어, 가볍게 놀리는 말, 속어,
모욕적 언어 은 모두 뚱뚱한 사람들의 몸이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의 몸은 너무나 문제가 심각하여 특별한용어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몸을 그렇게 무자비하고 공공연하게 해부하고, 정의하고, 그리고 폄하하는 데 이렇게 열심이라니 다 대단들 하다.
내가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행복이 내가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고 보고 그렇게 느낀다.
하지만.
나는 그 전의 나, 두려움에 가득한 과거의 그 소녀가 아니다. 좋은 사람들이 내 인생에 들어오는 것을허락했고 내 목소리를 찾았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덜 신경 쓰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내 행복의 기준은 내 몸무게가 아니라 내 몸에 더 편안해하는 감정임을 배우는 중이다. 여성이 삶을 사는 방식과 몸을 다루는 방식을 너무나 독단적으로 규정하려는 이 악독한 문화적 관습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나 자신만이 아니라 더욱 알려져야 할 사람들의 삶을 위해 목소리를내고 있다. 나는 열심히 일했고 내가 감히 가능하리라 생각지도 못한 직업적 성공을 누리고 있다.
적어도 나의 일부는 나의 최악의 날들을 지나왔다는 것을 알고 나 자체를 바꾸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내가 지은 이 몸이라는 요새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벽의 일부는 파괴해야만 하고 이 파괴가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상관없이, 오직나만을 위해서 벽을 무너뜨려야 할 필요가 있다. 이작업을 무너졌던 나를 되돌리는 작업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