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 미친 반전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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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과 통신이 지금처럼 발달된 시대에 가장 쓰기 어려운 분야의 추리소설이 ‘클로즈드서클’을 이용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클로즈드서클’이란 외부와 단절된 고립된 장소를 뜻하는 용어로 “방주”야 말로 완벽한 ‘클로즈드서클’을 실현한 소설이다.

대학 동아리 친구 여섯명과 나(슈이치)의 사촌형 쇼타로는 친구 유야가 우연히 발견한 지하 건축물을 찾아 나선다.
지하 건축물을 찾았을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하룻밤 그 곳에서 묵을 수 밖에 없게 된다.
3층으로 된 방주 형태의 건물은 여러 개의 방과 편의시설을 갖춘 오랜 된 건물로 그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특이한 형태다.

전파가 잡히지 않는 지하라 전화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던 친구들은 길을 잃은 가족을 방주로 데려오게 되고 모두 10명이 그 곳에 머물게 된다.
지하 3층은 이미 수몰된 상태라 각자 머물고 싶은 1층의 방에 자리를 깔지만 새벽녘에 큰 진동의 지진으로 놀라 잠을 깨게 된다.
지진으로 커다란 바위가 하나뿐인 입구를 막게 되고 물은 점점 차오르고 그들은 완벽한 밀실이 된 방주에 갇히게 된다.

전화도 사용할 수 없고 외부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은 출입구와 비상구를 비추는 오래된 cctv뿐이다.
그들이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입구를 막고 있는 바위를 떨어뜨리는 닻감개를 돌리는 방법뿐이지만 닻감개를 돌리는 한 명은 그 곳에 남아야 한다.
모두를 살리기 위해 한 명은 희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들은 범인을 찾아 범인에게 닻감개를 올리게 할 계획을 세운다.

시시각각 차오르는 물과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는 방주 안은 공포와 불신으로 가득하다.
‘클로즈드서클물’이 성공하려면 등장인물중 돌출행동을 하는 이가 등장하고 살인이 일어나는 중에도 그들은 절대 한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각자의 공간을 고수하지만 그들의 행동이 억지스럽지 않아야 한다.
‘방주’ 역시 그 공식을 적용하고 있지만 일견 이해할 수 있는 행동들이라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진행된다.

출판사의 “스포 절대 금지!” 문구가 어떤 의미인지는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이해하게 된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나 여러 번 썼다 지우게 된다.
‘클로즈드서클’물에 등장하는 많은 클리셰를 만날 수 있지만 뻔하지 않은 전개와 뒷통수를 때리는 마지막 결말은 미친 반전을 선사한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작가가 1993년 생, 젊은 작가라는 사실이다.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더더욱 기대된다.


🎁블루홀식스 출판사의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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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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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작품이 번역 소개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진짜 신작을 만나는 게 쉽지않은데 ‘희망의 끈’은 재출간되거나 예전에 출간된 작품을 번역한 것이 아닌 진짜 최신작이다.
그것도 10권으로 완결된 줄 알았던 가가형사 시리즈의 가가 형사가 다시 등장하는 이야기다.
가가 형사의 사촌 동생인 마쓰미야 형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되지만 가가 형사는 번뜩이는 통찰력으로 적재적소에 등장해 사건해결에 도움을 준다.

카페 여주인 하나즈카 야요이가 살해되고 경찰은 주변인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이혼 한 지 10년이 지난 전 남편 와타누키 테츠히코와 부인과는 사별 후 홀로 딸을 키우고 있는 단골 손님 시오미 유키노부가 용의 선상에 오르게 된다.

전 남편은 이미 사실혼 관계에 있는 여자와 살고 있고 이혼 후 10년 만에 야요이가 먼저 연락을 해 와 살해되기 얼마 전에 만났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단골인 시오미는 지진으로 남매를 잃고 어렵게 얻은 딸과 살고 있지만 아내가 병으로 죽고 나서는 딸과 데면데면 지내고 있다.

소설은 카페 여주인 살인 사건과 마쓰미야 형사의 개인사가 함께 등장한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 손에 키워진 미쓰미야에게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과 자신에게 이복 누나가 있다는 사실이 전해진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은 엄마와 이복 누나가 전해주는 유언장까지 마쓰미야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작가의 소설을 읽어온 독자라면 살인 사건의 범인 잡기보다 그 이면의 사연에 집중된 이야기를 많이 만나봤을 것이다.
‘희망의 끈’ 역시 범인의 존재보다 그 뒤에 사연이 더 가슴을 울린다.
불임과 난임 그리고 임신중단까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당사자인 여성들의 고통을 작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나저나 죽는 순간이 다가오자 유언장으로 모든 죄를 스스로 사하려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이또한 작가가 꿈꾸는 로망이 아닌가 싶어 뒷맛이 쓰다.
새로운 마쓰미야 시리즈로 계속될지 아님 한 권으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읽은 작가 특유의 가족 이야기 더하기 살인 사건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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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피 페이지터너스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빛소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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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는 온 세상을 여행하던 남자 실비오는 유산을 탕진하고 이제는 늙고 가난한 홀아비로 고향에 돌아와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사촌인 엘렌 부부와 그의 가족들은 큰딸인 콜레트의 결혼을 알리기 위해 실비오를 찾아오고 완벽한 결혼 생활을 하는 부모를 본보기로 삼으며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결혼 후 자식까지 낳고 잘 사는가 싶던 콜레트의 남편이 익숙한 다리에서 떨어져 익사하게 되고 감춰 왔던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페이지터너라는 시리즈에 걸맞게 재미있다.

불행한 노년을 보내는 남자의 이야기인가 싶더니 살인 사건과 출생의 비밀까지 등장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감정을 간단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에게는 추악한 욕망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는 지상 최대의 감정일 수도 있으니 타인의 사랑에 대해 어떤 충고도 입에 올릴 수는 없다.

사랑의 옳고 그름은 따질 수 없지만 다른 이의 가슴에 고통을 안긴다면 그것을 응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사랑을 했고 사랑을 하고 있다.

실비오만 현자처럼 사랑을 잊은 듯 살아왔지만 그 역시 책임이 따르는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젊은 날의 뜨거운 피를 주체할 수 없었을 뿐 책임지지 않는 사랑은 더 큰 불행을 낳는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릴 적 감히 사랑이라 생각하며 행했던 일들이 부끄러운 기억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시절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때는 그 사랑이 옳았고 그런 사랑의 경험으로 지금의 내가 존재하니 다른 이를 울리는 사랑이 아니라면 마음껏 사랑하라고 하고 싶다.

뜨거운 피는 언젠가 식는 것 그때 재앙으로 되돌아오지 않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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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입니다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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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알게 된 작가입니다.
꽤 이름이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에세이스트라고 하는 데 저는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귀여운 그림과 길지 않은 글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작가와 비슷한 연배의 저는 일상이 다이나믹하지 않고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매일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간혹 정기적으로 있는 모임도 누군가 중간에 알려주지 않으면 다른 모임을 먼저 잡아 곤란해지기도 합니다.

작가가 쓴 이야기는 맛으로 치자면 슴슴하다 못해 무미하게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면 어느 순간 자극적인 음식보다 담백한 음식이 땡기기도 하고 그 맛이 편해지기도 합니다.
작가의 글은 바로 그런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작가가 다닌 곳을 조용히 따라가고 싶어집니다.
데이코쿠 호텔의 폭신폭신 푹신푹신한 팬케이크도 먹어보고 싶고 삶은 달걀이 아닌 달걀 프라이가 들어간 달걀샌드위치도 먹어보고 싶습니다.

저도 가끔 아파트 단지를 걷다 창문이 열린 일층집으로 고개를 돌렸다 혼자 미안해져 고개를 돌리곤 하는 데 작가도 그런 마음인가 봅니다.
집 앞에 화분을 보며 그 안에 사는 사람을 생활을 상상하는 모습, 극장에서 엔드롤을 눈치보면 앉아지켜보는 작가의 모습은 낯설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작가의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소중함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작가의 일상이 글로 표현되어 읽을 수 있어 일요일 오후가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글의 여운이 길게 남아 산책길의 걸음이 더디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안한 작가의 글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 소미미디어 소미랑2기 서포터즈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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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날들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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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단한 사랑을 받았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힘을 얻어서인지 10년 전 “숲의 대화”로 출간 됐던 소설집이 새로운 옷을 입고 “나의 아름다운 날들”로 재출간되었다.
모두 11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책은 생각했던 것보다 전라도 입말이 덜 등장했고 짐작은 했지만 제목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아내의 죽음 뒤 매일 아내가 묻힌 잣나무 숲을 찾던 노인은 오래된 인연의 죽은 빨치산을 꿈인 듯 생시인 듯 만난다.

사랑이 워치케 신념이 된다냐.
사랑이 신념인 사람도 시상에는 있어라 (p24,25)

<숲의 대화>속 사랑이 신념이 되어 죽음의 순간까지 다른 이를 가슴에 품었던 여자를 한 평생 사랑했던 남자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돈은 풍족했지만 남편의 사랑을 모르고 살았던 에이코, 돈과 자식도 없지만 남편 사랑 하나로 행복했던 하루코, 사상범이라는 굴레 속에서 평생을 살았던 사다꼬 할머니는 80이 되어도 소녀처럼 질투하며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봄날 오후,과부 셋>속의 세 할머니는 여전히 일제 강점기 시대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며 의지하지만 에이코 할머니를 보며 세상사 가장 소중한게 사랑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중증 장애를 가진 ‘그’의 천국인 헛개나무 밭에 찾아온 호아에게 <천국의 열쇠>를 건네는 마음이 이미 그는 누구보다 더 건강한 인간으로 살아서 이미 천국에 가까워진 듯하다.
늙은 어미의 목욕을 한 번이라도 도운 자식이라면 눈물을 흘리며 읽을 이야기 <목욕가는 날>은 남편없이 두 딸을 건실하게 키운 엄마의 고난과 그 엄마를 보는 딸들의 마음이 내 맘 같아 괜히 훌쩍인다.

23년이나 자식의 병수발을 드는 늙은 부모의 이야기 <브라보, 럭키 라이프>는 일말의 희망으로 모든 것을 쏟아붓는 부모의 마음도 혼자서는 거동도 못하는 아들의 마음도 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늙은 부모를 찾아와 폐악을 부리는 다른 자식의 마음도 모두 이해돼 더 마음 아프다.
누가 <핏줄>속 시아버지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며느리는 맘에 들지만 태어날 손주의 피부색 걱정하는 노인을 욕하기 전에 과연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아동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 가를 되돌아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빨치산과 켈로였던 두 노인의 대화 속에 이념이 뭐고 사상이 뭔지 저무는 인생만큼 허무하다.
<혜화동 로터리>에서 차를 타고 떠나는 그들의 “간다”라는 인사가 서글프다.
언젠가 “세상의 이런 일이”에 나왔던 노인이 생각나는 <인생 한 줌>속 노인이 꿈 속을 헤메는 듯 봉황과 거북으로 끝까지 보는 게 노인에게 행복일까 아님 문득 아무것도 아닌 멋대가리 없이 커다란 바위임을 깨닫는 게 순간이 행운일까 오랫동안 고민하게 한다.

물 좋고 공기 좋고 인심 좋은 시골에서 글이나 쓰며 살려했던 꿈이 산산히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즐거운 나의 집>은 시골인심도 사는 게 희망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진리를 알게 해 준다.

“푼돈으로 내가 쟤 하늘이 됐어” (드라마 더 글로리)

김 여사는 상냥하게 전화를 끊는다.수술을 한 것 도 아니니 병원비라고 해봤자 100만 원 안쪽일 게다.구두 한 켤레값도 안 되는 돈에 굽실거릴 수 있다는 게 김 여사는 놀랍고 안쓰럽다. 날 밝으면 병원장에게 전화라도 넣어줘야지, 김 여사는 아주머니가 안쓰러워 그렇게 마음먹는다. (p285)

표제작 <나의 아름다운 날들>의 문장이 드라마 속 대사와 오버랩 돼 그들만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입맛이 쓰다.

노숙은 하지만 노숙자 되기를 거부하는 남자의 끝이 <절정>과 거리가 먼 삶이라 한 숨이 난다.

11편의 단편을 읽으며 절망의 구렁텅이에게 헤어나지 못하는 인물들을 보며 마음이 아프다.
소설의 다 읽고 과연 누가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날들을 보내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나이 들었지만 돈도 있고 건강도 나쁘지 않은 할머니, 몸은 불편하지만 헛개나무 천국을 가진 남자, 목욕을 다닐 엄마가 있는 여자.’

각자의 삶에서 치열하게 살며 실패하기도 하고 그만 됐다 포기하기도 하고 여전히 꿈꾸기도 하지만 태생부터 보통사람들의 삶과는 다른 1프로의 삶을 살며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금혼식에 40년 전 남편이 사준 명품 옷을 차려입는 김여사의 삶이 부럽다.


🎁 은행나무 출판사의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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