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개를 보면 슬프다. 포인핸드 같은 곳에서 입 양 가족을 기다리는 개들의 불안하고 처량한 눈빛을 볼 때도 당연히 그렇지만, 가족에게 사랑받는 행복한 개조 차도 잠깐 가게 앞에 묶여 혼자 남겨지면 출입문만 바라 보며 시선을 못 떼는데, 나는 그런 개의 뒤통수를 볼 때 도 슬퍼진다. 개는 왜 사람 따위를 이토록 사랑하는 걸 까. 개의 중심은 제 안에 있지 않고 자기가 바라보는 사람 안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We don‘t deserve dogs ‘라는 말처럼, 많은 경우 인간들은 개의 맹목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인간과동물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한쪽이 한쪽에게 일방적인 고통을 가하는 것을 정당화해주지 는 않는다. 이곳이 사자와 사슴이 같이 풀을 뜯는 에덴 동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서는 결국 다른 생명을 취해야 하는 원리를 부정하는 것 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 정도까지 잔인해질 이유는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행동이, 지식이, 방법이, 자세가, 애정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는 간단한 사실을 나는 몰랐다. 온몸에 개와 고양이의 털과 냄새가 배어 떨어지지 않아도, 생전 검은 옷 같은 거 마음대로 입지 못해도, 심한 털 알레르기에 항히스타민제를 먹어가며 고생을 해도, 온 팔과 손에 아이들이 할퀴고 문 자국이 생겨 지워지지 않아도, 아이 탓은절대 하지 않으며 그 모든 일들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들이 길러야 하는 것이 개, 고양이이며 그 마음이 바로사랑인 것을. 그 사람들은 그런 자세로 애들을 길러야한다는 걸 어디서 배우기라도 했을까? 당연히 아닐 거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좋아하면 알아갈 수밖에 없는 게 사랑이니까.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저 아끼고 사랑하니까. 사랑하면 관심을 갖게 되고 관심을 기울이다보면 알게 되니까. 그러다보면 그 입장에 서게 되고 무엇이 그를 위하는 것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방법이든 요령이는 태도는 다 터득하게되니까. 그런 거니까.
아이들을 기르지 말자고.
‘사지 말고 입양하지’뭐 그런 것조차 됐으니까
그냥 아예 기르지 말자고.
그게 그애들과 우리 자신을 위한 최선이라고,
너무 극단적이고도 단순한 발상 같지만 생각해보자. 당신은 혼자 사는 회사원이다. 집에 머무는 시간은 하루아홉 시간 남짓. 당신이 외로움의 해소를 위해 들인 아이는 당신이 없는 그 나머지 시간 동안 홀로 좁고 답답하고 무서운 공간을 지켜야 한다. 답답해진 아이가 짖으 니 옆집에선 항의가 들어온다. 당신이 있을 때 아이는짖지 않으니 당신 역시 ‘우리 애는 안 짖는다고 이상한말을 하는 견주들의 대열에 합류한다. 그러다 정해진 수대로 아이가 외로우니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주자며나도 제대로 책임 못 지면서 또하나를 들여 둘을 만들 고, 그 둘 사이에서 또 새- 사이에서 또 새끼를 받아 분양을 하고, 자기는 그러지 못했으면서 사랑으로 우리 애를 길러달라고 이체이탈도 해보고…… 그렇게 생명의 수는 오늘도 늘어간다. 우리 그러지 말자. 할 수 없이 들였으면 하나로 만족하고 어쩌다 두 마리가 되었으면 그래도 새끼 같은 건 보지 말고 어쩔 수 없이 보았으면 분양한 후 제발 다시는기르지 말자. 제발 털 달린 생명을 이 땅에 더이상 태어나게 하지 말자. 자신의 외로움은 알아서 감당하고 신혼의 재미를 위해 강아지 들이지 말고, 대형견 한번 길러보고 싶은 욕망에 열여덟 평 아파트 살면서 말라뮤트 같은 애 들여가지고 무슨 에어컨 틀어주느라 전기세가 얼마가 나오느니 하며 되도 않는 무용담 같은 것 늘어놓지말고, 개, 고양이에 대한 꿈과 로망 같은 게 있다면 웬만하면 버리자. 생명이 누군가의 꿈이나 로망이 될 수는없다. 그렇지 않은가? 아이를 들이고 나서야 털 알레르기가 있는 줄 몰랐다는 무책임한 말 이제 그만하고, 그래서 고생고생을 하다 눈물 콧물 짜며 파양을 했으면 더는 기르지 말아야 하는데 이번에는 알레르기를 거의 유 발하지 않는 종이 있다며 또다른 애를 들였다가 또 문제가 생기고…… 제발 이제 우리 이런 일들 좀 그만하자. 마음은 안 그런데 방법을 몰라서, 지식과 정보는 쌓여도개념이 없어서, 동물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당신이 동물 기르는 스킬을 업데이트해가는 동안 그 과정에서 실험과 연습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고통을 헤아린다면 이제 그만 기르자.
기르지 말고 돕자.
아이들과 우리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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