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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숲의 딱따구리
황보연 지음, 김재환 그림 / 길벗어린이(천둥거인)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자유롭게 숲속을 날으며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었던게 언제였던가?
가장 최근에 봤던 새가 아파트마당을 종종거리던 까치였다.
어린 시절이맘때면 논밭에 허수아비가 서 있고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습관처럼 논으로 나가 참새를 쫓았다.
봄이면 강남 갔던 제비가 잊지 않고 찾아와 처마 밑으로 못자리 흙과 짚을 물고와 둥지를 틀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완성되지 않은 제비집 밑에 널따란 널빤지를 대주셨다.
보리밭을 지나다보면 인기척에 놀란 꿩이나 종달새가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기도 했다.
동구 밖 높다란 느티나무에서도 고샅마다 서 있던 나지막한 감나무에서도 새집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새집이 보이면 아이들은 그 나무에 어김없이 올라가 새알을 찾아내기도 하고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끼 새를 잡아와 벌레를 잡아주며 키우기도 했었다.
지금에 우리 아이들에게 새소리는 TV의 다큐멘터리 프로나 동물원에 찾아가야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소리가 돼버렸다.
하지만 그때는 아침이면 마당을 종종거리며 떨어진 곡식알을 쪼던 참새소리에 잠이 깨어 새소리 가득한 산으로 들로 쏘다니다가 밤이면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뒷산에서 우는 소쩍새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곤 했다.
너무 흔하게 항상 가까이에서 나던 익숙한 소리였던 새소리가 이제는 기억 저편의 추억을 끄집어내야지만 생각나는 아련한 소리가 돼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우리 숲의 딱따구리>를 읽기 전에 나는 우리 주위에서 사라져버린 새들을 잊고 있었다.
시골에도 더 이상 허수아비나 새 쫒는 아이들을 볼 수 없고 그전에 귀한 대접을 받았던 까치와 비둘기만이 이제는 사람들에게 골칫거리가 되어 우리 곁에 머물 뿐이다.
새를 좋아하는 아빠와 아들이 내가 잊고 지냈던 그 숲으로 우리를 안내해준다.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준 딱따구리의 생태와 사실적인 그림도 눈을 사로잡지만 이 책의 최고의 매력은 글을 읽는 주체가 되는 어린이의 눈을 통한 관찰 이야기라는 것이다.
어른의 길고 지루한 설명을 듣는 듯한 도감류에서 느꼈던 지루하고 따분한 느낌이 아닌 내 친구가 써 놓은 재미난 관찰일지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자상한 아빠와 단 둘이 산을 간다는 것만으로도 아들에게는 가슴 설레는 일인데 새를 좋아하는 부자가 귀한 딱따구리를 만나 탐구에 들어간다면 그 기쁨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간다.
아이의 관찰일지는 2월 14일부터 시작된다.
처음 만난 큰오색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와 쇠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각기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고 나무속에 있는 벌레를 잡아먹는 딱따구리들을 보게 된다.
봄이 시작될 즈음에는 딱따구리 구멍에 살기 시작하는 동고비의 집단장하는 모습과 딱따구리를 만날 수 있는 방법과 새들마다 나는 법이 각기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된다.
봄이 깊어지면 큰오색딱따구리 부부는 번갈아가며 단단한 나무를 하루에 8000번에서 1만2000번씩 2주에 걸쳐 쪼아 둥지를 만들고 그 안에 달걀보다 더 동그랗고 하얀 알을 낳는 다.
여름 내내 벌레를 잡아와 새끼를 키우던 딱따구리부부는 가을과 함께 장성한 새끼들을 떠나보낸다.
자식을 키우는 어미 된 입장에서 제 새끼를 위해 부부가 쉴 새 없이 벌레를 잡아주고 엄마 없이 새끼를 키우는 청딱따구리를 보며 가슴이 찡해 지는 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새만도 못한 일을 저지르는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오는 가슴 아픔인가보다.
내가 읽는 책은 가슴 절절한 감동을 느끼면 최고의 책이라고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내 아이가 읽는 책에선 아이가 뭔가를 배웠으면 하는 마음은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창작동화가 아닌 자연이나 과학 서적이라면 특히나 그 마음이 더 할 것이다.
아이가 안 먹는 재료를 살짝 넣어 만든 반찬을 맛있게 먹듯 아이가 책을 읽으며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새로운 사실을 배워간다면 그 책이 부모가 꼽는 최고의 책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후한 점수를 줄만하다.
아이의 눈길을 따라간 숲에서는 딱따구리뿐만이 아닌 숲에 사는 여러 새들을 만날 수 있다.
즐겨먹는 먹이마다 다르게 생긴 새들의 부리이야기라든지 서식지별로 다른 발가락 모양도 흥미롭다.
흔히 벌레 잡는 딱따구리를 숲의 의사라고 하는 데 가을이 되면 벌레뿐만이 아니라 열매와 씨앗까지 먹는 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된다.
아이가 본 숲은 딱따구리뿐만이 아닌 살아있는 모든 생물의 천국이다.
쇠딱따구리가 밤송이를 쪼는 모습을 보며 따갑지 않을 까 염려하고 딱따구리 둥지를 차지한 동고비를 보고도 얄밉다는 생각보다는 나무를 잘 쪼는 딱따구리가 양보해주기를 바라는 아이의 천진스러운 눈길도 볼 수 있다.
아이와 나란히 앉아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소리를 원 없이 듣고 자란 엄마는 아이와 함께 새의 생태를 읽으며 추억에 젖어드는 데 새 소리를 듣지 못하고 새의 생태만을 아는 우리 아이는 훗날 제 아이와 이 책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자유롭게 날개 짓하며 마음껏 노래하던 새가 아닌 그림책에 머물러 있는 새를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어쩜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서 빼앗은 것은 새소리만이 아닌 먼 훗날의 추억까지도 없애고 있는 게 아니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 온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 ‘자연은 보호하자’는 말이 오늘은 왠지 내 아이의 소중한 추억을 지켜주자는 구호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