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이오. 죽고 죽이고, 뺏고 빼앗기는 투쟁만 있을 뿐 신은 애초에 인간의 일에 관심도 없고 있다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서로 욕하고 싸우고 굶고 병들고 죽어가며 발버둥치는인간들이오. 무언가가 바뀐다면 그것은 신의 뜻이 아니라인간의 의지, 개개인의 욕망 때문이지. 그렇게 본다면 신의말이라는 토라도 모호하기 짝이 없고 해석자의 필요에 따 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 위안을 줄 수 있는 건 믿음이 아닐까요? 인간이 선하며 세상이 더 나아진다는 믿음말입니다. 유일신 여호와는 그런 인간의 의지가 집대성된인식체계죠.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믿음 속에 실재하며 그들의 행위와 삶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그는 목숨을 부지했을 뿐 아니라 승자가 되었다.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그의 내부에서 뭔가가 툭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동시에 그라는 존재가 와르르 무너졌고 그가 믿던 세계가 완전히, 영원히 붕괴했다. 그는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같은 용모로 살겠지만 그의 삶은달라질 것이다. 평생 거짓말이 이어질 것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순간조차 남들을 속이는 삶이 될 것이다. 만약 그가 부자가 된다면 살인자인 부자일 것이고 재산 전부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어도 살인자인 자선가일 것이다.
물론 그는 이전에도 죄를 지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욕설을 내뱉었고 사소한 언쟁에도 칼을 뽑았다. 그밖에도 그는 자신이 기억조차하지 못하는 숱한 죄를 지었다. 그것들은 속죄양을 바치고기도를 올리면 사함 받을 법한 죄였다.
그러나 살인은 달랐다. 이전의 어떤 죄와도 달랐고 그것을 모두 합친 것과도 달랐다. 그는 이전과 다른 인간, 오염된 인간, 다시 깨끗해질 수 없는 인간이 되었다. 다시는 사람을 죽이기 이전의 자신, 죄를 짓기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 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