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붕대 감기 : 소설, 향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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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평가하지 마, 절대로, 머릿결이 많이상하셨네요, 피곤해 보이시네요, 여기 목뒤에 뭐가나셨어요, 피부가 안 좋으시네요, 이런 말 절대 하지 마. 손님들이 자기 상태를 모를 것 같니? 다 아는데 좀 나아지게 하려고,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려고 미용실에 오는 거잖아. 그런데 머리하러 와서까지 그런 말을 들어야겠니? 그렇게 무신경할거면 이 일 하지 마, 아예.

- 그래서 부끄러웠니? 소속될 수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마음이 반반이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너는 그렇게 심한 말을 하진 않았네.
그, 도덕 코르셋이라는 것 때문에?
- 지금도 부끄러워?
- 모르겠어요.
그냥 아무래도 지금은 기분이 이상하네요, 지현은 겨우 중얼거렸다.
- 어딘가에 속하기 위해서 일부러 악의를 품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어.

운동을 해. 하루에 30분씩은 꼭 햇빛을 보고, 윤슬은 그렇게 말하려다 말았다. 진경은 그렇게 하지않을 테니까. 이런 단순한 정답은 말해도 말해도안 들릴 테니까. 윤슬 역시, 지금 진경과 마찬가지로 무슨 말도 와닿지 않을 만큼 힘겹던 시기가 있었다. 마흔넷, 마흔다섯, 지금 진경이 지나가고 있는 그 나이가 딱 그랬다.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싫었다. 자신도 싫었거니와 그 싫은 자신을 조금이라도 견디며 살려면 영양제를 먹고 운동을 하고 밝고좋은 것들을 챙기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이

너는 젊었을 때 나이든 사람들 보기 좋았니? 나는 아냐, 싫었어. 스무살 때는 사람이 서른 살 넘어도 살아 있다는 게 이상하더라. 서른 살 때는 마흔 살인 사람들은 대체어떻게 사는 걸까 생각했어. 그 칙칙함, 꾸물꾸물한 울분을 왜 우리가 떠받쳐줘야 하는 건가 싶었지. 나이 든 선배들이 똑바르고 훌륭하면 그렇지못한 내가 미워서 그 사람들을 질투했고, 서투르면나잇값도 못 하고 저렇게 서툴다고 흉을 봤어. 그냥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들이 싫었어.
지금 젊은 사람들은 안 그렇겠니? 나는 더 이상 작은 글씨도 못 보겠고, 어린애들이 하는 말도 못 알아듣겠어. 깨달았으면 알아서 빠져줘야지. 억지를쓰면서까지 자리를 지키긴 싫다, 효령아.

너는 가끔 사람들의 눈앞에서 문을 꽝꽝 소리 나게 닫아버리잖아.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 사람들이따르지 않기 때문에 말이야. 그럴 때마다 말하고싶었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좀 기다려줄 순없는 거니? 모두가 애써서 살고 있잖아. 너와 똑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변하지 못한다고 해서그 사람들의 삶이 전부 다 잘못된 거야? 너는 그사람들처럼, 나처럼 될까 봐 두려운 거지. 왜 걱정하는 거니, 너는 자유롭고, 우리처럼 되지 않을 텐데. 너는 너의 삶을 잘 살 거고 나는 너의 삶을 응원할 거고 우린 그저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인데.
참 이상해. 다른 사람이었으면 벌써 관계가 끝났을 텐데, 이상하게 세연이 너한테는 모질게 대하지 못하겠더라. 이해하고 싶었어, 너의 그 단호함을. 너의 편협함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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