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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응노 - 붓으로 평화를 그리다 ㅣ 예술가 이야기 2
김학량 지음 / 나무숲 / 2005년 8월
평점 :
나에게 <이응노>란 이름은 낯설다.
그분의 이름이 낯 설은 거야 작가와 그 작가의 작품을 매치시켜 알아볼 만큼 미술에 조회가 깊지 않는 나이기에 뭐 특별한 일도 아니지만 미술학도였던 이 글의 작가마저도 이응노란 분을 그분이 돌아가신 해에야 알았다니 의아하기까지 했다.
외국에서는 그분의 그림에 대단한 찬사를 보냈고 또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데 반해 정작 자신의 조국에서는 버림받은 예술가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분의 일생을 읽으며 알게 되었고 읽는 내내 그 시대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오는 듯 했다.
전형적인 위인전을 읽고 자란 세대인 덕에 위인적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운에 싸여 태어나고 자라면서도 특별한 행동을 한다는 이야기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이응노>는 특별할 것 없는 충청도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본격적인 그림 공부는 열아홉 살이 되던 해 <김규진>의 제자가 되어 전통 문인화와 서예를 두루 익히게 된다.
스승의 집을 나와 ‘간판점 개척사’를 열고 더욱 그림에 정진하게 된다.
스물여덟 살이 되던 해 우연히 비바람이 몰아치는 대무 숲을 보고 실물이 아닌 머릿속에서 꾸민 그림을 그려온 자신을 발견하고 진정으로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관찰하여 보고 느낀 것을 그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그린 대나무 그림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상을 받게 되고 화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은 <이응노>는 서른이 넘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화와 서양화를 배운다.
해방이 되고 전쟁이 일어나는 중에도 그는 끊임없이 작품 활동하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자유롭게 풀어 그린 ‘반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의 나이 55세에 프랑스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그 곳에서 그는 가난이라는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고 쓰레기통을 뒤져 구한 신문과 잡지로 만든 작품으로 콜라주전을 연다.
그림밖에 모르던 그에게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리게 되고 1년 8개월에 걸친 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동안 그는 감옥에서 구할 수 있는 밥알에 헌 신문지를 개어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 그에게 조국은 다시 한번 철저하게 그에게 등을 돌렸고 빨갱이, 간첩화가로 낙인이 찍히고 만다.
먼 타국에서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들은 그는 그의 작품을 통해 자유와 평화를 쉼 없이 그린다.
그는 마지막까지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작품만이 조국에 돌아와 성대한 전시회가 열리던 그날 파리의 작업실에서 향년 86세로 세상을 떠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거의 모든 경우에 해당되겠지만 나에게 있어 특히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절대적인 명언이다.
만약 이응노라는 작가를 알지 못하고 <군상>을 봤다면 단순한 형태의 사람들의 무리인줄 알았을 것이다.
치열한 80년 광주를 함께 보내진 않았지만 광주의 그날의 일이 아직까지도 5월이면 가슴 아픈 현실인 지금 그림 속에 수많은 군상들이 단순한 사람들이 모임이 아닌 함께 어울려 평화롭게 하나 되는 세상을 염원하는 모습임을 글을 읽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흑인인지 백인인지, 뚱뚱한지 홀쭉한지, 키가 큰지 작은지, 건강한사람인지 약한 사람인지, 돈 많은 사람인지 가난한 사람인지, 회사원인지 노동자인지.....>알 수 없는 군상들 속에서 서로를 위하고 감싸고 서로 존중하는 사랑하는 사회를 꿈꾸는 노화가의 간절한 바람 또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일제시대와 6.25를 겪고 억울한 옥살이에 만신창이가 될 만도 한데 그림을 시작하고는 평생을 붓을 놓지 않고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강인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시골에서 가난한 농부에 자식으로 자라며 가장 아쉬웠던 건 예술에 대한 목마름이었다.
사실 그 목마름도 그 당시의 절절한 목마름이 아닌 어른이 된 후에 느끼는 내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을 이기기 위한 억지 목마름이겠지만 그때 그림이라고는 미술책에서 보는 빛바랜 명화들이 전부였고 내가 제대로 된 화집을 보게 된 것도 성인이 되어 대처로 나 온 뒤였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하는 까만 건 글자고 하얀 건 종이다라는 말처럼 나에게 그림은 인물화나 풍경화 같은 사실화가 아니고서는 나도 그릴 수 있는 낙서(?)쯤으로 생각하는 무식함을 과시했었다.
그래서인지 내 자식만은 예술을 제대로 느끼며 그 안에서 평안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직은 시작인 우리 아이의 미술이야기에 중심을 차지하게 된 <고암 이응노>선생의 이야기는 글을 쓴 작가의 시점에서 뿐만이 아니라 이응노 선생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구성 또한 신선한 재미를 선사해 준다.
미술이 어렵고 우리 일상과 동떨어진 게 결코 아니다라는 것을 그분이 출감하면서 했던 말에서 찾아본다.
<화가는 그저 벽에 걸어 놓고 보기 좋을 그림만 그릴 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에 어떤 모순이 있는가를 알아야 되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하지.>
우리의 전통 그림을 현대화하고 세계화하는 일에 힘쓰시고도 이념이라는 족쇄 때문에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그가 이제는 그가 꿈에도 그렸을 고국에서 그의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