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991년 [김부남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사건이 있었다.

9살 어린 나이에 이웃집 아저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여자가 20년이 지나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를 살해했던 사건은 그 당시 세상을 들끓게 했다.

그때는 <성폭력>이라는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던 시절이라 피해여성들은 운 나쁜 여자거나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성들이라는  생각들이 팽배했던 시기였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라는 말에 대중들은 경악했고 그 사건을 통해 어린이 성폭력이 피해자의 일생을 얼마나 깊은 수렁으로 빠뜨릴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사실 요즘은 모든 사람들이 성범죄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으로부터 부지불식간에 당하는 성폭행, 아니면 평소에 교류가 있던 소이 친한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지속적인 성폭력이 있다.

어떤 성폭력이  피해자에게 더 깊은 상처를 입히는 지는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평상시 믿고 따르던 사람으로부터 받은 성폭력은 그 믿음만큼이나 깊은 상처를 낼 것이다.

특히나 어린 시절 믿고 따르던 주변사람들로부터 입은 상처의 깊이는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가늠할 수조차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성범죄지만 아직까지도 입에 올리기를 꺼려하는 현실에서 “성장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이 책은 성범죄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어린 시절 유치원 원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같은 이름의 두 유진은 사건을 어떻게 대처하는 가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정해지는 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큰 유진은 사건 당시의 기억을 평소보다 더 많이 안아주고 배려해주는 부모 덕분에 자신이 가장 사랑받았던 시기로 기억하는 반면 작은 유진은 목욕타월로 자신을 몸을 거칠게 미는 엄마와 우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절규하는 엄마의 모습만을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었다.

큰 유진의 의해 자신이 잊고 있었던 기억을 찾아낸 작은 유진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찾아내고 방황하게 된다.

다행인 건 함께 아픔을 경험했던 큰 유진과의 여행을 통해 자신들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찾아온 엄마와의 여행을 통해 새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는 중학교 2학년이 된 두 소녀의 입을 통해 어둡게도 밝게도 진행된다.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이의 입을 통해 어린시절에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부모를 둔 큰 유진과 주위 어른들에게 깨진 그릇이라는 말과 그 일을 입에 올리면 너 죽고 나죽는 다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자란 작은 유진은 꿈 많고 밝기만 한 시절을 아픔과 문득 문득 느끼는 절망감으로 보낸다.

어찌 그 절망의 상처가 아이만이 짊어져야할 상처겠는가?

현실에서의 부모는 큰 유진의 엄마처럼 담대하게 아이의 상처를 바라보며 어루만져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모두에게 거는 주문처럼 “아무 일도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돌아서서는 피눈물을 쏟으며 작은 유진의 엄마가 되어 딸이 가져가야할 상처를 기억에서 도려내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피해자를 도울 수는 있었지만 정작 내 아들의 여자친구가 될 때는 “그런 일을 당한 애“라는 낙인과 함께 문제가 예고된 애쯤으로 취급하는 건우엄마의 이중적인 행동에도 마냥 야유를 보낼 수만은 없었다.


책 속의 두 아이의 모습을 보며 어른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의 작은 가닥이 잡히는 듯했다.

특히 작은 유진의 외할머니가 손녀에게 해 주었던 말은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니가 그 일을 기억 못 해서, 느이 식구들을 영영 그러길 바랬지만 나는 내내 걱정이었다. 늙어서 노망난 것도 아닌데 파릇파릇하니 자라는 것이 지가 겪은 일을 기억 못해서는 안 된다구 생각했단다. 다 알구, 그러구선 이겨내야지. 나무의 옹이가 뭐더냐? 몸둥이에 난 생채기가 아문 흉터여. 그런 옹이를 가슴에 안구 사는 한이 있어두 다 기억해야 한다구 생각했단다.”

하물며 우리 몸에 난 상처도 꽁꽁 싸매어 덧나게 하는 것보다는 조금 아프고 쓰리더라도 바람이 잘 들게 하고 약도 말라야 낫는 것을 마음에 입은 상처 또한 덮어두고 묻어두기보다는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는 진리를 일깨워주시는 것 같았다.


결혼해서 아들 둘을 키우면서 나는 언제나 성폭력의 문제에서는 방관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밀양 여중생 성폭력 사건>을 보며 내 자신 더 이상 성범죄에 안심할 수 없는 현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고 어느 순간 내 아이들이 자신의 일생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에 일생에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일었다.

이제는 개인의 일이 아닌 사회구성원 모두의 일이 되어 버린 성폭력이라는 조금은 껄끄러운 문제를 햇살 밝은 곳으로 끄집어내어 우리 모두의 힘으로 그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하고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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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10-25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두빛나무님, 축하드려요..! 좋은서평 이벤트 2등이네요..^^

울보 2005-10-26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두빛나무님 서평읽고 참좋았는데
축하드려요,,

초록콩 2005-10-27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울보님...축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